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큐의 면회시간은 30분으로 제한돼 있고, 면회를 하겠다고 오는 부모들은 주말엔 40명 가까이 평일에도 10명이 넘다보니 니큐 앞엔 늘 줄서기 신경전이 벌어진다.
손을 씻고 비닐가운을 착용하는 그 몇분의 시간을 줄여서 아기들과 조금이라도 더 같이 있겠다는 부모들의 마음.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래서 한 시 면회 때엔 12시 40분 정도부턴 줄을 섰고, 7시반 면회면 7시 10분부터 줄을 서곤 했다. 그렇게 줄을 서는 동안 자연스럽게 다른 보호자들과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그들은 서로서로 친해지고 서로의 아기들의 상태에 대해서 공유하며 격려와 위로를 나누었다.
대개 니큐 입원한 지 몇 달이 흘러 이제 퇴원을 바라보고 있는
말하자면 상태가 많이 호전된 아기들의 부모가 그렇게 서로 친해지곤 했다.
'베이비페어 갔다오셨어요?'
'서울대병원은 그 교수님이 재활을 잘 본대요...'
'저희 아기 망막증 검사한 거 결과가 좋대요...'
'퇴원하면 침대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예요...'
내가 나서기만 했다면 그 보호자들 중 누구와도 친해질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 애는요 25주에 태어났어요... 지금 1차 고비를 넘긴 상태예요
그 쪽 집 애들은요,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나는 넉달 가까운 입원 기간 동안 다른 부모들과 눈 인사 정도만 나누었다.
마음이 그렇게 밖에 안 되더라.
만일 우리 아기가 상태가 안 좋아지는 시점에서
친한 다른 부모의 아기가 호전되는 걸 내가 견딜 수 있을까
혹은 반대로 우리 아기가 막 좋아지고 있는 시점에서
다른 친한 엄마의 아기가 나빠지는 그 상태를 미안함 없이 보낼 수 있을까
내 옹졸한 마음으로는 자신이 없었다.
누구를 부러워하고 싶지도 않았고, 누구에게 미안한 마음도 갖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다른 부모들과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게 되었다.
그 때는 그게 내 마음을 지키는 유일한 길이었다.
그 적당한 거리가 일종의 안전거리였다고나 할까
지치지 않고 슬퍼하지 않고 울지 않을 수 있는 마음의 안전거리
지금은 다들 궁금하다.
외래를 오며가며 눈인사만 했던 그 때 그 부모들을 한번씩 보곤 하는데
지금은 마음 속으로 육아헬을 건너고 있을 그들에게 응원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