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방기억
“이걸로 주세요.”
“'행복해 촉촉한 딸기 케이크'. 가장 큰 사이즈로. 맞으시지요?”
“네. 그걸로 주세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점원은 쇼케이스 냉장고 문을 열고는 두 번째 줄의 가운데 있던 케이크를 꺼내고 카운터 안쪽의 포장대로 향한다. 쇼케이스 냉장고 정중앙에 있던 가장 큰 케이크가 자리에서 빠지니 냉장고가 비어 보인다. 곧 새로운 케이크가 그 자리를 대신하겠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케이크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진다.
“아유. 누구 생일이길래 이렇게 큰 케이크를 사가세요? 파티하시나 봐요. 초는 어떻게 넣어드릴까요?”
점원이 케이크를 포장하면서 너스레를 떨며 묻는다.
“아니에요. 저 혼자 먹을 거예요.”
점원은 케이크를 포장하던 손을 멈추고 고개만 돌려 나를 위아래로 살핀다.
“그러면 여기 조각 케이크도 파는데. 이거는 혼자 먹기에 양이 너무 많지 않아요?”
“괜찮아요. 혼자 먹을 거고, 초는 서른네 개로 주세요.”
“혼자 먹는데 초가 필요하세요?”
점원의 오지랖 넓은 물음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고민하던 찰나, 주방 안쪽에서 매니저로 보이는 사람이 점원을 부른다. 개방형 주방이기에 어떤 대화들이 오고 가는지 얼핏 들린다. '홀케이크를 가격대로 주고 팔면 그만이지 조각케이크를 추천해서 냉장고에서 이미 뺀 케이크를 못 팔면 네가 책임질 거냐.'는 이야기가 들리고 난 뒤에 점원이 내 앞으로 돌아왔다.
"죄송합니다. 얼른 포장해 드릴게요!"
점원은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포장에만 집중한다. 부탁했던 초를 케이크 상자에 붙이며 마무리하고 포장된 케이크를 전한다.
가게 문을 나서는 순간 뒤에서 '그냥 케이크나 팔지. 그런 건 왜 꼬치꼬치 캐물어?'라는 매니저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 말이 맞다. 누구도 내 생일케이크에 대해 무어라 말할 필요는 없다.
이번으로 벌써 스물 하고도 두 번째로 혼자 케이크를 먹는다.
처음 케이크를 혼자 먹은 건 열두 살의 생일이었다. 하필이면 우리 반에는 나와 같은 날에 생일인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와 생일이 같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나서 친해져 보려 말을 걸었지만, 내 바람과 달리 우리는 친해질 수 없었다. 그 아이는 나와 생활양식이나 말투, 친구를 사귀는 방법, 그리고 사는 집까지 모든 것이 달랐다. 나와 그 아이의 다른 점을 여실히 알게 된 건 서로의 생일이 다가오는 때가 되어서였다.
그 아이는 우리의 생일이 다가오기 한 달 반이나 전부터 반의 아이들에게 자신의 생일파티를 알리기 시작했다. 어떤 레스토랑에 모여서 생일파티를 할지, 끝나면 어디로 놀러 갈지, 부모님이 같이 놀러 가라고 용돈을 얼마나 줬는지 같은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늘어놓았다. 그런 이야기를 할 때마다 반 아이들의 그 아이의 주변에 몰려들었다. 그리고 이따금 어떤 선물을 하면 그 아이가 좋아할지에 관한 이야기를 서로 나누고는 했다.
나는 우리의 생일까지 열흘 남은 날부터 나의 생일에 대해서 아이들에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정성스럽게 손으로 그려 만든 초대장을 하나씩 친한 친구들에게 전했다. 초대장을 전하며 생일파티는 우리 집에서 진행되고, 끝나면 놀이터에 가서 같이 놀자고 말했다. 부모님이 그날도 집에 없으니 우리 집에서 늦은 시간까지 우리끼리만 놀 수 있다는 사실을 놓치지 않고 전했다. 초대장을 받은 아이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았지만 생일의 주인공인 내가 그 이야기들을 직접 들어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 아이와 나의 생일, 수업이 끝나고 친구들에게 ‘오늘 생일파티에 올 거지?’ 하고 물었다. 그러자 아이들은 ‘당연하지.’ 라거나 ‘같이 갈래?’ 하고 말했다. 나는 친한 친구들과 저녁까지 같이 시간을 보낼 생각에 기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 도착해 문을 열자 엄마가 거실 가운데 생일상을 차려놓았다. 맛있어 보이는 생크림 케이크 하나. 피자 한 판. 양념치킨 한 상자,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과자가 여러 봉지. 생일파티 상차림 구석에는 엄마의 편지에 놓여 있었다. 촛불 켤 때는 불을 조심해야 하고, 친구들과 재미있게 놀고, 밤에 만나서 우리끼리도 또 생일파티를 하자는 내용이었다. 편지는 나중에 내 비밀상자에 놓을 생각으로 주머니 속에 잘 집어넣었다. 초대장에 적어둔 생일파티 시간까지는 아직 삼십 분 정도 시간이 남아 있었다.
생일파티를 시작하기로 했던 시간으로부터 30분이나 지났는데 친구들은 오지 않았다. 참으려 해도 자꾸만 눈물이 나왔다. 얼마를 기다려도 내 생일파티에는 아무도 오지 않을 게 분명했다. 케이크 위 촛불에 불을 켜는 걸 조심해야 할 필요도 없어졌다. 나는 눈물을 닦고 케이크 위에 꼽아놓았던 초를 빼냈다.
생일상에 차려진 음식들이 야속했다. 평소라면 자주 먹지도 못하는 맛있는 음식이었지만, 당장이라도 쓰레기통 속에 숨겨버리고 싶었다. 그러다 창피한 마음도 잠깐, 이까짓 생일파티 때문에 차려진 음식들을 버리기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방으로 가서 지퍼백을 가져왔다. 피자를 조각 내 지퍼백에 담았다. 치킨을 지퍼백에 담고, 남은 양념은 싱크대에 버렸다. 밤에 엄마와 아빠가 오면 전자레인지에 돌려서 같이 먹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과자는 내 방으로 가져가 책상 아래에 작은 공간에 넣어두었다. 숙제를 하다가 입이 심심해지면 먹어 치울 요량이었다. 상에는 케이크가 외롭게 남아 있었다. 케이크만은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지퍼백에 담아 냉장고에 넣어두면 나중에 꺼내먹기 힘들고, 버리기에는 케이크가 너무 예뻤다. 그리고 아무도 먹지 않은 케이크를 엄마가 본다면 왜 아무것도 먹지 않았느냐고,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물어볼 게 분명했다. 엄마에게 뭐라 이야기해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차라리 케이크라도 다 먹으면 애들과 케이크만 먹고도 배가 불렀다고 이야기하면 될 것 같았다.
주방으로 가서 숟가락을 가지고 와 혼자 케이크를 떠먹기 시작했다. 케이크는 기대했던 대로 부드럽고 달고 맛있었다. 생일파티에 오지 않은 아이들은 미웠지만, 내 케이크가 잘못된 건 아니다. 내 생일이니깐 나를 축하하기 위해, 나만을 위한 케이크가 함께 있어줬다.
밤이 되어서 집에 온 엄마는 생일파티는 어땠냐고 물었다. 케이크만 다 먹고 친구들과 놀다가 다들 집에 갔다고 대충 대답했다. 엄마는 친구들이 배고파하지는 않았느냐며, 선물은 무엇을 받았느냐며 끈질기게 물어봤다. 나는 어물쩍 대답을 피하며 숙제를 핑계 삼아 방으로 들어갔다. 숙제는커녕 바닥에 엎드려 만화책을 보며 시간을 보냈다. 밖에서는 엄마가 누군가와 통화를 하는지 뭐라 말하는 말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다.
아빠까지 집에 오자 냉장고에 있던 피자와 치킨을 꺼내 전자레인지에 돌려서 같이 먹었다. 엄마와 아빠는 나에게 피자를 한 조각씩 들고 건배하자고 했다. 그런 엄마와 아빠를 보니 자꾸 웃음이 났다. 그제야 오늘이 비로소 생일이라는 기분이 들었다.
그날 밤, 나는 잠을 자다가 이상한 소리에 놀라 잠에서 깼다. 어둠이 무서워 조용히 문을 열자 엄마와 아빠가 거실에서 부둥켜안고 있었다. 엄마는 어깨를 이따금 들썩이며 울고 있었고 나는 미안한 마음에 문을 다시 닫고 이불속으로 숨어 들어갔다.
다음 해가 되었을 때 엄마는 나에게 생일파티는 어떻게 하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생일파티를 하고 싶지 않았다. 엄마에게 이제 중학교도 갈 나이인데 그런 건 뭐 하려 하느냐고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그러자 엄마는 배시시 웃으며 ‘우리 딸, 다 컸네.’ 하고는 나를 안아줬다. 엄마의 품은 케이크처럼 포근하고 부드러웠다.
그때부터 매년 생일이면 나만을 위한 케이크를 사 먹는다. 케이크를 들고 집으로 향하는 길에 엄마에게 전화가 와서 저녁에 찾아오라고 한다. 케이크를 다 먹고 난 뒤 저녁에 엄마와 아빠에게 찾아가니 어른이 된 지금도 나에게 ‘생일파티는?’ 하고 묻는다. 나는 또 그런 건 뭐 하려 하느냐고 시큰둥하게 대답한다. 그러면 엄마는 또 ‘우리 딸 다 컸네.’하고 나를 안아준다. 엄마의 품은 여전히 케이크처럼 포근하고 부드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