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단

일방기억

by 강동화

아빠가 떠나자 엄마는 이 동네, 이 집으로 돌아왔다.


이 집은 어렸을 때부터 스무 살이 조금 넘을 때까지 나도 함께 살던 작은 집이었다. 내가 독립해서 집을 떠나자, 엄마와 아빠는 이 집을 월세로 놓아두고 다른 집으로 이사를 갔다. 그리고 몇 년이 흘러 혼자가 된 엄마는 이 집이 자신에게 충분한 공간이라고 느꼈는지 월세로 살던 사람들에게 계약을 마치기로 전하고, 간단하게 인테리어 공사를 한 뒤에 다시 이 집에서 살겠다고 했다.


엄마는 인테리어 공사가 모두 끝나자 나를 집으로 불렀다. '새로 이사를 했으니 집들이를 해야겠다.'며, 그리고 '와보고 괜찮다면 같이 살아도 되지 않겠냐.'는 말을 농담반 진담반 메시지로 남겼다.

나는 엄마의 메시지에 이틀이나 답하지 않고 묵혀두다가 '엄마, 나는 그 동네에서 안 살 거야.'라고 진담을 가득 담아 답장으로 보냈다. 엄마는 내 답장에 나흘이나 답하지 않고 있다가 '집들이 선물로 뭐 사 올 거야?'라고 내 답장과는 전혀 관계없는 말을 메시지로 다시 보낼 뿐이었다.


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타고 지하철역을 다섯 정거장이나 지난 뒤에 십여분을 걸어서 도착한 집의 겉모습은 옛 기억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붉은 타일이 덕지덕지 붙어있고, 벽돌이 노출되어 있는 모습이 오래된 건물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었다. 집과 다르게 동네의 모습은 많이 달라져 있었다.

지하철역에서부터 집까지 걸어가는 길에 세 번이나 주변을 둘러보느라 걸음을 멈췄다. 처음은 길가에 들어선 대형 커피 프랜차이즈를 보았을 때였고, 두 번째는 길 건너 시장거리가 모두 없어진 자리에 완성된 아파트 단지를 보았을 때였다. 그리고 세 번째는 그 아파트 단지의 높이가 언덕 공원보다 높아서 언덕 공원이 더 이상 동네에서 가장 높은 곳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였다.


엄마 집의 공동현관문은 오래된 철제문이었다. 힘을 주어 문을 밀자 경첩에서 이 건물의 소리는 이런 느낌이야라고 말하는 듯 '끼익'하고 녹슨 쇠가 갈려나가는 소리가 났다. 테라조 무늬로 가득한 데다가 빛바랜 황동색으로 모서리가 장식된 계단을 올라 2층에 도착했다. 계단에서 이어진 복도를 따라 걸어 엄마가 살고 있는 집 문 앞에 도착했다.

현관문에서부터 계단을 지나서 복도까지 지나는 길이 나도 이 집에 같이 살던 예전보다 짧게 느껴졌다. 그때에 비해 다리가 길어질 정도로 크지도 않았는데 그렇게 느낀 건 예전의 나보다 발걸음을 성큼 걸을 정도로 커버렸기 때문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엄마가 살고 있는 집 초인종을 눌렀다. 초인종이 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의 잠금장치가 열리는 소리가 나고 엄마가 문을 열었다.

"왔어? 얼른 들어와."

엄마는 익숙하게 인사를 남기고는 혼자 집으로 들어가 버렸다. 문이 알아서 닫히는 바람에 황급히 손으로 문을 붙잡아 다시 열어야만 했다.


집 내부는 기억보다 훨씬 밝은 색으로 바뀌어있었다. 조금이라도 넓어 보이기 위해 밝은 색으로 골랐겠거니 하며 집을 둘러봤다. 그렇지만 오래된 건물이라 천장이 낮은 데다가 모든 모서리마다 가득 채워져 있는 체리몰딩 때문인지, 아니면 복도에서 생각했던 대로 그 사이 내가 또 커버렸는지 몰라도 엄마의 노력이 무색하게 집은 여전히 작고 좁게만 느껴졌다.

엄마는 주방의 테이블에 과자 몇 개와 커피를 꺼내놓고 앉아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에게 할 이야기가 있는 게 분명했다. 주방으로 다가가서 테이블 앞에 의자에 내가 앉자 엄마는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꺼냈다.

"벽지를 새로 하는데 쉽지 않더라. 여자 혼자 계약하러 왔다고 무시하는 거야. 그래서 내가 인테리어 업체를 두 번이나 바꿨어. 여기 싱크대 상판 보여? 이게 얼마나 좋은 재료인지 아니? 그리고 내가 아는 사람 중에 타일 가게 사장을 하는 친구가 있데 요즘 젊은 애들도 좋아하는 걸 유튜브에서 보고 내가 결정했다니깐 감각 있다고 칭찬도 해주고 하더라?"

질문을 빙자한 엄마의 자랑에 '응.' '아, 정말?' 하는 식으로 대충 대답하며 집 내부를 둘러봤다. 그러다가 엄마는 뭔가 말하기를 결심한 사람처럼 목을 한 번 가다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깐 일어나서 이리 와봐. 너한테 보여줄 게 있어."

"여기 앉아서 다 보이는데 더 볼 게 있다고? 뭔데?"

"잔말 말고 따라와 봐. 분명히 좋아할 거야."

엄마는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내 손을 붙잡고 사뭇 진지한 표정을 하고 나를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는 현관문 옆의 작은 문으로 향했다. 작은 문을 열자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는 빈 방이 나타났다.

"여기가 네 방이야. 네가 돌아왔을 때 어떻게 꾸며야 할지 모르겠어서 말끔하게 청소만 해놨어."

엄마가 보냈던 같이 살아도 되지 않겠냐는 메시지가 농담보다 진담에 더 가까웠다. 그리고 인테리어가 얼마나 잘 되었는지 하는 이야기 모두 나를 이 집으로 돌아오게 하기 위한 이야기였구나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에게는 이 집으로 돌아올만한 이유가 딱히 없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의 계약 기간도 아직 남아있고, 내 방이라고 엄마가 만들어놓은 방에 내 물건이 모두 들어갈 리 없었다. 무엇보다도 완전하게 바뀌어버린 동네 모습에서 생경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나 여기로 안 돌아올 거야. 그러니깐 여기는 손님방으로 하거나 창고로 쓰거나 그래도 돼."

내 대답을 기다리며 작은 문의 문고리를 잡고 서있던 엄마를 보며 말했다. 작은 문고리에 닿아있는 엄마의 손이 눈에 들어왔다. 엄마는 한 손으로는 내 손을 잡고, 다른 손으로 이 문고리를 열며 내가 돌아와 함께 살기를 한껏 기대했겠지 하는 생각에 마음 한 구석에 불편함이 찾아왔다. 하지만 여전히 이 동네는 내가 알던 동네가 아니라는 기분이 들어서 돌아와야겠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집으로 오던 길에 잠시 걸음을 멈추고 보았던 낮아진 언덕 공원의 모습만 계속해서 떠올랐다.


엄마는 내 대답에 아쉬운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이어지는 말도 없이 주방으로 돌아가 테이블 위에 올려놨던 과자를 치우고서는 저녁식사를 준비했다.

저녁식사 메뉴로 감자와 두부가 들어간 된장찌개와 밥, 그리고 계란말이나 애호박볶음 같은 반찬들이 주방 테이블 위로 올라왔다. 엄마가 나도 이 집에서 함께 살았던 때 자주 해서 먹었던 반찬을 일부러 골라서 요리한 게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던 차, 엄마는 포기하지 않고 다시 나에게 물었다.

"집은 인테리어를 새로 해서 너무 바뀌었다 해도, 동네가 그립지는 않았니? 여기서 같이 오래 살았잖아. 친구도 있을 테고, 그 누구지? 매일 너 집에 데려주던 애도 있었잖아."

"엄마, 나 집에 오면서 봤는데. 동네도 참 많이 바뀌었더라. 언덕 공원에는 가봤어?"

"언덕 공원은 왜? 그게 중요하니?"

"언덕 공원도 이 동네에서 제일 높은 데가 아니더라고. 집이 바뀐 거보다 그게 훨씬 더 이상해. 난 그래서 정말 이 동네로 오고 싶지 않아."

"너 정말 계속 그러면 나중에 돌아오고 싶어서 부탁해도 방 안 만들어줄 거야."

엄마가 늘어놓은 엄포에 더 대답하지 않고 저녁식사를 마쳤다. 수저를 내려놓고 멀뚱히 자리에 앉아있었다. 엄마는 주방에서 플라스틱 통을 꺼내와 그릇 안에 남아있는 반찬들을 옮겨 담았다. 그리고 반찬 찌꺼기만 남아있던 그릇을 싱크대로 들고 가 물이 담겨있는 설거지 통 안으로 와르르하고 쏟아버렸다. 고무장갑을 손에 낀 채로 엄마가 나에게 말했다.

"옛날엔 동네 산책하기도 좋아했잖아. 언덕 공원에 한 번 가보는 건 어때? 같이 갈까?"

엄마의 말처럼 나는 동네 산책을 좋아했다. 그리고 동네 산책을 하며 다니던 장소 중에서도 언덕 공원은 나에게 가장 중요한 공간이었다. 이 동네를 떠나고 나서 이따금 집이나 동네가 생각날 때, 항상 그대로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는 공간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거부할 수 없는 변화가 생긴 동네를 보며 언덕 공원도 모두 변해버렸을 것만 같은 불안한 마음이 생겼다. 그래서 언덕 공원에 생겼을지도 모르는 변화를 직접 확인해보고 싶은 마음이 조금씩 생기고 있었다.

"아니야. 나 혼자 가볼래. 혼자 가보고 싶어."

"그래? 그러면 조심히 다녀와. 너무 늦게 돌아오지는 말고."

엄마가 마련해 놓은 슬라이드 슬리퍼가 신발장 아래 놓여있었다. 엄마는 어릴 때 내가 신고 다니던 슬리퍼와 비슷하게 검은색에 하얀색으로 가로 줄무늬가 있는 슬리퍼를 용케도 구해놨다. 내가 하나라도 그리워하며 이 동네로 돌아오기를 바라는 등 용의주도한 엄마의 준비에 조금씩 질려갔다. 슬리퍼를 신고 현관문을 나섰다. 테라조 무늬 계단을 내려와 공동현관문을 힘주어 밀었다. 문의 경첩에서는 여전히 '끼익'하고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집에서부터 언덕 공원으로 향하는 풍경은 걱정하던 대로 많이 바뀌어있었다. 동네 산책을 함께 하던 그와 함께 슬러시나 토스트를 사 먹던 분식가게도 없어졌고, 둘이서 똑같은 플라스틱 부채를 샀던 문구점도 없어졌다. 기억 속 가게들이 없어진 자리에는 프랜차이즈 카페와 편의점이 밝은 불을 내며 자리하고 있었다. 예전에 이 동네에 살 때 거리의 상점들이 내는 빛들이 좋았다. 그와 함께 언덕 공원의 꼭대기에서 거리를 바라보면 어스름하게 보이는 빛들이 마치 밤하늘에 별빛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 모습들은 내가 언덕 공원을 좋아하던 이유이기도 했다.


거리를 걷는 동안 본 많은 변화에 어색한 기분이 들어서 이대로는 언덕 공원으로 향하는 길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찾아왔다. 그래서 대강 길이나 바닥만을 바라보며 걷자고 생각했다. 바닥을 바라보자 도보블록마저 모두 바뀌어버려 내가 알던 동네가 아닌 완전히 새로운 장소에 떨어진 기분만이 들었다. 거리를 벗어나 언덕 공원으로 향하기 위해 바삐 발걸음을 옮겼다.




언덕 공원의 입구는 기억 속 모습 그대로였다. 네모난 판석으로 짜 맞춘 입구는 주변의 수풀이나 나무와는 어울리지 않게 회색이라는 이질감이 여전했다. 이제는 몇 개의 판석이 금가 있거나 깨져있어 흉물스럽게 보이기도 했다. 나는 해가 지고 저녁이 되면 그와 함께 이 입구를 지나쳤다. 둘이 서로에게 기대기로 정했던 날 이후부터 거의 모든 날 서로의 집으로 바로 향하지 않고 회색 입구를 지나 언덕 공원의 계단을 오르고 꼭대기 공터로 향했다.

입구를 지나 언덕 공원의 안으로 들어서자 꼭대기 공터로 오르는 계단이 보였다. 나는 항상 계단에 오르기 전 꼭대기까지 이어진 수많은 계단을 보면 한숨을 쉬곤 했다. 그럴 때마다 그는 계단에 첫 발을 내딛기 주저하는 내 왼손을 그의 오른손으로 잡아 이끌며 계단으로 힘차게 발을 내디뎠다.

처음 계단을 오를 때는 고역이었다. 이렇게 매일 계단을 오르다간 다리에 알이 배겨 흉해질 거라는 내 투정에도 그는 '건강하다는 거잖아. 나는 좋아.'라고 말하며 내 손을 더 꽉 잡았다. 그럴 때면 계단을 내 다리로 오르고 있는지, 아니면 그의 손에 이끌려 올려지고 있는 건지 모르겠는 마음이 들었다가 이내 동네에 제일 높이에 있는 언덕 공원의 꼭대기로 그의 손에 이끌려 함께 오른다는 작은 성취감을 느끼기도 했다.


나는 언덕 공원 꼭대기 공터에 다시 가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열 개의 계단을 지날 때마다 다음 계단으로 이어지는 계단참이 있어 중간에 쉬어가며 오를 수 있었다. 세 번째 계단참에 도착했을 때 내가 오른쪽 벽에 치우쳐 계단을 오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도 모르게 자꾸만 만들어지는 왼쪽 빈 공간을 보며, 이 계단에서 내 걸음이 익숙한 길은 오른쪽 길 뿐이었다.

왼쪽에 기댈 오른손이 없어도 혼자서 계단을 오를 수 있다고 증명하고 싶었다. 증명을 위해 네 번째 계단참에 도착할 때까지는 비어있던 왼쪽 공간으로 계단을 올랐다. 걸어 오르기에는 어렵지 않았지만, 여간 익숙하지 않아 몸이 자꾸만 오른쪽으로 기울어졌다. 다섯 번째 계단참부터는 다시 오른쪽 자리로 돌아가서 계단을 오르기로 했다. 대신 더는 왼쪽에 기대지 않도록 내 오른손으로 계단 벽에 설치되어 있는 철제 손잡이를 붙잡고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언덕 공원 꼭대기 공터에는 등받이가 없는 벤치가 있었다. 등받이가 없기 때문에 편하게 앉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벤치의 왼쪽에서, 그는 오른쪽에서 서로의 등을 맞대고 앉아서 언덕 공원 아래에 펼쳐진 동네의 불빛이나 밤하늘의 별 같은 반짝임을 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중에서도 내가 제일 좋아했던 시간은 반짝거리는 거리를 보며 일상이나 고민과 걱정, 서로에 대한 마음 같은 이야기를 나눌 때였다. 그리고 내 이야기에 그가 답변해 줄 때마다 그의 모든 목소리가 서로 맞댄 등을 통해 떨림으로 전해져 올 때, 소리로 전해지는 게 아니라 서로 맞댄 등을 건너 직접 마음으로 스며들어오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 그 시간을 정말 좋아했다.


계단의 끝이 가까워지면서 '동네가 이렇게나 변했는데 공터나 벤치가 없어지지는 않았을까?' 하는 걱정이 떠올랐다. 아홉 번째 계단참을 지나고, 그다음의 열 번째 계단을 오르고 나서야 언덕 공원의 꼭대기 공터에 도착할 수 있었다. 언덕 공원 꼭대기 공터에서 그와 내가 서로의 등받이가 되어 앉아있던 벤치는 여전히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동네의 많은 변화에도 언덕 공원 꼭대기 공터는 하나도 다르지 않고 그대로 모습이었다. 계단을 오르느라 힘이 빠진 다리를 끌고 벤치로 향했다. 등받이도 없이 벤치에서 익숙한 왼쪽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동네를 바라보았다. 언덕 공원을 향해 걸어오며 변하지 않았기를 바라왔던 모습과는 달리 반짝거리던 거리의 불빛은 온데간데없었다. 그저 파란색 벽이 모든 거리를 가리고 있었다. 이 자리에 앉아서 보았던 동네의 반짝임은 언덕 공원보다도 높게 만들어진 새 아파트의 벽에 가려져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그와 함께 꼭대기 공터 벤치에 앉아 있을 때, 그와 나는 서로 다른 방향을 보고 앉아있었다. 나는 왼쪽, 그는 오른쪽. 등을 맞대고 있다는 편안함 때문이었던지, 왼쪽에서 내가 보던 반짝이는 동네가 내 눈에 담기 충분했기 때문이었던지, 그의 시선에서 보이는 반짝임은 어떤지를 묻거나 서로의 자리를 바꿔 앉아 볼 생각을 해보지도 않았다. 언제나 나는 왼쪽을 보고 있고, 그는 오른쪽을 보면서 이야기를 나눌 뿐이었다.

혼자만의 결정으로 이 동네를 떠나 독립하겠다며, 그에게서도 떠나겠다고 말했던 날에도 나는 내가 보고 있던 동네의 반짝임만을 눈에 담고 있었다. 동네에서 떠나게 되면 이 반짝임을 다시 보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잊고 싶지 않은 마음으로 그의 등에 기대 동네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반드시 떠나야겠다고 이야기하는 나에게 그는 어떤 말도 하지 못하고 서로 맞댄 등을 통해 슬픔을 떨림으로 보낼 뿐이었다.

이후에 우리는 더 이상 서로의 등을 맞대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동네를 떠나버렸다. 동네를 떠나는 순간에도 '나중이 돼서 동네의 반짝임이 그리워지면 어떻게 하지.' 하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와서도 그와 맞댄 등과 동네의 반짝임 둘 다 없어졌지만 그와 등을 맞대고 보던 동네의 반짝임만이 그리웠다. 그래서 혹시라도 그의 시선에서 바라보던 동네의 반짝임은 남아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으로 벤치에서 등을 돌려 그가 바라보던 벤치의 오른쪽을 바라보았다.

그곳에 반짝이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내가 보던 동네의 반짝임도, 하늘에서 빛나는 별의 반짝임도 없었다. 수풀과 나무로 빽빽하게 둘러싸인 야트막한 언덕과 벽이 있을 뿐이었다. 불빛 없는 까만 언덕과 벽이 그가 볼 수 있는 반짝임을 모두 가리고 있었다. 그의 자리에서 보이는 모습이라고는 언덕 주변의 어두움에 섞여 바람에 조금씩 흔들리는 나뭇잎과 나뭇가지가 전부였다.

그가 나와 함께 할 때 알던 반짝임은 내가 등을 맞대고 전해주던 내 떨림뿐이었다. 그리고 어둡게 흔들리는 나뭇잎을 보며 언젠가는 나와 마주 보는 방법으로 반짝임을 나눠주었으면 한다는 기대감이었으리라는 생각도 잠. 이제는 서로 등을 맞댄 떨림으로 혹시나 있을 수도 있는 반짝임을 기대할 수도 없다는 실망감에 휩싸여 벤치에서 일어나 언덕 공원을 내려가기로 했다. 계단을 내려가 언덕 공원을 떠나 엄마의 집으로 돌아가며, 나는 이제 이 동네로 돌아오지 않겠다고 다시 한번 더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