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를 옮기고 새로운 선생님들과 짧게는 1년, 길게는 3~4년도 함께하기 때문에 굉장히 친해질 것 같지만 마냥 그렇지는 않습니다. 사람이 친해지려면 '공유'의 영역이 넓어져야 하는데 그 부분도 상당히 정성과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것이기에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리고 집 밖의 삶은 어느 정도 학연을 통한 친구, 직장, 관심사를 중심으로 돌아가게 마련입니다. 학교라는 범위로 좁혀서 생각해보면 선생님들끼리 만나면 하는 이야기가 비슷합니다. 학교 이야기, 업무 이야기, 학교 행사 이야기, 학생 이야기, 동료 교사 이야기, 교과지도이야기, 수업 사례 이야기 등등이지요.
이게 학교라서 그렇지 학교를 직장으로만 바꾸면 다들 비슷할 겁니다. 자신의 범위에서 만나고 생각하고 이야기하고 하기 때문에 그게 문제 될 건 없습니다. 그리고 참 신기한게 이런 이야기를 학교에서만 나누는게 아니라 학교 밖에서 만나도 비슷합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학교 밖에서 학교 사람들, 오랜 지인이든 지금 근무하는 학교에서 같이 근무하는 선생님이든 만나서 다른 주제로 뭔가 이야기를 나누다가도 어느 순간 학교 이야기를 하고 있는 선생님들 사이에 있다보면 좀 숨이 막힐 때가 있습니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는 곳이니까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20여년전 신규교사일때 작고 작은 섬마을로 첫 발령을 받아서 근무했습니다. 학교 바로 옆에 관사가 있어서 출근은 확실한데 퇴근의 경계가 참 애매했던 듯 합니다.
그 당시 신규 교사다 보니 아는 것은 아주 적었고 모르는 건 엄청나게 많았습니다. 그래서 옆 교실을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었는데 옆반 선배님께서 오지 말라고 하실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그 옆반 선생님은 당시 교육분야 신지식인이셨습니다. 자꾸 드나들었던 이유는 질문하면 척척 알려주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또 그 당시 학교교육과정을 작성하셨던 교무부장님께서는 교육부 선정 100대 교육과정을 작성하신 선생님이셨습니다. 거기에 더해 초등학교 동창의 아버님이셨던 교감 선생님께서는 1년만 함께 하시고 장학사로 전직하셨습니다. 그 당시 장학사는 지금하고는 또 다른 느낌이었지요. 지금도 종종 통화하는 그 당시 옆옆반 선생님께서는 교장 선생님이 되셨구요. 결론적으로는 그 학교가 섬마을 시골학교였지만 뭔가 엄청난 분들이 모여 있던 곳이었다는 걸 한참 지난 후에야 깨닫습니다.
그런 환경 속에서 신규로 발령 받고 얼마 안되어 '학년교육과정'을 작성해서 제출하라는 교무부장님의 전달이 있었는데 정말 막막하더라구요. 실무실습에서 배워오긴 했는데 그건 실습이었지 실전이 아니었으니까요. 일주일 넘게 퇴근도 못하고 3월이라 5시만 조금 넘어도 금방 어두워지는 교실 불을 켜두고 끙끙대며 전년도 선생님께서 남겨두신 파일을 뒤지고 뒤져 어떻게 어떻게 비슷하게라도 해보려고 애쓰고 있었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관사에서 식사하시고 사모님이랑 산책 나오신 교감 선생님께서 건물 2층 교실에 불 켜진 우리 반 교실을 향해 큰소리로 부르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사모님은 웃으셨고 교감 선생님께서는 농담 반 진담 반이셨습니다.
알겠다고 대답은 했지만 그 뒤로도 밤 10시가 다 되어가도록 교실에 앉아 있었지만 결과는 미미했습니다. 그럴 수 밖에 없던 이유가 '교육과정'에 대한 체계 자체를 이해를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각각의 부분들이 어떻게 어디로 연결되는지 알 수가 없었던 거였습니다. 그렇게 그 날 밤은 지났고 다음날도 저녁에 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저녁에 교감 선생님께서 또 불켜진 교실을 보시고는 창 밖에서 큰소리로 말씀하셨습니다.
안그래도 답답한 시간인데 또 뭘 시키시려고 그러시는지 툴툴대며 전지 한장 돌돌 말아 유성 매직 한통 들고 교무실로 갔습니다. 그 사이에 교감 선생님께서는 교무실에 이미 와 계셨습니다. 전지를 교무실 회의용 큰 탁자에 펴라고 하시고는 매직을 외치셔서 드렸지요.
그날 저녁 교무실에서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보다 더 엄청난 걸 실시간으로 보고 말았습니다. 교감 선생님께서 매직으로 학교교육과정부터 학년교육과정 체계까지 쓱쓱 그려주시고 체계가 어떻게 되는지 학년 담임이 뭘 교육과정에 써야하는지 일목 요연하게 정리해주셨습니다. 며칠간 그 연결고리를 찾지 못했던 파편화된 정보들이 그제야 서로 연결이 되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날밤과 이 이튿날 밤까지 해서 그 엄청난 여정을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제대로야 되진 않았겠지만 그걸 완수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었으니까요. 그 다음해부터는 조금씩 더 많이 보이게 되었고 잘해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날 밤 매일 늦게까지 교실에 있었는데 한 말씀 더하셨습니다.
곡해하지 않으셔야할 포인트가 있습니다. '제 시간에 퇴근해야 능력 있는 교사'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시간 안에 잘 정리하고 제 시간에 퇴근해서 개인의 삶을 사는 교사'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때부터 학교 와서는 수업과 업무만 하고 퇴근합니다. 개인적으로 어떤 일을 동시에 막 추진할 수 있는 역량이 부족하다 보니 순차적으로 부지런히 처리해야해서 더 그렇습니다. 부지런한 게 아니라 부지런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겨우 옆반 샘만큼 할 수 있으니요. 어느 명제건 받아 들이는 사람의 필터가 무엇이냐에 따라 수용의 정도가 달라지기 마련이겠지만 지금의 교직 가치관은 그 당시 함께 하던 선생님들께 많은 영향을 받은 것 같습니다.
이후 학교일은 집으로 가져가지도 않고 집의 일을 학교로 가져오지 않도록 엄청 노력했습니다. 도지정 연구학교 연구부장을 할 때도 연구학교 보고일 전날 제 시간에 퇴근했습니다. 할 일 다했으면 퇴근하는 거죠. 뭘 더 학교에서 걱정하고 앉았나요. 정말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시간외 근무도 안합니다. 시간외 근무하는 경우는 한동안 학부모님들의 참여율을 높이기 위해 저녁 시간에 학교교육설명회를 했던 때, 체험학습이나 수련활동 때 뿐입니다.
시간이 지나고 그 시간들을 생각해보면 진짜 고집 세고 부족함이 가득한 시절이었습니다. 지금도 그렇게 대단히 나아진 건 아니지만 분명 그때보다는 몇걸음 더 나아간 모습으로 학생들 앞에 서 있습니다.
다시 돌아와서 이야기를 이어가자면 학교가 삶에서 정말 중요한 곳이긴 하지만 그건 학교에 있는 시간에 한합니다. 학교 가기 전과 학교를 나오고 난 후부터는 그냥 아빠고, 동네 아저씨일 따름입니다.
개인의 삶은 '나를 위한 삶, 가족을 위한 삶, 생계유지를 위한 삶' 정도로 각각의 지분을 정해서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셋다 모두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분리시키긴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대입을 해보자면 '나를 위한 삶'은 아마 마리샘으로 사는 그 시간들이 아닐까 합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꿈과 삶의 재미, 행복을 주는 삶의 압정들을 깔아두는 시간들이겠지요. '가족을 위함 삶'은 남편, 가장, 아빠, 아들, 오빠로 사는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삶일 듯 합니다. 마지막 '생계유지를 위한 삶'은 학교와 관련된 교사로서의 삶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게 참 절묘한게 세 가지 모두 늘 만족스럽진 않다는 겁니다. 그리고 셋 모두가 한꺼번에 엉망이지도 않다는 겁니다.
이를테면 학교일로 속상하고 마음 쓰이는 일이 있더라도 마리샘으로 사는 일과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이 주는 힐링으로 그 마음의 힘든 부분을 채우고, 또 마리샘으로 사는 일에도 많은 어려움들이 있는데 그럴 때는 학교에서 어린이들과 보내는 시간이 주는 행복과 가정에서 받는 에너지로 이겨내는 거죠. 그리고 가정에서 어려운 일이 생기면 학교에서 받는 긍정적 에너지와 지금껏 애써온 마리샘으로서의 삶이 주는 위로 속에 힘을 내보는 그런 구조입니다.
글을 적으며 너무 주절주절이라 이걸 좀 짧게 정리해볼 수 없을까 고민해보니 '어느 한쪽에 함몰되지 않는 삶' 정도로 요약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이제야 앞서 했던 선생님들끼리 만나서 학교 안이나 밖에서도 끊임없이 학교 이야기를 하는 게 숨막히는 이유를 조금이나마 설명할 수 있을 듯 합니다.
끊임없이 고민하고 발전해나가는 것은 긍정적이고 생산적인 방향이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라는 걸 늘 느끼고 있습니다. 그래서 만나면 어색하고 자꾸 이야기를 이어가야 해서 뻘쭘하지만 새로운 사람들도 만나고 학교의 테두리를 벗어나 많은 부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그렇게 얻은 필터들로 학교에서의 삶도 다시금 잘 정리해나가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좀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각각 다른 모습으로 학교나 학교 밖에서 살아내고 있는 그 시간을을 재단하지 않았으며 하는 바람도 가져봅니다. '다른 사람의 삶을 재단하지 말고 저 사람은 그렇구나하고 인정까지는 아니더라도 저런 사람도 있구나'하는 가능성을 열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우린 서로 좀 다를 뿐입니다.
이런 이유로 선생님들끼리 만나서 학교 이야기만 하는 자리에 있으면 숨이 막힙니다. 그래서 잘 안가는 것 뿐입니다. 다른 거 없습니다. 이런 부분을 일일이 설명할 수 없어 이렇게 밖에 말씀을 못 드립니다.
이렇다보니 공유하는 정보와 시간이 충분치 않아 오래 같이 근무해도 친해질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친해진다는 건 시간도 시간이지만 어떤 것의 '공유' 정도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공유는 '신뢰'가 바탕이 될 때 더 가까워지는 거구요.
가족의 경우는 선택의 여지가 직장보다는 적어서 일단 원하든 원하지 않든 공유하는 부분이 생기게 마련이고 우리는 그걸 사회적으로 '닮았다'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가족은 공유하는 부분이 많기에 닮아가는 것이고 불합리한 일에 또박또박 토를 다는 우리 반 어린이들도 담임 선생님과 공유하는 부분이 있어서 닮아가는 걸겁니다. 그러니 좋은 것만 닮을 수도 없는 것이죠. 누굴 닮아서 그렇냐는 말은 부메랑입니다.
우리 반 어린이들이 말 많은 어린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자신의 생각을 잘 말하고 잘 책임지는 사람이면 더 좋겠습니다.
담임 닮아서 말 많은 우리 반 어린이들을 사랑합니다. 언제고 표현하고 싶은 것들이 있으면 얼마든지 이야기하고 잘못된 부분은 스스로 어려운 시간 속에서도 깨달아가는 게 그게 배움의 시작이니까요. 뭘 하나 더 아는 것도 엄청 중요하지만 뭘 하나 더 알기 위한 역량이 더 중요한 거니까요.
시집' 사랑의 끝에서' 중 '낯선 하루'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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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안이든 밖이든, 그 어디든 다름에 대한 수용도가 낮은 곳에서의 생활은 언제나 낯설기만 합니다.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데 이질적인 것들과 손바닥을 마주댈 용기를 가질 수 있기를 저에게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바라봅니다.
<2024년 9월 13일>
*이 글은 네이버블로그 <마리샘>에 동시에 연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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