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학교로 발령 받아 새학년 집중준비기간을 거쳐 개인적으로 준비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굳이 나오지 않아도 되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명확하게 자리 잡은 삶과 일의 확실한 경계 덕에 집에서는 학교 일을 들여다보고 있지 않게 되었고 일을 해야한다면 학교에 나와서 집중력 있게 하고 있습니다.
새롭게 맡은 일은 교과전담교사, 일명 교담교사입니다. 3~6학년 과학, 영어.
시수도 다른 학교에 비해 많은 교담 교사입니다. 보통은 주당 18시간의 수업과 맡은 교과와 관련된 업무가 주어지는데 새로온 학교에서는 주당 20시간에 과목도 주지 교과 2과목, 그리고 생각치 못한 많은 업무를 배정 받았습니다.
학교에서 누구 하나 업무 없는 분들이 없는걸 알기에 담담히 받아들이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이걸 쳐내면 누군가는 또 그 업무를 받아야 하는 걸 알고 있기에 함께 애쓰고 노력하는 교육공동체 구성원들끼리 제로섬 게임을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조금이라도 편하고 싶은 게 당연한 사람의 마음이기에 사람으로는 편치 않지만 학교 구성원으로서는 모두가 중요한 일들을 해내고 있음을 알기에 이성으로 받아들여 봅니다.
그리고 새학년 집중준비기간 첫날에 받은 업무들의 일년 프로세스를 좀 살폈습니다. 역시나 만만치 않은 일들이 가득하더라구요.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으니 차분히 모르면 배우고 없으면 찾고, 필요하면 질문하면서 열심히 해보려고 합니다.
인사 발령을 우리 학교로 신청하면서 학교 자체에 대한 부분을 제외하고 인프라적인 측면에서 가장 고려했던 건 바로 학교 바로 옆에 카페가 있다는 거였습니다. 심지어 커피가 너무 맛있습니다. 더 심지어 빵으로 유명한 곳이더라구요. 빵순이 둘째의 최애이기도 합니다.
퇴근길 감성으로 지친 하루를 잘 마감하는 저는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이기도 했습니다. 해 질 녘 맛있는 커피 한잔 테이크 아웃해서 노을지는 하늘을 내내 바라보며 퇴근하는 길입니다. 며칠 해보니 이건 뭐라 설명할 필요 없이 직업인으로서의 하루를 마감하는 가장 멋진 순간들이었습니다.
매일 학교 생활을 정리하고 자연인으로 돌아가기 위해 집으로 향하는 헛헛한 마음을 채워줄 순간들이 기대가 됩니다. 마치 센과 치히로의 행방 불명에 나오는 동굴을 지나나는 것처럼 교사로서의 일상과 자연인으로서의 일상간의 거리를 자연스럽게 디졸브(dissolve) 시켜주는 그런 고마운 일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어떤 일이나 물건을 지겨워하지 않습니다. 그 보단 익숙해지고 평안해지면 되려 더 좋아집니다. 그런 성향은 모든 일을 해나가는데 정말 큰 도움이 됩니다. 작고 작은 장점도 잘 찾아내고 그 작고 작은 장점들을 모아 커다란 단점이 있어도 잘 희석하며 잘 넘어가기도 합니다. 일상은 결국 모든 시간들의 조각들이 모인 거라서 받아들이는 사람의 필터에 따라 아주 다른 양상을 가지게 되니 의식적으로라도 그렇게 하고 있기도 합니다.
이 글 바로 앞선 글에서 밝힌바 대로 작고 작은 장점들도 잘 찾아냅니다. 그리고 잘 모아서 커다란 단점도 잘 이겨냅니다. 이번 경우는 커다란 단점이라기 보다는 인상적인 하루의 방점을 찍을 수 있음에 감사하는 마음이라고 보면 좋겠습니다.
이제 며칠만 지나면 또 새로운 어린이들을 만나게 됩니다. 걱정과 설렘을 언제나 함께 맞이하며 어린이들 만날 날을 기다려 봅니다.
오늘은 제가 좋아하는 윤동주의 '새로운 길'이라는 시를 나누며 아직 남은 설렘의 끝자락을 움켜 잡아봅니다.
윤동주, 1948년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중 '새로운 길' (1938. 5. 10.)
<2025년 2월 28일>
*이 글은 네이버블로그 마리샘에 동시에 연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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