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시작은 끝을 향한 첫걸음입니다. 우리 사는 일도 그렇겠지요. 그래서 그 슬픈 결말을 알면서도 기꺼이 시작한 우리의 삶입니다. 졸업식 자체는 학교에서 있는 업무의 일종이이지만 '졸업'은 그것과 더불어 정서적인 모든 것을 포함한 것이지 싶습니다.
언제고 합창곡으로 만들어 함께 꼭 불러보고 싶은 진추하님의 'Graduation Tears'를 조용히 들으며 글을 써볼까 합니다.
지금 학교는 두번을 근무하였습니다. 4년을 만기로 두번, 그러니까 8년을 이 학교에서 보냈습니다. 중간에 다른 학교에서 4년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8년을 우리 학교에서 보냈습니다. 교직 생활의 거의 절반입니다. 그래서 어른이 되고서, 어쩌면 교직에 있으면서 정서적으로 느끼는 모교입니다. 모교는 보통 본인이 졸업한 학교를 의미하지만 어른이 되어 '모교'라고 시공간적 정서는 '어머니' 같이 마음에 평안을 주는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 우리 집 막내는 정말로 우리 학교를 '모교'로 갖게 되었지요. 여러가지 의미로 정말 의미있는 공간입니다.
제가 정말 사랑하는 비틀즈의 노래 'Ob-La-Di, Ob-La-Da'의 가사처럼 '삶은 언제나 계속 되는 것(Life Goes On)'이지만 그런 시간의 흐름 속에는 스펙타클한 순간들 또는 길고 긴 시간들이 들어가게 마련입니다.
처음으로 우리 학교에 오기 전엔 개인적으로 엄청난 삶의 소용돌이를 겪는 끝자락 어디쯤이었습니다. 근무하던 학교가 만기가 되어 학교를 옮겨야만 해서 고민이 정말 많았는데 같이 근무했던 선생님 한분께서 제가 근무가 만기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으시고는 자신이 근무하는 학교가 너무 좋다며 다시 함께 근무하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전해주셨는데 출퇴근 거리가 좀 있어서 망설였지만 다른 곳에 비하면 그래도 가까운 편이어서 걱정 반 기대 반으로 옮겨온 곳이 바로 우리 학교였습니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첫 4년동안 우리 학교에서 근무하며 교직에서 가질 수 있는 여러 가지 성장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극장에 막연히 영화가 보고 싶어서 갔지만 마땅히 무얼 봐야할지 몰랐는데 직원 분이 추천해주신 영화를 보게 되었는데 그 영화가 너무 좋아서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그 영화를 종종 돌려보고 있는데 마치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시작은 의도치 않았으나 우리 학교는 그 4년동안 저를 교사로서도, 인간으로서도 훌쩍 성장시켜 주었습니다. 가장 큰 원동력은 누가 뭐래도 좋은 사람들이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어느 한분, 빼놓고 싶지 않을 만큼 좋은 분들이셨고 저의 부족한 부분을 티나지 않게 관심으로 채워주신 분들입니다. 10년도 훨씬 지난 시간들이지만 여전히 교직 생활을 하며 어려운 시간들을 만나게 되면 그때의 그 4년의 기억들을 떠올리며 힘을 내고 다시 살아낼 의미를 찾곤 합니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Sound Of Music)'의 한 장면처럼 말이죠.
그리고 두번째 우리 학교의 4년은 저에게 깊이를 더해준 시간이었습니다. 큰 성장을 이루고 조금은 만족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지만 내려다보니 그 성장이 든든한 밑둥을 가진 아름드리가 아닌 콩나물 대가리 같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언제고 무슨 일이든 하다보면 일에 사람에 사건 사고에 치이며 몸과 마음에 한없이 밀려오는 덧없음으로 어려운 시간들을 보내고 있을 즈음 또 연락이 왔습니다. 지금 우리 학교에 선생님 한분이 전근하셔서 한 자리가 비게 되었는데 오면 좋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피천득 '인연' 중에서
그렇지만 두번째는 망설였습니다. 꽃답게 만났던 첫번째 아사코의 기억으로 모든 힘든 순간을 살고 있는 내게 두번째 우리 학교가 세번째 아사코가 될 수도 있을지 모른다는 막연한 걱정이 정말 많았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순간까지도 고민했지만 결국 만난 세번째 아사코처럼 다시 한번 만나 보기로 했습니다. 평생 그렇게 살 수는 없으니 말이죠. 교직은 또 한번의 계단을 만난 셈입니다.
새롭게 시작된 우리 학교에서의 두번째 4년은 처음의 그것과는 확연히 다른 것이었습니다. 어쩌면 학교의 상황들도 변하긴 했겠지만 이미 긴 시간을 건너온 스스로가 달라져있었던 것것이었습니다. 8년 전에 비해 확연히 겁이 더 많아졌으며 책임지고 지켜야할 것들이 너무 많아져 있었습니다. 이미 없는 것들과 현재를 비교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습니다. 그래서 매일 예전의 기억과 현재의 상황들을 잘 섞어가며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 그리고 변해야할 것들을 잘 챙겨가며 또 4년을 보내고 나니 스스로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크게 성장하지는 못했지만 많이 깊어졌구나. 교사로서도 인간으로서도 정말 깊어졌구나하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깊어지기까지의 많은 일들이 있었겠지만 우선은 처음 그때에 비해 나이가 열살이 넘게 더해졌고 마음에 평온을 위해 애써온 시간들의 덕을 정말 많이 봤습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나이가 들수록 더 삶이 평안하고 행복합니다. 늙는 건 싫을 수 있는데 나이 들어가는 건 정말 사람을 평온하게 합니다.
20여년 교직 생활의 절반을 우리 학교에서 보내고, 그렇게 보낸 그 8년이란 시간이 지금의 저를, 교사인 저를 키우고 버티게 해주었습니다. 졸업식을 준비하고 마치며 많은 생각들을 했지만 그래도 수많은 감정들과 시간들을 비집고 나온 건 감사였습니다.
내 마음을 다했다 생각하지만 부족한 것들이 너무 많았을 테고 최선을 다했지만 손길 닿지 않은 곳도 수도 없을 듯 합니다. 그래도 제 마음으로 다 채우지 못한 부분은 살면서 늘 감사로 채워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그 시간들을 뒤로 하며 그저 마음에 담고 또 담아봅니다.
<2025년 1월 16일>
*이 글은 네이버블로그 마리샘에 동시에 연재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