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출근할 때마다 야쿠르트 아줌마 한 분이 계신다. 여의도역 부근인데, 금융감독원이라던가 하나금융투자, 한국투자증권 등이 위치해있어 이동인구가 많은 곳이다.
요즘에 그 분은 날씨가 추워서 옷을 두툼하게 입고 나오신다. 정말 바람이 불고 눈이 오는 날에는 목도리를 두르고 방한 모자까지 쓰시기도 한다. 춥다 보니까 제자리 뛰기를 하는 모습도 보인다.
다른 분들은 그 곳에서 김밥 파는 분들, 찌라시 나눠주는 분들에게 더 관심이 갈지 모르지만 나는 유독 야쿠르트 아줌마에 눈길이 간다. 참고로 말하면 나와 그 분은 일면식이 없다.
야구르트 아줌마에 관심이 가는 이유는 어머니께서 과거 그 일을 하셨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IMF 직후인 1998년쯤부터 야구르트 아줌마를 하셨는데 주변 친구 어머니 중에서도 이 일을 시작한 분들이 있었다. 그때를 기점으로 맞벌이 가정이 굉장히 많아졌는데, 내 또래 어머니들이 생활전선에 많이 나오셨다.
요즘에야 야쿠르트 카트에 전동모터가 있어서 많이 나아졌지 20년전에는 수레를 끌 듯 밀고 올라가야 했다. 나도 수능이 끝나고 한 번 어머니 일을 돕는데 19~20세라는 신체적 전성기를 맞았던 나도 엄청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여름에는 땡볕에 있다 보니까 더워서 힘들고, 겨울에는 춥고 눈이 와서 길이라도 얼면 리어카(?)를 끌기 매우 힘든 것이다.
그리고 야구르트 아줌마들이 편해보여도 회사로부터 돈주고 물건을 받아서 판매하는 구조라 결국 영업을 해야 하는 것이다. (한국야쿠르트 소속이라고 해서 공짜로 물건 받는게 아니다.)
게다가 판매하기 유리한 지역과 불리한 지역이 있어 이를 두고 갈등, 암투가 치열하다고 한다.
어머니께서는 이 일을 3년전까지 하셨다. 1998년부터 2014년이니 대략 17년 정도 된다.
아무래도 리어카를 끌고 다녀야 하기 때문에 특히 언덕 지형을 이동할 때 관절의 무리가 갈 수밖에 없고 물건을 집는 일을 많이 해서 손가락에도 악영향이 있었다. 실제로 어머니 무릎이나 손가락 쪽에는 그 당시의 후유증이 남아있다.
그러다보니 여의도 근처 야구르트 아줌마를 볼 때마다 수많은 생각이 교차한다.
내가 좀 더 좋은 곳에, 보다 빨리 취업했더라면 어머니께서 그 일을 빨리 그만두실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자식들 위해서 고생하셨구나 생각, 내가 불효했구나 등등 다양한 생각과 회환의 감정이 든다.
그러면서 지금 저 아줌마도 가정을 위해서 야쿠르트 일을 하시고 있구나 하는 생각 또한 든다. 야쿠르트 아줌마들이 얼마나 힘든지는 나도 들어서 대략은 알고 있다.
그때 생각이 나서 그런가, 오늘은 저 야쿠르트 아줌마 매상을 올려줄 겸 1000원짜리 바나나 우유를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