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틀 포레스트>는 모처럼 편하게 볼 수 있는 영화다. 봄-여름-가을-겨울의 농촌마을의 모습, 게다가 김태리, 류준열이라는 이미 검증된 젊은 배우와 진기주라는 떠오르는 샛별의 매력들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런데 여기서는 농촌의 평안한 이미지 말고 시험의 합격, 불합격과 당사자의 심정을 생각해봤다.
(아래에는 이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에서 혜원(김태리)는 오랜만에 고향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영광스러운 귀환(?)은 전혀 아니었다. 힘들게 서울에 있는 대학을 다니고 알바를 하면서 노량진에서 임용고사를 준비하지만 떨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남자친구는 합격을 했다.
은숙(진기주)은 시골로 돌아온 혜원을 향해 "너는 떨어지고 남친은 붙고 그래서 온 거 아니야?"라고 정곡(?)을 찌르기도 한다. 혜원은 힘없이 "그냥 배고파서"라고 대답하지만 솔직히 은숙의 지적이 맞는 것이었다.
우선 혜원은 남친한테 흔쾌히 축하해줄 심정이 아니었을 것이다. 나도 혜원의 심정이 이해가 가는게 나도 취업을 준비하던 시절 서류부터 광탈하면서 자존감이 뚝 떨어지는데, 주변에서 좋은 직장에 가면 '축하'보다는 '비교'와 '비참함'의 감정이 훨씬 컸기 때문이다. 그래서 잠수를 탔는데 이 영화를 보면서 그때의 감정이 다시 떠올랐다.
아마 둘 다 떨어졌다면 혜원이 남친의 연락도 받지 않고 시골로 도피하듯 내려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물론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상처는 아물겠지만 그 순간의 감정은 경험해본 사람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혜원은 자신에 대한 실망감은 물론 남친의 합격을 보며 자존심이 상했을 것이다.
그런데 남친의 입장도 이해가 가는 부분이 있었다. 일단 혜원의 감정이 상하지 않기 위해 합격할 수 있는 사람이 불합격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혜원의 심정을 이해해서 정말 조심스럽게 연락을 취한다.
혜원한테 연락을 기다린다고 했고 한 번 통화가 됐을때도 매너있게 감정을 건드리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한편으로는 남친은 합격의 기쁨을 누릴 자격이 있었지만 혜원때문에 충분히 누리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겨울이 지나고 봄도 지나고, 즉 몇 개월이 흐를 때 혜원은 남친한테 전화를 건다.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하자 남친은 덤덤한 목소리로 “헤어지는 말 하려고?” 하면서 이별을 고하려는 혜원의 부담감(?)을 누그러 뜨려준다.
결국 그 커플은 누군가의 특별한 잘못보다는 시험의 당락(當落)으로 깨지고 말았다. 다만 서로가 처했던 상황을 최대한 이해하려고 했고, 혜원도 마지막에 “늦었지만 합격한 거 축하해”라고 한다. 남친한테 축하하는 말을 하기까지 몇 개월이 걸린 셈이다.
그런데 영화를 다보고 나니 혜원의 불합격은 한편으로는 새로운 삶의 길을 찾는 계기가 됐다는 생각도 든다. 시골에 내려와 1년간 농촌 생활을 하면서, 친구들과 지내고 때로는 다투면서 ‘내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하고 나름의 결론을 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영화 후반부에는 혜원이 확실한 결정을 내리는데, 1년간의 경험이 혜원에게는 큰 자산이 됐을 것이다. 또한 고3때 집을 나간 엄마의 심정을 지금에서야 조금씩 이해하면서 엄마와 딸이 화해할 수 있는 가능성도 열리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