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이야기

넓고 넓은 우주에, 지구에, 우리 나라에 그리고 지금

by 마리샘
SE-a05d9b04-f1dd-11ef-9a26-df9d1064c5a3.jpg?type=w1 서울 지리는 어딘지 모르고 네비만 따라 다닙니다.

서울 갈 일이 최근에 참 잦았습니다. 지방도 나름 인프라가 잘 정리되어 꼭 서울이 아니더라도 많은 일들을 할 수 있기도 합니다. 그래도 역시 많은 일들은 여전히 서울에서 이루어집니다.


다른 방학 같았으면 우리 집 아이들이랑 여행도 가고 했을 텐데 이번 방학은 아이들에게 매우 중요한 시기의 방학인지라 두 눈 꼭 감고 여러 가지를 꾸준하게 챙겼습니다. 그리고 이제 개학을 앞두고 차마 그냥 넘어가긴 아쉬워서 서울로 가야할 여러 가지 일정을 한데 잘 묶어서 길게 서울을 다녀왔습니다. 숙소만 잡아두면 나머지는 뭐 시간과 사정이 이끄는 대로 다니면 되니 숙소만 잡았습니다.


이번 서울행이 저에게는 그야말로 일로 가득한 여정이었습니다. 학교생활기록부 연수도 있었고 파랑새 창작동요회 총회도 있었고 또 개인적인 일들도 여러 가지가 있어서 기간동안 내내 일만 했습니다. 그러는 동안 두 딸램은 큰 오빠 덕에 서울을 편하게 잘 돌아다녔습니다. 손 꼽아 꼭 가고 싶어하던 곳도 들러보고 향수를 좋아하는 둘째는 여기 저기 백화점 명품관 돌며 향수 시향을 하고 다녔나 봅니다.


이런 저런 각자의 일정들을 마치고 퇴근 시간 즈음 숙소인 호텔로 모이게 되었는데 아빠는 차로 움직이고 큰 아이와 두 딸램은 지하철이나 대중교통으로 움직였습니다. 시골살이가 길고 긴 두 딸램은 언제나 아빠 차로 움직이거나 기차, 버스, 택시로만 움직여서 지하철에 대한 낭만이 가득했다고 하네요. 이어폰 끼고 좋아하는 노래 들으며 지나는 창 밖에 노을지는 장면을 그렸다고 하더라구요.


그런데.


특히 지하철을 처음 타보는 둘째는 막상 처음 타본 지하철이 금요일 퇴근길 지하철 시간이어서 상상치 못한 광경과 상황에 매우 당황했다고 합니다. 정말 오빠를 놓치면 미아가 되겠구나 싶어 오빠 패딩 끄트머리를 꽉 쥐고 잘 따라 다녔다고 합니다. 그리고 내려야 하는데 사람들 사이에 꼬챙이처럼 끼어 있어서 이러다 못내리는 건 아닐까 생각할 즈음 오빠가 쭉 끌어내서 내렸다고 하더라구요. 이야기로만 들어도 시골 여중생이 들려주는 재밌는 라디오 사연 같았습니다.



'서울 사람들은 이렇게 사는 구나.

이런 모든 순간들을 이기며 이 도시에서 존재의 의미를 찾고 있구나.

너도 이렇게 지내고 있구나. 씩씩하게 너의 삶을.'


이 모든 순간들을 이기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큰 아이의 모습이 그날따라 유난히 안스러웠습니다.


그날 밤에 큰 아이와 꽤 진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이 미치도록 넓은 우주에 어쩌면 먼지 한톨의 의미 만큼으로 살아가는 우리네 이 삶의 의미에 대해서 말이죠.


하지만 생각할 수록 왜 살아야하는지 그 누구도 모릅니다. 태어났으니까 열심히 사는 거죠. 누구라도 태어난 목적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말 그대로 태어난 거죠. 그래서 왜 태어났냐는 의문대신 오늘 이 순간들을 부지런히 살아내면 됩니다. 그게 그냥 삶의 의미가 아닐까 싶습니다.


"힘들게 번 돈으로 좋아하는 거 보거나 좋아하는 거 하면서

다들 조금은 스스로의 존재를 느끼는 것 같아요."


스물 둘 청년의 이야기에서 나온 내용이지만 바쁘게 돌아가는 이 삶이 그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한 없이 먼지 같게 느껴졌습니다.


"우리 너무 열심히 살지 말자.

점 하나 겨우 남길까 말까인 삶인데

조금 널널하고 게으르게 살자.

열심히 하지마, 꾸준히만 해.

놓지만 않으면 되지."


이런 말을 몇년전부터 큰 아이에게 하고 있습니다. 그냥 왜 이렇게 열심히 사는지 모르겠기도 하고 그냥 있어도 숨도 쉬어지고 때 되면 배고파지고 하는데 굳이 이렇게 지내야하나 하는 마음이 갑자기 찾아들었습니다. 쉽지 않은 일이더라구요. 삶을 게르으게 지낸다는 게요. 자꾸만 주변 속도가 의식 되니까요. 그렇다고 눈을 감자니 개인의 일상이 타인과의 관계 속 생기는 사회적 일과 관계에서 완전리 분리될 수 없어서 그것도 쉽지 않구요.


이런 에피소드를 남기며 숙소로 돌아온 큰 아이와 깊은 이야기를 나누다 그럼 우리가 닥친 이 시간들에 충실하는 의미로 대학로로 연극 한편 보러 가기로 했습니다. 차 두고 지하철로 이동할 생각이었는데 셋 다 내켜하지 않아 지하철 대신 택시로 가자고 설득해서 택시 타고 숙소에서 대학로로 나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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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시간 동안 큰 아이와 두 딸램은 깔깔 대며 재밌어 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아이들을 종종 물끄러미 바라보았습니다.


이 도시에서 혼자 2년 넘게 잘 살아내고 있는 큰 아이에게도 고맙고 시골살이 불만도 많고 어려울 법도 한데 잘 자라주고 있는 두 딸램에게도 대견한 마음입니다. 차마 부모에게도 말하지 못한 수많은 어려운 일들이 있을 텐데 듣지 않아도 같은 시간을 견뎌 이 시간에 이른 부모이기에 말하지 못하나 여백에 숨은 그 인내와 시간들을 말 없이 헤아려 봅니다.


세상 사람들은 타인에게 생각보다 관심이 없습니다. 어쩌면 생각보다 훨씬 더 관심이 없을 지도 모릅니다. 어떻게 살아내도 견디고 버텨야하는 서글픈 삶이라면 1인칭으로 써내려 가면 좋겠습니다. 보기에 좋은 거 말고 내가 좋은 걸루요.


'일하기 싫은 사람들이랑 일하지 않는 사치를 부려봅니다!'

드라마 '모텔 캘리포니아' 대사 중에서


물론 손해야 있겠지요. 감안하는 겁니다. 받을 수 만도 없고 줄 수 만도 없는 삶은 결국 주고 받는 거니까요. 그래서 아이들에게도 너무 참지 말고, 너무 견디지 말고 힘들고 지치고 싫으면 때론 도망가고 주저 않으라고도 이야기했습니다. 맨날 어떻게 힘내고 사나요.


지하철 에피소드에서 시작된 깊고 깊은 진지한 대화를 하다가 알았습니다. 큰 아이가 이제 어른이 되어가는 순간을 맞이하고 있구나.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 '좀머씨 이야기'에서 아저씨는 물 속으로 걸어들어가고 그걸 바라보는 소년은 어른이 되며 중첩되는 시간의 그 어디쯤을 이 날 대화를 통해서 느꼈습니다. 소설 속 소년과 좀머씨는 결국 같은 사람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그 호수 속으로 걸어들어가는 장면에서 아저씨인 좀머씨는 사라지고 소년이 청년 좀머씨의 시점으로 바뀌는 느낌이랄까요. 이건 다분히 개인적인 해석이니 읽으신 분들은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해보시면 좋겠습니다.


성인이 되어가는 자녀에게 이제 잔소리는 더 이상 약효가 없습니다. 이제는 사는 모든 날들이 시린 곳들을 치료하고, 삶의 모든 결정들이 굳은 살을 자리 잡게하리라 생각합니다. 부모의 관점과 시선도 함께 성숙해져 갑니다.


착하고, 성실하고 겁은 많지만 책임감은 강한 큰 아이의 도시에서의 나날들이 평온하기를 멀리서나마 바라봅니다. 커다란 도시에서 견뎌내고 있는 모든 자녀들에게도 평온의 기도를 보냅니다.


<2025년 2월 25일>


*이 글은 네이버블로그 마리샘에 동시에 연재되고 있습니다.

https://blog.naver.com/marriesam/223773789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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