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 없는 친절은 사양해요
연차를 하루 쓰면 9일이나 되었던 긴 설연휴가 끝이 났습니다. 물론 겨울방학이었기 때문에 아이들은 학교에 안 가는 기간이었지만 일반적인 방학의 시간과는 다른 분위기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 기간 동안 길게 여행을 다녀오는 집도 있었을 것이고, 설날 친척들을 만나 며칠 같이 보내기도 하였을 것입니다.
저는 설날이나 추석이 싫습니다. 우선 자폐를 가진 아이의 템포가 깨지기도 하고 갑자기 만난 다양한 친척들이 친절모드로 변해서 베푸는 따뜻한 말들도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버릇이 나빠질 까봐 뭐라고 한마디 잔소리라도 하려고 하면 (아픈 혹은 장애가 있는) 아이에게 왜 그리 심하게 대하냐며 핀잔을 듣습니다. 아이는 신이 나서 할머니나 이모부, 고모부의 등 뒤로 가버립니다. 더 듣기 싫은 소리는 오랜만에 만나 건네는 위로입니다. ‘아이 키우느라고 고생이 많다’, ‘너 힘든 것을 안다’ 등 손을 부여잡고 위로를 건네고, 힘을 내라고 하지만 왠지 이런 소리를 들으면 기운이 더 빠지게 됩니다. 꼭 자주 만나지 못해 아이들에게 익숙하시지 않은 어르신들이 이런 소리들을 하십니다. 그중에서 ‘아이들 키우는 것은 똑같이 다 힘들어’라는 말을 제일 싫어합니다.
그러다 보니 저는 좀 이기적인 마인드로 명절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일단 꼭 필요하지 않으면 부모님 집에서 잠을 자지 않습니다. 그리고 친척들과 보내는 시간을 그리 길게 잡지 않습니다. 명절 연휴기간 동안 친척들이 아이에게 친절하게 대할수록 아이는 명절이 끝난 후에 아빠나 엄마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이모나 고모를 데려오라고 합니다. 그러다 더 심해지면 친척집에 가겠다 혹은 거기서 살겠다고 고집을 부립니다. 명절이란 기간은 평상심과 안정감을 갖고 지내야 하는 발달장애 아이들에게 그다지 긍정적인 시간들이 아니었습니다.
설날을 만나 갑자기 가족 간의 우애가 급상승한 아빠가 형제들과 사라지기라도 하면 아이에게는 최악의 불안이 시작됩니다. 큰아버지나 작은아버지를 만날 기대로 할머니집에 방문한 아이에게 이것은 매우 큰 사건입니다. 불안해진 아이의 컨디션이 나빠지는데 아이가 그럴 수도 있다고 할머니가 엉뚱하게 편이라도 드는 날에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펼쳐지게 됩니다. 이런 상황에 대해서 설명을 한다고 친척들이 쉽게 이해를 하기는 어렵습니다. 발달장애 아이를 가진 가족은 아무리 명절이라도 부모님이나 친척들보다는 아이 위주로 모임 환경을 조성해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습니다.
명절 스트레스를 벗어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부부간의 대화와 협의입니다. 연휴기간 동안 평소와 같은 루틴으로 일어나고 자고 운동하고 생활해야 하며 친척 간의 만남을 갖더라도 최대한 아이에게 자극이 덜 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서 서로 의논하고 합의해야 합니다. 친가와 외가 양쪽을 오가기 때문에 만나게 되는 사람들이나 장소도 다양합니다. 그래서 미리 계획을 짜고 일정에 대해 합의를 하지 않으면 연휴기간 동안 불편한 일들이 생길 수 있습니다. 결국 일상으로 돌아온 이후에 아이의 템포가 무너지게 됩니다. 물론 이것을 감당하고 책임지게 되는 것은 주양육자인 엄마의 몫이 됩니다.
저는 명절기간 친척들을 보기보다는 가족끼리 시간을 많이 보내는 편입니다. 외식을 하기도 하고 집에서 피자 만들기나 만두 빚기 등의 요리를 같이 하며 시간을 보냅니다. 그리고 신체적으로 리듬이 처지지 않게 탁구나 스케이트 같은 운동을 하기도 합니다. 평소에도 집이나 학교에서 하던 활동들입니다. 그래야 명절이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문제가 덜 생겼던 것 같습니다.
연휴가 끝나고 다들 평안하게 시간을 보내시고 있나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