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추석'연휴에 차례 지내시나요?

10일간의 연휴... 모처럼의 기회... 해외여행... 꿈...

by 마르쉘

명절이 다가오면 TV에서는 으레 껏 특선 영화나 코미디 프로그램이 방영되곤 한다.


최근 몇 년간의 추석은 '서울의 봄', '범죄도시 3', '공조', '명량', '괴물' 같은

굵직한 영화들이 TV 화면을 채웠지만,

문득 예전 추석 때 자주 보던 '미스터 빈'이라는 코미디 영화(영화라고 해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떠오른다.


말 한마디 없이 오직 표정과 몸짓만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미스터 빈' 그의 모습은

어딘가 우리 삶의 뒷면과 닮아 있는 것 같다.


그의 마임 같은 우스꽝스러운 행동이 우리에게는 웃음을 주지만,

그 코미디극 전체의 내용을 잘 이해하고 보면 약간은 좀 씁쓸한 현실이 그 안에 녹아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제 곧 9월...


9월만 지나고 나면 바로 또 추석이다.

올 2025년 추석은 흔하지 않은 황금연휴를 품고 있다.

연차 하루만 더 내면 무려 열흘의 긴 휴가를 보낼 수 있다.

하지만 올해 추석의 긴 연휴를 그렇게 좋지만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차례를 지내기 위해 고향으로 향하는 사람들에게 올 추석연휴의 시간이 황금연휴가 아닌

'의무'와 '체념'으로 다가올 것이다.


시골에서 차례를 지내고 귀성하는 동안 아는 친구들이나 지인들의 깨톡, 인스타 등

SNS에 올라오는 해외여행 사진을 보며 못내 씁쓸함을 삼키지만,

"모처럼 오는 긴 연휴에 해외여행 가면 좋지 뭐"라고 말하는 그들의 미소는

미스터 빈의 웃는 얼굴가면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반면,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연차를 보태서라도 10박 12일의 해외여행을 떠나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몇 달 전부터 예약 한 여행을 취소할 수도 없다.


그들은 명절의 굴레에서 벗어나 자유와 해방감을 만끽한다.

유럽의 관광지나 남국의 정취와 해변을 즐기며,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선택했다는 만족감을 누릴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명절에 누리는 행복감과 자유 뒤에는 다른 누군가의 희생이나 포용이 전제한다.

모두가 다 해외로 떠날 수 없는 일이고 누군가는 명절 의무를 짊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 주말...


모처럼 어머니가 계신 본가에 우리 삼 형제 내외가 다 모였다.

패밀리 뷔페 '애슐리'에서 점심 식사를 하던 중에 다가오는 '추석' 이야기가 나왔다.


'뷔페'라는 특성상 모두가 각자의 접시에 본인이 먹고 싶은 음식을 담아 오듯이,

다가오는 명절 '추석'연휴에 관해 제 각각 생각이 있어 보이는 듯했다.


막내 동생네 제수씨는 이번 추석에 차례를 지내지 않았으면 하는 눈치를 은근히 내 비쳤다.

"휴가가 길고.... 중간에 추석이 있고... 다른 집은 해외여행을 간다더라..." 등등... 당당하지는 않지만

작은 목소리도 차분하고 얌전하게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는 듯해 보였다.


그리고... 보태서..

'요즘은 명절 때 차례를 안 지내고 기제사만 지내거나, 아니면 기제사를 안 지내고 설날과 추석에

차례만 지내는 집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추세'라고...

마치 남의 일인 듯... 우리랑은 상관없는 말이지만 그냥 말해보았다는 듯이 덧붙인다.

차례 지내는 것만 아니면 이번 명절연휴에 해외여행이라도 가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남자인 나에게 충분히 느껴졌다.


내 친구들 중에도 이번 추석 연휴에 유럽으로 장기간 여행을 간다는 친구들이 몇몇 있다.

그중 어떤 친구는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셔서, 몇 년 전부터는 추석이든 설이든 차례도 지내지 않고

명절에 어디 갈 곳도 없었단다.


작년 추석 명절에는 많이 쓸쓸하게 보냈다며, 이번 추석 기간 동안의 장기간 해외여행이 너무 기대된단다.

그 말을 들고, 명절에 대한 '쓸쓸함'이 '해방감'으로 바뀌는 순간이 정말 존재하는구나 하고 생각 들었었다.

.

나의 아버지께서는 3년 전 돌아가시기 전,

"기제사는 지내지 말고 명절 때 꽃다발과 송편, 떡국 몇 조각만 놓아주면 저승에서도 행복하겠다"라고

유언과 함께 종이 위에다 써놓고 가셨다.


어머니는 그런 말씀을 남기신 아버지를 그리워하면서도 며느리들의 속마음을 아시고는 명절과 차례를

어떡해야 할지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묻고 싶으실지도 모른다.


나는 장남이다.


제수씨는 내가 이 집안에 장남이니까 이번 추석 명절...아니 이번 연휴가 긴 추석의 '차례'의 여부에 대한

결정 내려달라는 듯 기대와 무언의 압박을 가하는 것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나의 아내 또한 긴 연휴를 바라지만, 직업 특성상 연속으로 쉬는 날을 갖기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기에

이미 이번 추석 연휴 때 쉬거나 여행 가는 것은 포기한 상태다.


그렇게....

가족 모두가 '애슐리'라는 한 식탁에 둘러앉아 있지만,

이번.. 추석 연휴에 관한 각자마다의 생각은 이미 다른 곳에 있었다.


모두가 한자리에 모였지만, 웃으면서 식사는 하고 있지만 진심으로 서로의 속마음을 터놓지는 못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현명하게 말씀을 하셨다.


그 말씀 내용을 빌면...

"아범아... 니 아버지의 친구..** 아저씨 알지?

아버지보다 1년 먼저 돌아가셨잖니...

그 아주머니가 아저씨 제사도 차례도 안 지내고 살았는데..

아 글쎄... 작년 추석 때 꿈에 나타나서 배고프다고 울고 있다잖니...

그래서 차례를 지냈더니 아저씨가 다시 꿈에 안 나타나더란다..."


그렇게 어머니는 "내 살아생전동안에는 차례는 지내야지!!"하는 뜻으로 말씀하시고는

가족들의 여러 생각을 깔끔하게 정리했다.




뭐...

혹시 제수씨의 뜻대로 형제 중에 누군가의 가족은 해외여행을 가게 되었다면 어떨까?

개인의 자유와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중요하고 또 당연한 것이기도 하기 때문에 해외여행

그 자체를 비난할 수는 없다.


다만, 명절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솔직하게 터놓고 얘기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이번 명절은 여행을 다녀오면 안 되느냐"라고 먼저 허락을 구하고 공감을 얻어내는 과정이

오해와 앙금을 남기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일 것이다.




올 연말 12월이면 나의 늙으신 어머니의 팔순 생신이다.


어머니의 팔순 잔치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우리는 차례를 어떻게 할지에만 관심 있는 것 같아서

장남으로서 참 씁쓸하다.


올해 2025년, 어느 집은 추석의 풍경은 아마도 미스터 빈의 코미디처럼 씁쓸한 역설을 품게 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최소 열흘의 긴 명절 연휴가 주어진 것이 참 다행이고 즐거워야 하는데

누군가에게 명절은 고된 의무의 시간이고, 누군가에게는 해방의 시간이 될 것이기 자명하기 때문이다.


추석연휴의 긴 명절이 끝난 뒤에 우리는 또...

'미스터 빈'처럼 홀로 남겨진 것 같은 삭막한 현실을 느끼지나 않을까 싶다.


- 명절이 '갈등의 장'이 아닌 '함께하는 행복'의 의미를 되찾는 날이 되기를 희망하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