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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rseilleu Jan 10. 2016

과거 해병대를 지원했었던 기억

요즘 <진짜 사나이>를 보는데, 몇 달간 해병대 훈련을 받는 모습들이 나온다. 어느새 십수 년이 지나가버린 기억이지만 나도 해병대를 가려고 했던 시절이 있었다. 게다가 수색대 교관으로 나오는 이정구 상사를 보면서 그때의 생각이 났다. 



때는 2001년 8월쯤으로 기억하는데 나는 해병대에 지원했었다. 당시 나는 대학 수능 이후 강도 높은 자체 훈련을 통해 20kg 이상 감량했었고, 2000년 대학 1학년 시절 여름, 겨울로 지리산을 두 번이나 종주하는 등 체력적으로나 체형적으로 '리즈 시절'을 보내고 있었다. 


지원 이유로는 대학 선배 중 한 분이 해병대 장교로 입대했었고, 인간극장 해병대 편도 인상 깊게 봤고, 집안 사정 상 군대에 빨리 가야 되는 상황 등이 복합적으로 고려됐다. 물론 이왕 군대 갈 거 좀 멋지게 하고 싶었고, 빨간명찰을 달고 싶기도 했다. 


당시 2001년은 IMF의 상처가 채 아물지 않은 시기라 너도 나도 군대에 일찍 가려고 했지만(나도 집안 경제 부담 주지 싫다는 말을 했었다) 인원이 적체되다 보니 가고 싶을 때 입대를 할 수 없는 상황도 있었다. (그렇다고 금수저가 아닌 이상 안 갈 수도 없는 노롯이고)


또한 작은 아버지도 해병대 출신이었는데, 해병대를 갔다 오면 전국적으로 퍼져있는 해병대 네트워크에 소속되겠구나 하는 생각도 했었다. 

14년전 인간극장 나올때와 비교해 이정구 상사도 세월의 흔적이 보인다. 


시간이 지나 해군 본부에 해병대 시험을 보러 갔다. 나는 2달 전부터 매일 아침 운동장 1500m를 주 3회씩 스톱워치 들고 기록을 재가며 체력훈련을 하기도 했다. 


인간극장 해병대편을 보면 1회에 902기가 수료하고 905기였나 그 기수가 훈련받는 과정이 나오는데, 나 때는 915, 916기였다. 


부모님을 비롯, 주위의 반대가 많았지만 21살의 젊은 패기를 소유했던 나는  과감하게 지원했다. 지원서류 중 고등학교 생활기록부를 제출해야 해서 고등학교를 방문해서 서류를 받기도 했다. 


해병대라고 해서 엄청난 체력검정을 할 줄 알았는데 윗몸일으키기 30초간 20회 이상 이것만 시험 봤다. 경쟁률은 5:1 정도라고 했고 재수, 삼수를  할수록, 집안에 해병대 출신이 있으면 가산점이 부여된다는 말을 들었다. 

(지금은 모르겠는데, 절대 헤병대 입대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무려 10수를 한 지원자가 있었는데 면접관들이 '이 정도 열정이면 해병대 할 만 하다'고 했었던 기억이 난다. 지원자 중에서는 무술 유단자, 체대나 운동선수 출신 등등 다양했고, 몇몇 지원자 얼굴을 보니까 이건 깡다구가 쎄보였다. 


간단한 체력 측정 후(나는 왜 오래달리기 연습을 했었단 말인가!!!) 면접을 봤는데, 이건 일반 회사 면접이 아니다. 1번부터 6번까지였나(가족관계, 나이, 해병대 지원 계기 등등) 순서대로 면접관 앞에서 말하는데, 이건 '악 지르기' 경언을 하는 것 같았다. 


'해병은 처음부터 해병이 아니라 훈련을 통해 만들어지기 때문에 근성이 있어야 한다'는 취지의 말을 듣고 지원자들이 다 악을 써가면서 자신을 어필(?)했다. 

2001년 인간극장 당시 모습. 나도 저 모습을 경험할 수도 있었는데 ㅎㅎ

결국 해병대에 떨어졌고, 재수를 하려고 했으나 주위의 반대가 너무 심해서 다시 지원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3개월 후 나는 육군 논산훈련소에 입대를 하게 된다. 


내가 그때 합격했으면 로보캅 이정구 상사(당시 하사)라는 해병대 전설에게 직접 혹독한 지도(?)를 받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어떤 경험을 했을까 하는 아쉬움도 든다. 


지금은 제대는 물론 예비군 훈련도 끝나고 민방위 교육도 4년 차에 접어드는 이른바 '아재'가 되고 말았는데 패기가 넘치던 시절도 있었다. 당시 인간극장에 나왔던 훈련병들도 나하고 나이가 비슷했을테니 20대 초반에서 30대 중반으로 변했을 것이다. 


그런데 직접 군대를 경험하고 나서 그런가, 다시 인간극장 해병대 편을 보는데 '그때 합격 못한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군대라는 조직이 어떤 곳이며, 어떤 리액션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그 뉘앙스를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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