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 첫 회가 방송되겠습니다

첫사랑이라 해도 힘들다

by 마르쉘

뭐 재밌는 거 좀 안 하나 싶어서..

TV 리모컨에 있는 [편성표] '버튼'을 누르고

300개가 넘는 방송 채널을 빠르게 스캔한다.


내가 운이 좋은가보다.


보고 싶었거나 다시 보고 싶은 예능이나

영화를 방영하고 있는 채널을 네 곳 발견했다.


"오호~ 이 영화하고 있네.. 이 영화나 다시 볼까?"


이미 두 번이나 본 영화지만 볼 때마다 재미가 있어서

기쁜 마음으로 그 채널 숫자에서 [확인]을 꾹~ 눌렀다.


휴...

화면에는 영화 출연자와 스태프의 이름들 자막이

위로 올라가고 있다.


내가 운이 나쁜가 보다.


채널을 선택하면 꼭... 마지막 부분이거나...

다 끝나고 광고를 하고 있다.


비밀의 숲, 꼬꼬무, 국가대표 축구, 영화 극한직업...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렇다고 뭐 특별히 볼만한 것도 없다..

채널만 300개 500개면 뭐 하나...

볼만한 건... 재밌는 건 없는데...


드라마?


예전에는 그래도...

드라마 몇 개 정도는 본 것 같은데..

언젠가부터는 드라마에 흥미를 잃었다.


도대체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겠고...

과거로 갔다가 현대시대로 왔다가... 하는

그런 드라마에...

분명, 시대는 조선시대나 삼국시대 배경인데

완전 극강의 청춘 로맨스 내용에

연기 대사 말투도 지금 10대, 20대들이

사용하는 언어다.


그리고...


어쩌다 드라마 1회를 보고 끌림이 와서

중독될까 싶었지만

2회를 못 보면 그다음부터는 도대체 무슨 내용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어서 드라마는 이제 잘 안 본다.


그런데...




참 신기하다.

요즘 TV를 켜면 너무나도 자주, 언제 언제

새로 시작할 드라마라며

'드라마 예고편'을 보여주거나...

이미 드라마의 '첫회'가 방영되고 있다.


"또 드라마 첫회야?" 하고 무의식적으로

그리고 반사적인 반응이 나도 모르게 나온다.


마치, 소개팅 주선자가 일주일마다

"이번에 소개할 사람은 이 사람이야!" 하면서

매주 새로운 사람을 데리고 오는 그런 느낌?


게다가,

요즘 드라마는 내용 전개의 스피드도 너무 빠르다.


예전에는... 신기하게도 아내나 어머니...

그리고 옆집 말자 어머니 등 우리 대한민국의

모든 여자들은 어떤 드라마를 한 회나 두 회 정도 드라마를 빼먹고 못 봤어도 그 드라마 줄거리의

전후 상세한 내용과 출연 배역의 복잡한 관계도를

다 파악하고 있었고 그것은 틀리지 않았다.


여자들이 드라마에는 진심이라는 것을

새삼 느꼈었고 무엇보다...'신기했다.'


하지만, 요즘 드라마는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을 정도로 스토리 전개가

너무 빠르고 그만큼 방영 회차도 짧다.


요즘 드라마는 첫 방송을 보고 2회분 방송을 놓치면

그다음 3회 차에는 새로운 등장인물들이

여럿이 나타나서 누가 누군지 헷갈릴 지경이고

편성 회차도 짧아서 애초부터 달랑 6부작,

또는 8부작, 10부작으로 만든 드라마도

흔히 볼 수 있다.


그런 짧은 드라마들이 거의 매주마다

한 두 개씩은 출현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또 첫회 드라마... 또 첫회...

드라마나 드라마 예고편을 자주 본다.


이 모든 것이... 다 시청률 경쟁 때문이다.


방송사나 제작사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드라마 시청자의 마음을 훔쳐야 할 테니...

첫 회에 흥미로운 소재... 그리고 자극적인 내용 설정... 유명한 배우, 화려한 내용을 잔뜩 쏟아붓는 것이다.


예전에는 드라마가 방영을 시작하면

그 작품에 대한 기대감과 함께

몇 주간의 여유를 가지고 시청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첫 방송을 놓치면 그 사이를 놓치지 않을 듯이

다음 새 작품이 치고 들어오는 상황이다.


드라마 뿐인가?


다큐방송이나 예능프로그램도 마찬가지다.

'첫 방송의 범람? 홍수'라고 해야 할까?


방송사나 제작사에서는 치열한 시청률 경쟁과

시청자들의 빠른 선택을 받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첫 회를 잡기 위해 시청자를 사로잡을 만한 요소들을 첫 회에 집중적으로 배치하고

시청자들을 향해 총공격을 하는 것처럼 느껴지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쏟아져 나오는 첫 방송에서

과연 시청자들이 작품의 의미와 진가를

잘 파악할 수 있을지나 모르겠다.


5% 조차도 안될지... 간신히 넘길지...

10%를 넘겨서 환호성을 지를지...


이것이 요즘 방송가 사람들이 기대하는

시청률 기대치란다.


겨우...

이 정도이지만...

이 정도 첫 방송의 시청률도

'이슈'나 '인기'의 척도가 되어버린 요즘이다,


첫인상을 잡기 위한 자극적인 설정이나 빠른 전개는

단기적인 시청률 상승에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작품성도 없고... 기억에도 잘 남지 않는

저급한 저작물로 여겨질 것이다.


아주 당장은

"이 드라마를 꼭 봐주세요!"라고 외치고 있지만

아마 벌써부터 적지 않은 시청자들은

피로감을 느끼며 채널을 돌릴 수도 있다.




문득,

'첫사랑'이 생각이 난다.

그리고 '모래시계'와 '젊은이의 양지'


'모래시계'는 64.5%,

'젊은이의 양지'는 62.7%...


그리고!

'한국 드라마 역사상 시청률 1위' '전설의 드라마'

'영원히 깨지지 않을 대기록'타이틀을 가진

드/라/마/


'첫사랑'
65.8%


그런....

진득하게 앉아서 감정이입하며 오래오래 볼 수 있는 드라마들을... 나의 아내, 어머니, 옆집 말자 어머니는 원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랬던 옛날 추억의 드라마 '첫사랑'이

지금 이 시대에 방송되었다면 "그게 가능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첫사랑'이라도 지금 시대라면

같은 시청률 경쟁에 끼어 들어서

5%의 시청률을 넘어서는데

안간힘을 썼어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지금 이 순간!!!!

드라마 하는 시간에는

나에게 리모컨 사용권과 채널권이 없다..


이 시간은...

대한민국 가정의 1/3 정도는 전국의 여자들의 시간이다.


tvN에서는 '드라마'를 하고 있다.

제목이...'폭군의 셰프' ?


아내에게 말도 시키지 말고

화면 앞으로 지나가지도 말아야 한다.




'폭군의 더위'가 비를 뿌리며 물러가고 있다.


9월 1일...

가을이다.

가을이 저만치서 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