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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샘 Sep 20. 2022

가을맞이 : 햇살 한 줌, 바람 한 점, 하늘 한 조각


우리 학교에는 일년에 네 번, 각각 다른 테마로 마을산책을 합니다. 환경, 에너지, 가족, 전통의 테마로 진행을 하고 있는데요 이번에는 환경 테마로 벼 베기 체험을 다녀왔습니다. 원래 계획은 학교 근처의 지역 환경을 돌아볼 계획이었는데 학부모회에서 마침 시기가 맞으니 벼 베기 체험을 해보자는 제안이 있어서 담당 선생님과 상의하여 다녀왔습니다.


교직 뿐 아니라 어떤 일이든 나이를 먹어간다는 건 힘이 줄어드는 일 같습니다. 해마다 조금씩 어린이들과 함께 밖에서 체험을 하는 일들이 조금 버거운 생각이 앞서지만 오늘은 나서자 마자 너무 행복했습니다. 소풍도 아닌데 어린이들도 신나고 선생님인 저도 신났습니다. 학교를 벗어나는 것 자체가 즐거운데 이렇게 파란 하늘과 익어가는 넓은 벌판을 보고 있는 게 정말 큰 힐링의 시간이 되어주었습니다.

매일 쉽게 먹는 밥 한 숟가락의 고마움도 사진이나 영상이 아닌 몸으로 느껴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밥 한번 먹기 너무 힘들어요!
내 말이 그말이다! - 마리샘

삼십여분도 채 안되는 시간이었는데 벼 베기를 생각보다 힘들었고 쪼그린 자세로 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출퇴근 하며 추상적으로 황금들판이며 가을이 익어간다고 생각만 했는데 실제로 몸으로 겪어본 익어가는 가을은 낭만적이었지만 훨씬 더 고된 땀방울로 익어간다는 것도 다시금 알게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을 정말 엄청 시골에서 자라서 사람 손으로 모내기를 할 때 못줄도 잡고 했었는데 시간이 너무 흘러 다 잊고 있었나 봅니다. 그 시간 이후로 늘 추상적인 가을맞이를 했었는데 오늘만큼은 우리 반 어린이들과 함께 기억에 오래 남을 가을맞이를 할 수 있었습니다.

학교로 돌아와 먹게 된 급식 한 숟가락이 그 어느 날보다 더 맛있고 귀하게 느껴졌습니다. 알려고 하지 않으면 사랑할 수 없기에 내 주변의 사람들과 물건들과 일상들을 더 알려고 노력하고 더 사랑하려고 노래해야겠다는 새삼스런 다짐도 다시금 새겨봅니다.


선크림을 가득 바르고 나선 길이어도 타들어간 피부는 이제 서서히 따가워지지만 그 후끈거림 만큼 조금은 식어있던 일상도 함께 달궈 봅니다. 햇살 한 줌, 바람 한 점, 하늘 한 조각과 함께한 예쁜 가을맞이 덕분입니다.


<2022년 9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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