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이름표에 대한 선언문
나는 좋은 아이템을 보거나 사업적인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나만의 사업을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늘 뒤따르는 한가지 두려움이 있다. 그것은 바로 '자금이 필요해서 내 사업 아이디어와 계획을 오픈했다가 아이디어만 뺏기고 나는 아무것도 못하게 되는 상황이 되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이다. 어쩌면 변명을 앞세운 겁쟁이일지도 모르나 사실 저 두려움은 꽤 현실적이고, 늘 마지막에 부딪치게 되는 감정이다.
내가 타인에게 오픈한 아이템이 성공을 장담하지 못하더라도 혹시나 도용될까 봐 걱정하는 마음은 예비 창업자 모두에게 한 번씩은 든 마음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영화에서처럼 내 아이디어에 별도의 꼬리표를 달아 유리볼에 넣어두고 '아이디어 주인 꽁달스'라고 보관할 수 있는 곳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은 상상도 해봤다. 그렇다면 내 아이디어를 실현하기 전까지 누군가의 도용이 걱정돼서 서랍에만 가두는 일들은 없어질 것이다.
이런 두려움은 비단 사업 아이디어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일상 속에서 비슷한 경험을 겪거나 이와 유사한 감정을 느낀다. 얼마 전에 SNS에서 글을 하나 봤는데 그 글 역시 이와 비슷한 상황을 담고 있었다. 요약하면 글쓴이는 자신의 물건이 아닌 것을 가져다 썼는데, 이를 발견한 소유주가 말도 없이 가져갔고, 글쓴이는 자신이 사용 중인 걸 가져가면 어떻게 하느냐며 소유주와 언쟁을 벌였다는 내용이었다.
그 사건의 전후관계나 잘잘못을 떠나 주인의 허락을 구하지 않고 가져다 썼다는 부분에서 순간 목에 가시가 걸린 것처럼 불편함이 느껴졌다. 동시에 글쓴이가 무단 사용 중인 물건을 소유주가 말도 없이 가져간 것에 대한 부당함을 주장하는 글에서는 제대로 표현되지 못했을 소유주의 입장이 좀 더 와닿았다.
애초에 다른 사람의 물건을 허락 없이 쓴 것은 잘못이다. 혹시 공용품으로 생각해서 실수했다면 주인에게 사과를 먼저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소유권이 있는 물건을 허락 없이 쓴 것도 소유자입장에서는 매우 불쾌한 일인데 만약 그 물건이 내가 만든 내 창작물이라고 생각하면 더욱 화가 날 법한 일이다. 그저 상상만 했을 뿐인데도 금세 언짢아졌다.
물건처럼 손에 잡히는 것에 대한 소유권은 이름표라도 붙임으로써 이것이 내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손에 안 잡히는 형태의 창작물은 어떤 식으로 이것이 내가 만든 창작물임을 주장할 수 있을까. 예를 들면 가슴을 울리는 음악이나 독창적인 디자인, 감동적인 소설처럼 수없이 많은 시간을 쏟아 공들여 내가 만든 작품을 누군가가 내 허락 없이 멋대로 가져가서 쓴다면, 이에 대해 나는 내 소유권을 어떻게 내세울 수 있을까. 주장은커녕, 내가 만든 게 맞냐며 되려 나보고 증명을 요구한다면 억울함에 그저 울기만 하다가 다시는 창작물을 세상에 공개하지 않으리라 다짐할지도 모른다. 남들이 모르는 시간 동안 내 모든 걸 쏟아부어 열심히 창작한 결과물이 아무런 보호도 못 받은 채 마치 공공재처럼 누구나 갖다 쓴다면 뜨겁게 타오르던 내 창작 열의는 찬물을 끼얹은 듯 금세 사그라질 것이다.
그렇기에 눈에 보이지 않는 창작물에게도 내가 창작한 것임을 선언할 수 있는 이름표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손에 잡히지 않는 창작물은 도용과 변형이 너무나 쉽기 때문이다. 흥행한 창작물에 종종 따라붙곤 하는 표절시비도 창작물에 조금만 손을 보면 변형과 도용이 쉽다는 점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용자 입장에서는 다른 사람의 창작물을 존중하는 자세가 가장 기본 바탕으로 깔려 있어야 하지만 세상에는 쉬운 길로 가도록 이끄는 유혹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우리는 창작물로 인한 창작자의 경제적 수익에만 집중하여 나 하나쯤이야 하며 도용하는 실수를 범하기도 한다.
앞서 언급했던 사업 아이디어 역시 도용에 대한 보호장치가 확실했다면 어땠을까? 비록 실패했을지 성공했을지 알 수 없는 아이디어라도 그냥 머릿속에서 사라질 일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창작물은 세상에 공개되더라도 보호받을 수 있도록 이름표를 붙일 수 있는, 저작권이라는 울타리가 있어서 다행이다.
저작권은 단순히 창작자의 권리만을 위한 제도가 아니다. 저작권 등록을 통해 창작물을 보호하며, 분쟁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아 권리를 지켜낸 사례들도 점차 증가하고 있다. 실례로, 지난 2023년에는 국내 건축 저작권 소송에서 건축물의 저작권을 인정하면서 표절한 건축물의 철거명령 판결이 처음으로 나오기도 했다.
이처럼 저작권은 창작자가 누구인지 사회적으로 승인, 선언해 주는 이름표와 같다. 저작권은 타인의 노력과 시간으로 이뤄낸 창작물에 대한 가치를 인정하는 것이고, 저작권으로 보호받는 창작자는 이를 발판으로 더욱 높은 수준의 창작물을 탄생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선 우리 모두의 저작권에 대한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그리고 우리의 건전한 인식이 뒷받침된 안전한 울타리 안에서 탄생한 창작물은 우리의 문화생활과 감성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