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때 나는 어쩌면 나도 모르게 놓쳐버린 스물아홉의 그녀로 인해 뒤늦은 실연을 앓게 되리라는 생각을 했다. 너무 늦어 격렬하지는 않겠지만, 격렬할 수도 없겠지만, 그래서 입술을 피나게 씹어대진 않겠지만, 희미해진 사진 속 윤곽을 더듬듯 손끝이 닳도록 무언가의 테두리를 하염없이 더듬어나갈 만짐의 세월이 시작되리라는 예감이었다. >>
권여선 선생님의 글을 아주 오랜만에 꺼내 읽다, 2008년 이상문학상 수상집에까지 이르렀다.
한때 이상문학상 수상작들은 매년 관례처럼 읽었기에 아마 대학생이던 시절의 나는 분명 이를 읽었을 거였지만 제목을 보고 또 가슴이 설레는 걸 보니 전혀 기억에 남아 있지 않은가 보다.
사랑이 대체 뭘까하는 그 질문은 나에게는 11살 이후로 지금까지 여전히 잘 모르겠는,
잘 모르겠지만 절대로 그냥 넘어가지지 않는 문제다.
미적분이든 사회과학이든 대충 이해를 시도해보고, 대충이 아니면 열심히도 부딪쳐보고
끝내 모르겠으면 포기까지 하곤 하는 많은 질문들과는 다르게
사랑이 뭔가 하는 것은 모르지만 끝내 풀어야만 하는, 만일 끝끝내 풀리지 않는다면
내내 그게 뭔가를 탐구하는 과정 속에 살기라도 해야하는 그런 물음인 것이다.
<사랑을 믿다>라니...
작가의 말처럼 믿음을 사랑하다라는 문장처럼 모호하고 심오하고 이상하기까지 하다.
사랑인줄도 모르고 지나간 많은 사랑들, 내게 사랑이 아니었던 시절 누군가는 나로 인해 실연마저 느꼈을 지도 모른다는 놀라움, 내가 저 편을 바라보고 있을 때 누군가는 내 뒤를 보고 있었을 지도 모르겠다는 그런 아련함.. 혹은 아릿함
시간을 돌려, 지금의 내가,
과거의 어떤 시간 속으로 가서
내 뒤를 바라보고 있는 누군가를 볼 수 있다면 나는 금세 사랑에 빠지고 말 것이다.
믿음의 대상은 대개 보이지 않는 것이다. 보이지 않으니 믿을 수 밖에.
놓쳐버린 사랑에 대한 뒤늦은 후회는 '믿다'라는 기억 또는 다짐 속에서 달콤하지만 슬프게 공전하는 것이다.
때때로 이 책 속 서른다섯의 남자처럼 나도 누군가를 어디에선가 매번 기억하고 기억하며 달콤해하겠지만
부디 아무도 나를 그렇게 떠올리지는 말길.
생각보다 오래오래 뭉근하게 슬픈일이라.
내 뒤에서 나를 보고 있었을 익명의 이들이 이제는 거기에 더 이상 남아있지 말기를
여전히 사랑을 믿는 나는 여전히 슬프지만 사랑 때문에 슬픈거라면, 기.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