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피아니스트'

'인생이라는 가장 아름다운 연주를 위한 소중한 음표'

by 마르쉘

페이스북을 안 한 지 몇 년이나 되었다.


마지막으로 '페이스북'에 글을 게시한 게 언제였더라... 보니

2018년 4월 18일에 '중국집이 아닌 짬뽕집이 많이 생기는 이유'라는

퍼온 글을 올린 것이 마지막이었다.


그리고는 아래로 스크롤... 또 스크롤... 계속하면서

과거에 내가 게시한 글을 보다가

지난 어느 날 쓴 글을 발견하고는 스크롤을 멈췄다.


[2월 8일 야마하 앙상블 콘서트]

네 살이던 딸내미가

아빠랑 음악 수업 다닌 지 벌써 5년째네요

처음엔 그냥 어디엔가 다닌다는데 의의를 가졌는데...

고사리손.. 애기였는데

발표회 무대에 참가를 한다니

아직은 서툴겠지만

그저 신기할 따름입니다


라고, 내가 2014년 1월 18일 토요일에 써 놓았었더라...




잠시, 눈을 감고 10여 년 전의 2014년으로 가본다.


토요일 아침,

남양주의 우리 집은 일주일 중에서 가장 분주한 날을 맞이한다.

푹 쉬는 주말의 토요일이 아니라 금요일 다음의 '제6요일' 같다.


이른 아침부터 옷을 차려입고 남양주에서 멀리 성남 분당으로

차 타고 떠날 채비를 하는 9살의 큰 딸.

토요일, 오늘은 큰 딸이 멀리 분당에 있는 '야마하 피아노 음악센터'에

수업받으러 가는 날이다.

매주 토요일 일정은 오직 이 시간을 위해 맞춰져 있었다.


큰 딸을 성남 분당에 있는 '야마하 음악센터'에 등록시킨 때는

2009년, 4살 때다.


사실, 큰딸이 6살 때, 작은딸이 4살 때, 나의 남양주 집으로

데리고 오기 전까지 딸들은 경기 광주시에 있는 나의 부모님에서

즉, 아이들의 친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살았다.


짐작이 되겠지만,

우리 부부는 남양주에서 생활하며 맞벌이를 한다는 핑계로

첫 딸도 둘째 딸도 갓 태어난 갓난쟁이 때부터 부모님께 맡겼었다.

부모님께서 우리 두 딸을 정말 애지중지 너무나도 잘 키워주고 계셨다.


그때에 아내가 4살 큰 딸을 성남 분당에 있는 '야마하 음악센터'에 등록을 했다.


딸 가진 엄마들은 모두 자신의 딸을 '피아니스트'로 만들려고 하는 생각이 있나 보다.

나의 아내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우리 두 딸을 데리고 문화센터에 다녀오던

토요일 어느 날, '야마하 음악센터'가 유명하단다고 큰 딸을 그곳에 등록시켰다.


그리고 난 후...그날부터 나는 토요일을 빼앗겼다.


토요일이 되면 남양주 집에서 차를 몰고 경기광주에 있는 본가에 가서는

4살 큰 딸을 데리고 다시 분당에 있는 '야마하 음악센터'를 가야 했고..

수업을 마치면 다시 광주 본가에 큰 딸을 데려다 놓고,

다시 남양주로 올라오는 그런 생활을 2년 동안 해야 했다.




그렇게 2년이 흐르고 2011년,

큰 딸이 6살, 작은딸이 4살 되던 해가 돼서야 우리 부부는

이제 아이들을 우리 남양주 집으로 데리고 오자고 결정을 했고,

그때부터 비로소 우리 네 식구가 온전하게 남양주에서 본격적인 가족이 되었다.


하지만, 나의 '길 위에 인생'은 끝나지 않았고 계속 이어졌다.


그러니까 다시 말해서 2011년 그때부터는 다시...

매주 토요일 아침마다 남양주에서 성남 분당까지...

나는 또 어린 두 딸을 옷 입히고 차에 태우고 고속도로에 올랐다.


그때의 작은 딸을 생각하면 지금까지도 맘이 안 좋고 안쓰럽다.

그 당시 아내는 토요일에 출근을 하는 날이 많았었기에,

4살짜리 작은 딸을 집에 혼자 둘 수도 없었고..

어디 마땅히 맡길 곳도 없어서

작은 딸을 언니와 함께 차에 태우고 분당까지 다녔었다.


작은딸은 언니처럼 피아노를 치지도 않았고...

그냥 매주 토요일마다 아무 목적도 없이

남양주에서 분당까지 영문도 모른 채로 고속도로를 왔다.. 갔다.. 한 것이다.


그렇게 2011년부터 2015년까지 5년 동안을..

매주 토요일마다 경기 남양주시에서 성남에 있는 '분당 야마하 음악센터'로

장거리 고난의 길을 다녔다.


고속도로는 또 꽉 밀리고...

딸들은 한참을 짹짹거리며 떠들다가 차 안에서 잠이 들고,

나는 홀로 핸들을 잡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차들 속에서

속도를 늦추는 토요일 일상이 다반사였다.


차창 밖으로 스치는 풍경은 매번 같았지만,

그 시간만큼은 우리에게는 특별한 의식과도 같았다.

주말 오전마다 교통지옥처럼 변하는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위에서

우리는 그렇게 시간들을 보냈었다.




2016년...


옮겼다.


7년 동안 큰 딸을 지도하시던 선생님이 '동탄센터'로 가시게 되어

이 참에 큰딸도 '분당센터'는 그만 다니기로 하고 집에서 가까운

서울 '노원센터'로 옮겼다.


그렇게....

4살 때부터 '야마하 음악센터'를 다니기 시작한 지 어느덧 10년이라는

세월이 지나갔다.


2019년,

4살이었던 큰 딸은 어느새 훌쩍 자라 중학교 1학년이 되었다.


그 긴 시간 동안 딸의 피아노 치는 실력은 점점 늘었고...

가끔 자작곡을 만들었고...

'한국 야마하'에서 주관하는 콩쿠르 대회에서 발표곡으로

연주를 하기도 했자만 크나 큰 재능을 보이진 못했다.


수상도 하지 못했고,

신동 소리도 듣지 못했다.


오히려 때로는 건반 위에서 헤매기도 하고, 연습을 힘들어하기도 했다.

그래도 나는, 그리고 아내는 묵묵히 딸의 옆을 지켰다.


혹시라도 숨겨진 재능이 언젠가 꽃을 피울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

그리고 그동안 들인 시간과 노력이 아깝다는 미련 때문이었을까.

그렇게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우리는 '큰 딸의 피아노 실력'이라는

한 우물을 팠던 것이다.


막연하게 말이다.





주말마다 반복되는 '음악센터'로의 무의미한 왕복, 그리고 기다림.

그 모든 시간이 무엇을 위한 것이었는지, 그때는 알지 못했다.


딸이 중학생이 되고, 더 이상 피아노 학원에 다니지 않게 되었을 때,

아내와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그저 ‘그동안 계속 다녔기 때문에’ 또 계속 다니게 했던 것이다.

언제 그만두어야 할지 정할 수 없어서,

그 시간을 멈추는 것을 두려워해서,

그저 흘러가는 대로 둔 것이었다.


어쩌면 딸에게는 그 시간들이 전혀 즐겁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나는 피아노 학원에 가기 싫다 말하는 딸에게,

‘조금만 더 해보자’, ‘아깝지 않니’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미안한 일이다.


스무 살이 된 딸은 이제 어엿한 대학생이 되었다.

비록 바라던 대로 ‘인서울’은 못했지만, 그래도 수도권 용인에 있는 대학에 합격해

즐거운 대학 생활을 하고 있다.


가끔 나는 생각에 잠긴다.


이미 지나간 세월이지만...

그 10년동안 '피아노 학원'에 쏟았던 그 막대한 시간과 노력을,

만약 다른 곳에 썼더라면 어땠을까.


미술을 배웠더라면? 운동을 시켰더라면?

다른 재능을 더 일찍 발견할 수 있었을까?


결국, 딸의 피아노 교육은 눈에 보이는 어떤 결과물도 남기지 못했다.

딸은 피아니스트가 되지도 않았고, 음악을 전공하지도 않는다.


수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했지만, 그 결과는 참으로 허탈하다.

마치 비 오는 날 물을 길어 올린 양동이에 바닥에 구멍이 난 것처럼,

애써 채운 물이 모두 새어나가 버린 기분이다.



하지만,

인생은 언제나 예상치 못한 선율로 가득하다.


지나간 시간들을 되돌릴 수는 없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가 ‘헛수고’라고 생각했던 그 시간들은

결코 헛된 것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딸은 피아노를 통해 인내를 배웠고, 집중하는 법을 익혔다.

매일 연습해야 하는 과정 속에서 성실함을 몸으로 체득했을 것이다.


비록 연주 실력은 뛰어나지 않았을지라도,

음악을 통해 느꼈던 감정들은 딸의 마음에 깊은 울림을 남겼을 것이다.


딸이 스무 살이 되어 새로운 삶의 악보를 펼치는 지금,

나는 비로소 깨닫는다.


그 10년의 시간은 피아노라는 악기를 연주하는 시간이기 이전에,

삶이라는 이름의 연주를 위한 준비 과정이었다는 것을.


눈에 보이는 성과가 없다고 해서 그 시간들이 무의미했던 것은 아니다.


그 시간들이 모여 지금의 딸을 만들었고,

지금의 딸이 앞으로 살아갈 모든 순간의 바탕이 될 것이다.


가끔은 지나간 시간들이 허탈하게 느껴질지라도,

나는 더 이상 후회하지 않으려 한다.

그 시간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딸도 없었을 테니 말이다.


나는 딸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네가 피아노를 치며 흘려보낸 모든 시간은,

네 인생이라는 가장 아름다운 연주를 위한 소중한 음표였다"라고...


이제는 그 음표들이 모여 딸의 인생이라는

멋진 교향곡을 만들어나가길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