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작가가 되었습니다.
이래서 글을 쓰려면 어디서나 메모지와 펜을 갖다 놓고 있어야 하나보다.
분명 오전에 설거지를 하면서 어떤 글을 어떻게 쓸지에 대해 머릿속에 뚜렷이 떠올랐는데 그 후에 이어진 자질구레한 일들을 마치고 아까 떠올랐던 글을 써보려 하니 대체 뭔 주제를 가지고 어떤 글을 쓰려했는지 새카맣게 잊어버렸다. 뭔가에 대해 어떻게 어떤 문장을 썼는지, 설거지를 하거나 뭔가 손을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일 때 일단 떠오른 대로 머릿속으로 끄적끄적하고 나면 뭐가 됐든 썼다는 착각을 하는 걸까. 좋았던 생각들과 표현들이 모래에 써둔 글씨가 파도에 씻겨버리듯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다. 솜털보다 가벼운 나의 기억력이 원망스럽기만 하다.
오늘은 브런치에서 작가 신청을 한 결과를 받은 날이다. 알람이 연속으로 세 번 울렸는데 브런치 앱에서 뜬 알람임을 보자마자 갑자기 내용을 확인하기가 두려웠다. 너무 빨리 거절당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아침부터 괜히 위축되기 싫어서였던 것 같기도 하다. 어쨌거나 상처받기 싫었던 거라 시간이라도 늦춰보고 싶었던 거지. 그렇지만 이미 결론은 난 연락인데 늦게 본다 해서 떨어졌다는 게 붙었다는 것으로 바뀌겠나 하면서 앱을 켰다가 두 눈을 의심했다. 그랬다. 브런치 작가가 된 많은 분들이 처음에 보았을 그 내용이 내게도 왔다.
작가라니!! 내가 작가라니!!!!
물론 아직 제대로 된 글을 써내기도 전이었고, 심지어 이름만 달랑 정직하게 올라있는 내 프로필마저 다른 작가분들처럼 근사하게 변경하기 전이기에 작가라고 불릴 수 있는 건덕지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작가 신청을 위해 썼던 글들만 아무도 찾지 않는 블로그에 외로이 떠있을 뿐.
김춘수 시인의 꽃에서 나왔듯이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엔 그저 아무런 존재감 없이 그냥 나 혼자 끄적였던 볼품없는 글이었으나 브런치에서 작가라는 이름으로 나를 불러주기만 했을 뿐임에도 마치 앞으로 내가 쓸 글들이 뭔가 더 무게감이 실리거나 빛날 것 같다는 망상 같은 기쁨이 조용히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입술이 슬몃 비죽거리고, 그 사이로 비실비실 웃음이 새어 나왔다. 혹시 작가가 되더라도 글을 몇 편 이상 써내고 내가 글 쓰는 것에 대해 자신 있다 느껴질 때 가족들에게 알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게 불과 몇 초도 안된 것 같았는데 머리의 통제를 벗어난 손은 카톡을 찾아 부지런히 촐싹맞음을 타이핑 중이었다.
'나 브런치에 작가 신청했는데 통과됐대!!'
사진 : Nate Smi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