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춤 속에서 피어난 성장이야기의 시작

아들의 사춘기를 통해, 엄마인 '나'를 되돌아보기 시작하였다.

by 바람결

초등교사로 많은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나도 모르게 나의 아이에 대한 기대감을 품어왔던 것 같다. ‘OO처럼 다른 친구들을 배려했으면 좋겠다. OO처럼 스스로 자기 할 일을 잘했으면 좋겠다. OO처럼 야무지고, 똑똑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종종 해 왔다. 그리고 모든 것을 갖춘 남자아이의 부모와 상담을 할 때면, 오히려 내가 부모교육을 받는 기분으로 자녀를 키워온 이야기를 들었던 적도 있었다. 그리고 나 또한, 그 부모들 못지 않게 아들을 잘 키울 것이라 생각했다. 당시 잘 키운다는 것은 부끄럽게도 공부 잘하는 아들로 키우는 것이었다.



‘아들은 너무 엄마가 간섭하면, 사춘기가 강하게 온다. 초등학교 때 학원 많이 보내봤자, 중학교 때 공부 놓으면 아무 소용없다. 나중에 하고 싶을 때 시켜라. 아들은 군대 다녀와야 정신 차린다…….’ 등 아들을 먼저 키워본 선배 선생님들의 조언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오히려 아들이 사춘기 때 엇나간 것은 적절한 시기에 필요한 교육적 지원을 하지 못해서 생긴 부적응이라고 생각했다(그리고, 착하고 똘똘한 우리 아들과는 상관없는 이야기라 여겼다...^^;;).


사춘기는 신체적·생리적 발달을 거치면서 심리적·정서적 혼란 과정에 있는 과도기적 시기로 아동의 끝 지점에서 독립을 지향하는 자립적인 인간으로 변화되는 기간으로 자연스러운 성장 과정이다. 나의 아들 변화도 자연스러운 변화일 테지만, 나의 아들에게는 그 변화가 최대한 학업에 영향을 주지 않는 범위내에서 올 것이라 생각했다.


2019년 초 5학년 말, 목동 학군지로의 이사와 함께 시작된 코로나 19 원격 수업은 아들을 스마트 폰 세계로 빠져들게 만들었다. 그렇게, 나의 지옥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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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겨울, 아들은 예비 중 3으로 매우 중요한 시기에 놓여있을 때였다. 겨울방학 두 달은 수Ⅰ을 한 바퀴 돌릴 수 있는 시간이며, 고등 국어와 과학을 어느 정도는 해 놓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 중요한 시기에 우리 아들은 6주 캐나다 캠프를 떠났다. 공부 안 하고 게임과 *튜브로 시간을 보내는 아들과 한 공간에 있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눈을 찌를 것 같은 앞머리 사이로 나를 쳐다보는 싸늘한 눈빛도 견디기 힘들었다. 사춘기인 아들과 엄마의 거리두기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판단되어 내린 과감한 결정이었다. 그렇게 우리 아들은 사춘기를 겪으며, 부모와 단절을 시작하였고, 다니던 모든 학원을 끊고 공부를 손에 놓았다. 완.전.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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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가을, 사춘기 끝자락에 있은 고2 아들을 보며...많은 생각이 든다. 사춘기 아들이 긴 터널에 들어갈 때, 나도 함께 들어갔었다. 우울하고 힘들었던 그 시절을 회상하니 아들에게 미안한 마음, 남편에 대한 원망과 고마움, 나의 태도에 대한 후회 등 여러 감정이 교차한다. 그 사이 나는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으며, 교사에서 장학사로 전직하는 변화가 있었다. 난 나의 의지와 노력으로 어쩔 수 없는 상황을 겪으며, 나의 시간을 투자해 해결할 수 있는 일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마인드를 갖게 되어 박사학위 취득도, 장학사도 즐겁게 할 수 있게 되었다. 아들의 사춘기가 준 선물이랄까.


모든 것을 내려 놓고, 아들과 함께 사춘기라는 터널을 지나온 시간을 다시 회상하고, 지금 고 2가 된 아들을 바라보며 엄마로써 함께 성장한 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혹시라도 먼 훗날, 부모를 힘들게 했던 시간을 회상하며 혼자 후회하고 자책할 아들에게, 엄마와 아빠는 사춘기라는 긴 터널로 더 끈끈해 지고, 부모로써 단단해 졌으며, 성장했다고...오히려 고맙다고 전하고 싶은 마음이다. 아들의 사춘기 이야기를 쓰게된 이유이기도 하다. 아울러, 공부를 잘 하다가 완전히 놓아버린, 극심한 사춘기를 겪고 있는 부모들의 마음에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