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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 완 Oct 24. 2020

#21 졸업

 삶은 내가 제어할 수 없다는 짙은 증거들 속에서 나는 열아홉이 되었다.     


 큰누나의 병원비는 커다란 부담이었으므로 조금의 실마리만 있으면 퇴원했다. 심각한 환자의 성급한 귀가반복되었다. 집에 있는 큰누나는 그 조그만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하루 종일 누워있었다. 가족이 외출할 때 조용히 나와 죽지 않을 만큼의 음식만 먹었다. 내가 중학생에서 대학생이 될 때까지 그렇게 큰누나는 집에 있었다. 늘 집에 있었지만 언제나 보이지 않았다. 인기척이란 그렇게 소거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인간과 공기의 어딘가에서 헤매던 나의 큰누나는 우리 집에서 공식적으로 열등한 인간으로 취급되었다. 나의 부모는 한숨을 쉬었다. 비난하고 욕했다. 때로는 머리끄덩이를 잡아끌고 외출을 시도했다. 때로는 방문을 부수려 했다. 여러 시도의 끝에서 큰누나는 방문을 더욱 굳게 닫았다.       


 우리는 가난했다. 가난은 노력하지 않아도 증명되었다. 나의 더러운 신발과 옷에, 수많은 거절에 익숙해진 기어들어가는 목소리에, 눈빛에, 어깨에 스며들어 있었다. 자기들끼리 만나 외출을 하는 또래 아이들은 마치 어른처럼 느껴졌다. 그들은 나의 부모가 벌벌 떠는 일들, 이를테면 외식이나 쇼핑이나 영화 관람 같은 일을 재미있게 하고 다녀도 혼이 나거나 핀잔을 듣지 않았다. 심지어 즐거워했다. 그들에겐 내게는 없는 권리가 있는 것 같았다. 학교가 끝나면 뿔뿔이 학원으로 흩어지는 아이들을 거슬러 집으로 돌아왔다. 드르륵 들어가는 열쇠의 쇳소리를 들으며 집에 들어가면 나의 부모는 언제나 없었다. 가난에 떠밀려 가 우리를 남겨두고 시골 어디론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큰누나가 숨을 쉬고 있는 집에서 혼자 멍하게 있었다. 그런 시간들이 쌓이는 것을 남들은 컸다고 불렀다. 일 년, 이 년을 버텼다. 삼 년을 버티자 가족이 모였다. 그리고 서로가 서로를 미워하고 비난하며 때리기도 했다. 사 년 오 년을 버티자 나는 느닷없이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나는 죽고 싶었다. 학교에 가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집에 돌아왔을 때, 친구나 친척이 건강한 부모님과 안락한 집에서 함께 산다는 것을 보았을 때, 공부를 하고 대학을 가고 꿈을 이루는 일에 돈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용기를 내다 버린 채 주눅 든 나를 또래 아이들이 무시하고 괴롭힐 때, 아무리 해도 비염과 아토피가 가라앉지 않을 때, 밤새 긁어대다가 아침이 되자 피와 진물이 섞여 흐르는 나의 얼굴을 보았을 때, 아주 오랜만에 만난 나의 아버지가 보릿고개를 겪으면서도 공부를 했다는 이야기를 하며 굶지 않으면서도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는 나를 비난할 때, 가난하고 무능한 나의 아버지가 쥐어패고 욕하는 것이 교육이라고 생각할 때, 큰누나가 유서를 남기고 사라졌을 때, 혼비백산한 나의 엄마가 바닥에 엎드려 삶이 던져 준 과제를 어쩌지 못하고 울고 있을 때 나는 죽고 싶었다.          


 그래도 나는 죽지 않고 열아홉이 되었다. 버티기만 하다가 시간은 지났고 그렇게 나는 조형되었다. 그 시간 동안 살아본 적은 없었다. 시간들은 지독한 형벌과 같았다. 그럼에도 또래들 사이에서 학교를 다니고 공부를 해야 했다. 그 와중에 은폐와 회피는 생존의 전략이었다. 그때까지 내 목소리가 무엇인지도 잘 몰랐다. 또래에게 나의 마음을 여는 일은 애초에 불가능한 영역이었다. 내 삶에 할당된 인내력이 바닥난 듯한 느낌이었다. 살아있는 것이 지옥과 같았다.   


 지옥이 이런 모양새라면 차라리 죽기 싫었다. 사는 것이 지옥보다 고통스러울 수 있었다. 너덜너덜해진 세계관과 인간을 깊이 혐오하는 마음을 굳게 먹은 채 열아홉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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