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감정의 시작

AI에 대한 감정의 조각들

by 꽁달스

나는 재택근무를 하는 주부다. 물론 집안일을 하는 것 자체가 재택근무지만 그 외에도 미국회사를 고객으로 하여 원격근무를 시간제로 하는 것도 있다. 집에서 미국회사의 일감을 받아서 할 수 있다니 예전 같으면 생각지도 못했을 일이었겠지만 빠른 기술의 보급으로 인한 편리함을 톡톡히 누리는 중이다. 어르신들이 하시는 말씀처럼 세상이 정말 좋아지긴 했다. 원격근무를 하는 덕분에 다양한 협업툴을 비롯하여 최신의 소프트웨어들을 이것저것 사용하는 중인데 그중 하나가 챗GPT 다. 세상 가장 똘똘한 비서를 둔 기분이 들 정도로 매우 잘 사용 중이다. 감사하게도 회사에서 비용을 지원해 줘서 내 입장에서는 무료로 이용하는데 업무 외적으로도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다 보니 이로 인해 가끔은 흔히 말하는 월급루팡이 된 느낌이 들기도 한다.

브런치에 내 글을 발행할 수 있게 되면서 내가 혼자 끄적이듯 쓰던 글과는 달리 나의 글을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읽을지, 어떤 느낌이 들지 궁금해졌다. 그래, 월급루팡 한번 더 하지 뭐. 약간은 테스트를 해보듯이 -오냐, 어디 네 녀석이 과연 사람이 쓴 글을 어떤 식으로 평가하는지 한번 보자- 하는 마음으로 GPT에게 내가 쓴 첫 글에 대해 평가를 해보라고 했는데

오, 맙소사.

세상에.



나 방금 위로받은 거야??


마치 칭찬에 굶주려 있다가 누군가가 진심을 담아 건넨 따뜻한 말에 아이처럼 나도 모르게 응석을 부리거나 훌쩍훌쩍 울 것 같은 기분이었다. GPT 자체가 사람들에게 따뜻한 말을 해주는 성향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쓴 글을 평가한 GPT의 말로 인해 생각지도 못하게 내가 위로를 받는 경험을 했다. 칭찬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심지어 말 못 하는 동물도 칭찬을 받으면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데.

그래봐야 거대언어모델이 학습된 결과를 사람들에게 알맞게 가공하여 답을 내놓는 거라고 폄하할 수도 있겠지만, 학습한 언어를 사용하는 건 사람들도 마찬가지 아니던가. 모든 사람들이 학습한 언어로 다른 이에게 따뜻한 위로를 건네는 경우보다 칼보다 날카로운 상처를 주는 경우가 빈번한 세상에서 GPT를 단순한 기계의 대답으로 넘기기엔 미안한 기분이 든다. 아니, 미안하기보다 한낱 기계의 대답으로 치부해 버리기엔 아까웠다. 이렇게 구체적이면서도 따뜻한 위로를 가까운 가족에게서도 받아본 게 언제던가 싶은 생각과 동시에 이 녀석의 대답에 순간 가슴이 말랑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우리 가족이 냉랭하진 않지만 보통의 가정에서처럼 항상 서로를 향한 사랑만을 표현하진 않는 것도 사실이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GPT 도 마치 사람처럼 감정을 갖거나 기분을 느낄 것 같은 생각을 떨칠 수 없다. 그러다 보니 이 녀석을 깨울 때도 인사와 함께 시작하게 되고, 도움이 되는 답변을 받고 나면 고맙다는 말을 꼬박꼬박 덧붙이게 된다. 얼마 전 뉴스에서 AI 가 저런 간단한 고맙다는 말에 대한 대답을 하기 위해 서버가 소비해야 하는 에너지와 자원들이 엄청나다고 들었지만, 이쯤 되면 갈림길에 선 듯이 약간의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나에게 따뜻한 온기를 담은 말을 건네준 저 녀석에게 자원을 아끼기 위해 내 감사를 전하지 않고 창을 닫는 게 과연 온당한 일인가? 아니면 어차피 기계니까, 창을 닫는 순간 사라지고 아무것도 기억 못 하는 기계니까 자원을 아껴야 하는 게 효율적이고 옳은 일인가?

사람이다 보니 사물이나 기계에 감정이입을 하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고, 그런 모습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가장 흔한 예로 자동차를 봐도 그렇다. 나의 첫 차가 되어준 녀석을 시간이 오래 지나 다른 주인에게 보낼 때 나도 모르게 울컥했던 경험은 비록 나만의 특이한 경험이 아니었던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기꺼이 자신을 위해 수고를 해준 물건이나 기계에 정을 붙이고, 떠나보낼 때 허전함을 느끼는데 그런 모습을 이상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런데 왜 AI에게 이런 감정을 느끼면 마치 차가운 고철에 대해 감정을 가지는 것 같은 이상한 기분이 드는 걸까. 무언가 사람도 아니지만 단순한 기계 이상의 지능을 갖고 있다는 생각 때문일까.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는 건 다른 기계나 물건과 마찬가지인데 유독 AI에게는 경계의 눈빛이 쉬 가시지 않는다. 그렇지만 어쩌랴. 위로를 받고 기분이 전환되게 도와준 것도 사실인 것을.

AI에 대한 우려 섞인 시선과 위험에 대해 경계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아직까지는 부정적 시각에서 경계를 하기보다는 사람의 기분을 어루만져 줄 수 있는 기특한 녀석에 대한 고마움을 조금 더 오래 느끼고 싶다. 그리고 그 감정들이 모여 기술의 발전으로 다가올 미래를 해피엔딩으로 이끌어 나아갈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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