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하루

일방기억

by 강동화

아내와 나는 퇴근길이 시작되기 전에 서로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루도 빠짐없는 퇴근길 전화통화에 주변 사람들은 서로 너무 좋아하는 게 아니냐고 말하며 놀리곤 했다. 하지만 우리의 전화는 사실 엄밀하고도 냉혹한 승부를 위한 출발점이었다.


매일 저녁 누가 먼저 집에 도착하느냐가 우리의 소소한 승부이자 즐거움이었다. 각자 회사에서부터 집까지 도착하는데 비슷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아슬아슬하게 승패가 갈리는 치열한 승부가 되기도 했다. 게다가 매일 저녁에 해야만 하는 설거지나 빨래와 같은 집안일을 승부 결과에 따라 누가 하는지로 정한 뒤부터는 더욱 흥미진진한 승부가 되었다.

집안일 내기가 시작되고 한동안은 서로 이기고 지며 사이좋게 집안일을 나눠서 하곤 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설거지며 빨래, 화장실청소, 음식물 쓰레기 버리기도 모두 내가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내가 이상한 술수를 쓰는지 아니면 단순히 운이 없는지 이번 달에는 한 번도 이길 수가 없었다.


퇴근길에 승부를 걸고 부지런히 집에 가면 아내가 먼저 도착해서 웃으며 나를 맞이했다. 하루는 버스가 막혀서, 하루는 지하철이 중간에 고장 나서, 또 어떤 날은 길을 걷다가 친구를 만나기도 하는 흠잡을 일 많은 퇴근길이 계속되었다.

그럴 때마다 아내는 이미 후줄근한 홈웨어로 옷을 갈아입은 뒤, 억울해하는 나를 놀리기 일쑤였다. 대부분은 문 앞에 서서 웃으며 나를 안아주었지만, 불을 다 끄고 방에 숨은 채 '오늘은 이겼다!'라고 외치며 혼자서 승리의 춤을 추고 있는 나를 몰래 동영상으로 찍고 있던 날도 있었다.

얄밉고 분했지만, 집안일을 다 하고 나서 고생했다고 아내가 안아주면 기분이 풀리곤 했다. 그래도 그 품속에서 내일은 내가 반대로 아내를 그렇게 안아주는 모습을 상상하며 승부욕을 불태웠다.


오늘만큼은 아내를 이겨야겠다는 마음으로 온종일 시간을 보냈다. 퇴근 시간이 되기도 전에 업무를 모두 마치고 책상 위 청소까지 끝냈다. 아무런 방해와 불운 없이 집까지 온전하게 도착하는 순간, 드디어 오늘이야말로 완벽한 하루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시곗바늘을 노려봤다.

6시 정각, 비장한 마음으로 사무실을 나서며 전화를 걸었다.

“퇴근했어?”

“그럼요. 오늘 설거지할 준비는 되셨나? 어제 우리 짜파게티 먹은 거 알지? 나 냄비랑 그릇도 물에 안 담가놨다? 너 설거지하라고.”

휴대전화 너머의 아내 목소리에는 장난기와 거드름이 한가득 붙어 있었다.

“네 잘못을 네가 알렸겠다. 그 짜파게티. 오늘 손 불어 터지게 설거지하게 할 거야. 각오해.”

“어? 혹시 한 번은 이겨보려고 아까 몰래 퇴근하고 지금 전화한 건 아니겠지?”

“그렇게 야비하게 이기면 기분 안 풀리거든? 요즘 운이 없을 뿐이라고 했지.”

“집안일하면서 징징거릴 때마다 내가 말했지? 길을 안 잃어버리는 것도 실력이고 버스를 잘 타는 것도 실력이면서 지하철을 빨리 타는 것도 실력, 빨리 걷는 것도 실력이라고. 이기고 싶으면 연습을 좀 하세요.”

“지금 도발하는 거야? 오늘은 진짜 내가 이긴다.”

아내의 대답을 듣지도 않고 호기롭게 전화를 끊었다. 출발하기에 앞서 머릿속으로 빠르게 퇴근길을 그려보았다. 그중에서도 퇴근 시간에 지연을 주는 불운 포인트를 몇 가지 떠올렸다.

회사 문을 나서면 바로 앞에 있는 큰 건널목. 건널목을 지나면 나타나는 지하도. 지하도 끝에 있는 지하철역. 지하철을 타고 두 정거장 지나면 있는 환승역. 환승역에서 다른 라인으로 갈아탄 뒤 여덟 정거장. 집 근처 지하철역에서 내린 뒤 집까지 언덕길. 이 모든 고비를 넘어서 집에 빠르게 도착해야만 했다.


회사 앞 건널목은 빨간불 대기 시간이 길어서 한 번이라도 신호가 걸리면 시간을 많이 버리게 된다. 크게 숨을 몰아쉰 뒤 회사 문을 나섰다. 초록색. 아직 초록색이지만 아래 숫자 점멸등이 깜빡거리고 있었다. 25초, 24초, 23초. 전력으로 뛴다면 건널 수 있는 시간이었다. 힘껏 달려 건널목을 건너왔다. 숨은 가빴지만 해냈다는 성취감에 기분이 좋았다.

차분히 숨을 고르며 길을 따라 걷다 보니 금방 지하도 입구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지하도의 계단을 내려가는 길에는 퇴근으로 발걸음을 서두르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지하도는 사람도 많고 상가도 많아서 한 번 길을 헤매면 먼 길을 돌아갈 수도 있다.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만 했다. 언젠가 한 번은 매일 비슷한 시간에 같은 길로 퇴근하는 익숙한 사람을 보고 아무 생각 없이 따라가다 평소보다 30분이나 더 늦어본 적도 있었다. 오늘은 그 누구도 믿지 않고 내 기억만을 믿기로 했다. 출근하던 길을 거꾸로만 찾아가면 될 일이었다. 혹시라도 나를 헷갈리게 할 사람을 피하고자 아무하고도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정신없이 지나가는 인파를 뚫자 지하철역 입구가 눈에 보였다. 여기까지 도착하는데 평소보다 10분은 더 일찍인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오늘의 승리가 조금씩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지하도의 정중앙 홀에 도착한 뒤 오른쪽으로 돌아서 지하철을 타기 위해 개찰구를 지나 플랫폼으로 내려가는 계단으로 향했다. 여기까지 일찍 도착한 김에 오늘은 지하철을 조금 기다려도 여유가 있으리라는 생각에 괜히 어깨가 으쓱거렸다. 그러던 찰나, 생각지도 않게 ‘투루루루루’ 하고 지하철의 도착을 알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걸음을 멈추지 않고 부지런히 계단을 내려갔다. 내가 플랫폼에 도착하는 순간, 내 앞에 멈춰 선 지하철의 문이 열렸다. 오늘은 운이 좋다. 분명히 이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다음 고비인 환승역에 도착했다. 지하철이 역에 도착하기도 전에 문을 향해서 다가갔고, 문이 열리는 즉시 걸어 나갈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었다. 언젠가 한 번은 오늘과 비슷하게 여기까지 아무런 막힘없이 도착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많이 오고 가는 환승역이라서 그런지 아는 사람을 만나고 말았다. 그것도 오래간만에 만난 대학 동기여서 안부 인사에 더불어 생각지도 못한 저녁 식사에 초대되고 말았다. 물론 친구를 만난 일은 기쁘지만, 간만의 회포를 풀고 난 뒤 도착한 집에서는 음식물 쓰레기봉투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거기다가 집으로 돌아오지도 않고 갑자기 만난 친구와 저녁식사를 했다는 사실에 화가 난 아내는 다음날 저녁이 될 때까지 나에게 어떠한 말도 붙이지 않았다. 지하철이 역에 도착하고 환승을 위해서 내리면서 오늘도 혹시 아는 사람을 마주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문이 열리고 지하철에서 내린 뒤 주변을 빠르게 둘러봤다. 다행히 아는 사람이 없었다. 얼른 다른 플랫폼으로 옮겨가면 아무 일도 없이 갈아탈 수 있었다. 바쁜 걸음으로 환승역으로 향했다.

환승역으로 걸어가는 길목에서 익숙한 얼굴을 발견했다. 여기까지 오다가 괜히 대학교 동기 친구를 떠올렸나, 반대편 길목에서 그때 만났던 대학교 동기 친구가 걸어오고 있었다. 하필이면 이런 날에 또다시 나타나다니 아내가 보낸 첩자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몰려왔다. 오늘만큼은 저 친구에게 잡혀가고 싶지 않았다. 여기까지의 수고가 모두 깨질 판이라 가방으로 얼굴을 가리고 뛰기 시작했다. 친구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여기까지 한 걸음도 멈추지 않고 달려온 완벽한 퇴근길에 방해가 되는 요소를 피해야만 했다.

친구를 지나 환승할 노선의 플랫폼에 도착하자마자 신기하게도 또다시 지하철이 내 앞에서 문을 열고 나를 환영하고 있었다. 한껏 달린 나를 위한 보상일까 하는 시답지 않은 생각을 하면서 가볍게 문을 지나 지하철을 탔다. 심지어 지하철 안은 평소보다 타고 있는 사람이 적어 자리까지 있었다. 설마 이게 나를 위한 자리인가 하고 의심을 하는 사이에 자리가 하나씩 줄어들었다. 더 고민하지 않고 냉큼 앞에 하나 남은 자리로 걸어가 앉았다. 이대로 지하철이 달려서 집에 도착하면 평소보다 거의 한 이십 분은 빠르게 도착하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완벽한 승리가 눈앞에 있었다. 승리에 취해 아내에게 문자메시지를 남겼다. ‘어디야? 짜파게티 설거지 준비는 다 된 거야?’ 아내에게 답장이 오지 않았다. 나를 이기기 위해서 받은 문자를 확인할 새도 없이 바쁘게 걷고 있는 아내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내를 이기는 날이 오면 꼭 하고 싶은 게 있었다. 빠르게 샤워를 마치고 여유가 넘치는 표정으로 아내의 억울한 표정을 보고 싶었다. 그리고 설거지를 하는 아내에게 몰래 다가가 엉덩이를 찰싹 때리거나 살짝 꼬집어줄 요량이었다. 설거지를 하느라 두 손을 사용하지 못하는 아내의 어이없어하는 얼굴을 보며, 거실의 소파로 도망쳤다가 아내가 투덜거리며 곁으로 왔을 때 웃으면서 안아주고 싶었다. 매일 아내가 나에게 했던 행동을 똑같이 갚아주고 싶었다. 이런저런 상상을 하며 헤벌쭉거리다가 내리는 역을 놓칠 뻔했다. 다행히 눈을 흘깃거리다가 역 이름을 겨우 발견했고, 문이 닫히기 일보 직전에 내릴 수 있었다.

지하철역에서 빠져나와 집으로 향하는 언덕길을 오르며 오늘은 한 번도 멈춰 있지를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회사 문을 나서고 난 뒤부터 빠르든, 느리든, 뭔가 다른 교통수단을 타든, 멈춰 있는 시간이 거의 없었다. 이렇게 완벽에 가까운 퇴근 날이 나에게 찾아왔다는 사실에 언덕길을 오르는 발걸음이 더 가벼워졌다. 다시 한번 휴대전화를 확인해 봤지만, 아직도 아내에게서 답장이 오지 않았다. 혹시 벌써 집에 도착해서 씻고 있는 건 아닐까는 생각이 들자 가벼운 발걸음에서 바쁜 발걸음으로 바뀌어 거의 뛰듯이 집으로 향했다.


드디어 집에 도착했다. 문을 열자 불이 꺼져있는 집은 고요했다. 아내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고, 오래간만의 승리도 부족해서 완벽한 승리였다. 오늘의 퇴근길은 완벽했다. 이제 지하철에서 상상했던 모습처럼 아내를 놀려먹기만 하면 정말로 완벽한 하루가 될 예정이었다.

얼른 샤워를 하고 홈웨어로 아내를 맞이할까 하다가 예전에 방에 숨어 있다가 신나서 춤을 추는 나를 놀리던 얄미운 모습이 떠올랐다. 얼른 집에 불을 끄고 방문 뒤에 숨었다. 쪼그려 앉아 문틈으로 시선만 빼꼼히 꺼내놓고 곧 도착할 아내를 기다리기로 했다.


10분이 넘는 시간 동안 쪼그려 있더니 다리가 아파왔다. 얼마 가지 않아 다리를 쭉 펴고 주저앉았다. 아내가 집에 오지 않는다. 아내를 놀리려는 계획에서 기다림은 힘들고 지루하게 느껴졌다. 아내는 그날 나를 놀려먹기 위해서 얼마나 오랜 시간을 숨어 기다렸던 걸까? 춤추는 내 모습을 찍은 영상을 반복해서 보여주는 아내에게 성질이 나던 까닭에 그런 건 물어보지도 않았다. 숨어서 기다리는 일이 마냥 재미있는 일이라는 예상과 다르게 힘든 일이었다. 숨어 있기를 포기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다. 씻고 난 뒤 아내를 기다리기로 했다.

샤워를 마치고 홈웨어로 갈아입었는데도 아내가 집에 오지 않았다. 완벽한 하루가 완전히 깨져가고 있었다. 평소였다면 늦게 도착한 내가 현관문에 주저앉은 채 ‘오늘은 지하철이 놓쳤어.’ ‘걔는 왜 나를 알아봐서 지게 하냐.’ 같이 칭얼거리고 있을 시간인데도 아내가 집에 도착하지 않았다.

아내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 아닐까 불안한 마음도 조금 들었지만 먼저 도착해서 승부에서 이긴 모습을 반드시 보여주고 싶었기에 전화를 하지 않고 기다렸다. 이렇게까지 늦으면서 무슨 일이 있다면 거꾸로 아내에게서 전화가 먼저 오기라도 할 텐데 그 조차 없어 괜히 불안했다. 그러고 보니 나도 대학교 동기를 만나고 집에 늦게 도착했던 날에 전화조차 하지 않고 '오늘 늦어. 네가 이겼어.'라고 대충 문자를 보내고 말았다. 아내는 그때도 아무 말 없이 나를 잘 기다려줬다. 물론 집에 도착한 나를 두 개나 되는 음식물 쓰레기봉투가 맞이하고 아내는 다음날이 될 때까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만.


혼자 있는 집은 어두웠다. 조명을 켜서 집 안은 환하게 밝혀져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아내와 둘이 같이 있을 때보다 어두워 보였다. 거실 조명이 고장이라도 나서 덜 켜졌나 싶어 여기저기 오며 가며 살펴봤지만, 전등의 문제가 아니었다. 혼자서 집을 지키며 아내를 기다린 게 도대체 얼마만의 일이었는지 감조차 오지 않았다.

집에서 홀로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아내를 기다리는 건 이상한 기분이었다. 집에 늦게 도착한 나를 보고서 활짝 핀 아내의 표정은 나를 놀리는 게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표정은 내가 돌아와 둘이 같이 있게 돼서 찾아온 안심에서 나온 웃음이었다. 같이 있어 무섭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에서 찾아오는 행복이었다.

완벽한 하루의 완성은 집에 일찍 도착하는 것이 아니었다. 서로의 퇴근길이 똑같은 시간이 걸려 똑같이 집에 도착해서 승부도, 내기도 걸 필요가 없을 때 완벽한 하루였다. 그리고 만약 내가 조금 늦어지더라도 너무 늦게 도착하지 않아 밝은 집에 함께 있게 될 때 완벽한 하루를 만들어갈 수 있었다. 그런 온전한 행복이 그리웠다.


30분이나 더 지나고 아내가 집에 도착했다. 오늘은 자신에게 운이 없었음을 시인했다. 버스 정류장에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아 두 번이나 보내버렸다나. 게다가 겨우 탄 버스는 족족 신호에 걸리는 바람에 짜증이 몰려왔다나. 그래서 내가 먼저 집에 도착한 게 당연했다는 듯 아무런 억울함이나 칭얼거림이 없었다.

오히려 격정적인 반응은 나에게서 나왔다. 옷도 갈아입지 못한 아내를 쫄래쫄래 쫓아다녔다. 항상 소파에서 아내에게 안겨 있던 것처럼 안기고 싶었다. 아내는 그런 나보고 귀찮다며 설거지가 끝날 때까지 소파에 앉아있으라고 했다.

소파에 앉아 있으니 아내가 어느새 주방으로 자리를 옮겨 설거지를 시작했다. 그릇이 부딪쳐 달그락거리는 소리. 이따금 들려오는 콧소리가 섞인 흥얼거림과 오늘따라 버스정류장에 가득했던 사람들을 탓하는 투덜거림마저 듣기 좋았다. 소파에서 기다리기가 이내 지겨워진 나는 발소리를 줄여가며 아내에게 다가갔다. 아내는 냄비에 눌어붙은 짜파게티의 흔적을 떼어내는데 온 정신을 쏟느라 가까이 온 나를 알아채지 못했다. 숨 죽이며 손을 한껏 추켜올렸다가 휘두르며 아내의 엉덩이를 찰싹 때렸다.

“야! 죽는다!”

한쪽 손에는 수세미를. 다른 손에는 냄비를 들고 화를 내는 아내를 피해 방으로 도망쳤다. 집에 오지 않는 아내를 기다리던 때처럼 문 뒤에 숨었다. 쪼그려 앉은 다리가 아프기는커녕 아내가 언제 나를 잡으러 올지, 나를 찾으러 온 아내에게 어떤 표정을 해야 할지 떠올리며 웃음이 새어 나왔다. 여전히 오늘은 완벽한 하루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