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하나 : 라떼를 맛있게 먹는 방법

by 마리샘
20250111%EF%BC%BF120958.jpg?type=w1 십입시 커피의 시그니처 '십일시 라떼'. 약간 미숫가루 느낌의 아이슈패너같은 느낌적인 느낌. 정신차려 보니 다 먹었......


시점상으로는 지난 글보다 훨씬 이전의 이야기입니다. 임시 저장글로 두고 오래 두다보니 글의 순서가 딱 시간에 맞아 떨어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잠 못자는 날들의 연속인 시간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딱히 걱정이 있는 것도 달리 잠을 못잘 이유도 없지만 꽤 긴 시간동안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늘 그런 건 아니지만 종종 이런 날들이 있기에 또 이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 지리라 생각해 봅니다.


최근엔 살고 있는 시골 곳곳에 숨은 카페들을 찾아다니고 있습니다. 우연히 알게 된 곳도 있고 검색을 통해서 궁금해서 찾아보게 된 곳도 많습니다. 최근 사진으로 남긴 '십일시 라떼'는 면 소재지에 있는 작은 동네 카페 '십일시 커피'라는 곳의 시그니처 메뉴입니다.

근처에 출장 왔다가 시간이 조금 남아 아메리카노를 마시려고 우연히 들어갔다가 시그니처 메뉴라길래 안정성을 뒤로 하고 새로운 모험을 택했습니다. 그리고 그 모험은 매우 성공적이었고 최근엔 시간이 나면 굳이 이 커피 한잔을 마시기 위해서 긴 시간 운전해서 방문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어떤 일이나 물건을 지겨워하지 않습니다. 그 보단 익숙해지고 평안해지면 되려 더 좋아집니다. 그런 성향은 모든 일을 해나가는데 정말 큰 도움이 됩니다. 작고 작은 장점도 잘 찾아내고 그 작고 작은 장점들을 모아 커다란 단점이 있어도 잘 희석하며 잘 넘어가기도 합니다. 일상은 결국 모든 시간들의 조각들이 모인 거라서 받아들이는 사람의 필터에 따라 아주 다른 양상을 가지게 되니 의식적으로라도 그렇게 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큰 아이도 이런 성향이라서 맛있는 식당이나 카페를 발견하거나 알게 되면 같이 다니며 징글징글하게 다시 방문하고 또 방문하게 됩니다. 큰 아이는 자녀이면서 아주 어릴적 부모가 된 저에게 좋은 친구이기도 합니다. 방학을 맞아서 시골로 내려온 큰 아이와 함께 이 카페와 라떼를 소개하기 위해서 먼 거리를 운전해서 같이 방문을 했습니다. 곰돌이처럼 생겨선 커피에 진심인 아빠를 알기에 라떼 두잔을 시켜두고는 도란도란 많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딸 같은 아들이기도 하고 대학생이 된 후로 일년이면 짧은 시간을 제외하고는 각자의 위치에서 지내고 있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됩니다.


그렇게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라떼 두잔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아인슈패너를 마시듯 잔 바닥에 깔린 에스프레소를 빨아올려 위쪽에 있는 크림과 함게 들이키면 말 없이 눈이 커지게 되는 그런 맛입니다.


"아는 맛인듯 모르는 맛인데 원래 알던 맛있는 맛이에요."


무슨 말인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그 느낌 만은 정확히 알 수 있었습니다. 이 라떼를 먹어본 적이 있는 분들께서도 다양한 의견을 주셨는데 그 중에서 가장 근접하게 아는 맛으로 표현된 내용을 조합하면 이렇습니다.



미숫가루 맛이 나는 부드럽고 달콤한 아인슈패너 같은 라떼

마리샘 지인들의 의견을 모은 작은 빅데이터(?)


그렇게 라떼 한잔과 길고 긴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라떼의 양은 줄어들고 안에 들어 있던 얼음도 서서히 녹았습니다. 그리고 둘이 나누던 이야기의 중반쯤을 지났을 즈음엔 얼음이 많이 녹아 처음 느꼈던 맛과는 다른 점점 밍밍하고 특징을 잃은 라떼가 되었습니다.


"얼음이 녹기 전에 먹었던 맛이 원래 맛인가봐요.

얼음이 녹고 나니까 밍밍하네요."


실상 처음 맛본 그 원래의 맛이라는 것이 라떼가 가진 최상의 맛을 내는 시간이었을겁니다. 그리고 얼음이 녹아서 느껴지는 이 밍밍한 맛도 라떼의 원래의 맛입니다. 같은 라떼 잔에서 얼음이 녹는 것과 또 다른 변수들이 더해져 이루어지는 맛의 변화일 겁니다.


사람에게 호감을 갖는 다는 건 그 사람이 가진 최상의 맛 또는 근접한 어디쯤일 가능성 큽니다. 누구에게나 그런 매력적인 순간들과 모습이 있으니까요. 매력이 없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자칭이든 타칭이든 말이죠.


그래서 그런 맛있는 순간을 지나 밍밍해지는 그 순간까지도 그 사람의 원래 모습이라는 겁니다. 최상의 맛이던 그 순간만 원래의 맛이 아닌 것이죠. 늘 최상의 맛을 내고 있지 못한 미안함에 우겨보는 측면도 있지만 확실하게 늘상 최상의 맛을 낼 수는 없으니까요. 그 시간, 그 장소, 그 분위기가 내가 가진 매력을 가장 맛있게 할 수 있는 바로 그 순간이었을 거라고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그 순간이 지나 밍밍해진 스스로와 만나는 것 또한 담담하게 해야할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많은 글들에서 언급했던 트로트 가수 주현미님의 노래 가사처럼 말이죠.


'만날 때 아름다운 사랑보다는

돌아설 때 아름다운 사랑이 되자'


주현미 '잠깐만' 가사 중에서.


극적으로 눈이 커지던 최상의 맛을 지나 얼음이 녹고 최상의 맛에 대한 자극이 줄어가는 밍밍한 맛의 순간까지 라떼는 최선을 다한 걸테니요. 그리고 그 밍밍한 맛을 통해 또 만나게 될 최상의 맛을 기대하고 설레여봅니다. 그게 나로부터이든 타인으로부터이든 누군에게나 이면 더 좋을 테구요.


아마 잠 못 이루는 날들은 밍밍해진 스스로를 다독이며 최상의 맛을 내는 순간에 대한 기대와 설렘을 정돈하는 시간이 아닐까 합니다. 혼자 먼 거리를 달려오거나, 사랑하는 이, 소중한 이와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마시는 최상의 순간과 밍밍해진 순간을 함께 나눌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아니 사실 최상의 맛을 짧은 시간동안 강렬하게 맛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단 생각도 더해봅니다.


우리는 어느 순간에 머무르고 있는 걸까요.


<2025년 2월 27일>


*이 글은 내이버블로그 마리샘에 동시에 연재되고 있습니다.

https://blog.naver.com/marriesam/22377660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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