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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 완 Oct 24. 2020

#20 이명

 해결되지 않은 수많은 문제들이 나를 고통으로 밀어 넣어도 계절은 자꾸 바뀌었다. 꾸역꾸역 참아낸 하루는 쌓이고 쌓여 일 년이 되었다. 나는 고등학생이 되었다. 성장한 신체만큼 그늘도 짙어진 고등학생. 아무리 감추려 해도 매일 들키기만 하는 가난을 껴안은 고등학생. 미래를 생각하기보다 당장 오늘 펼쳐질 비극을 걱정하는 고등학생. 말없이 가만있는 고등학생.     


 그리고 보잘것없는 나의 아버지는 늙어갔다. 나이 40에 얻은 늦둥이 아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그가 먼저 직장에서 졸업해야 했다. 가부장제를 본인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적극적으로 해석한 그는 눈을 똑바로 쳐다본다거나 말대꾸를 한다거나 본인의 생각과 다른 말을 펼치거나 하는 일을 참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위태롭게 유지되던 그의 권위는 퇴직의 시기와 아들이 고등학생이 되는 시기가 겹쳐 스스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의 자격지심은 더 심해져 갔다.      


 그 날은 여느 평범한 주말이었다. 밖에 나갈 일 없는 나는 집에 있었고 역시 밖에 나갈 일 없는 나의 아버지도 집에 있었다. 여느 때처럼 바닥에 드러누운 나의 아버지로부터 너는 게임만 하느냐 공부를 하지 않느냐 말투가 왜 그러느냐 라는 식의 타박이 오가던 평범한 주말이었다. 그의 말을 듣고 있자니 악이 받쳤다. 문을 꽝 닫고 내 방에 들어갔다.          


 그는 화가 치밀었다. 자격지심으로 가득 찬 그의 삶이 아들로부터 부정되는 느낌이었다. 잠긴 방문의 열쇠를 찾아 문을 따고 들어갔다. 그늘 진 아들이 악에 받쳐 있었다. 그냥 보고 넘길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아들의 귀싸대기를 올려붙였다. 한동안 최선을 다해 쥐어 팼다. 아들이 울며 그만하라고 사정할 때까지. 그것은 그가 알고 있는 가장 효율적인 교육법이었다. 적절한 시기의 고함과 폭언, 구타로 집에는 평화가 찾아왔다. 반항하는 고등학생 아이는 다시 고분고분해졌고 아버지는 권위를 되찾았다.     


 다음날, 나는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왼쪽 귀가 잘 들리지 않았다. 물이 들어찬 것처럼 먹먹했다. 점심쯤 되자 어지럽기 시작했다. 멀미를 하는 것 같았다. 가만 앉아있을 뿐인데 쓰러질 것 같았다. 나는 내심 기뻤다. 조퇴를 하고 아무도 없는 집에서 쉴 수 있었다. 한 숨 자고 일어난 나는 일어나자마자 쓰러졌다. 중심을 잡을 수 없었다. 그늘 진 고등학생의 미래처럼 세상은 흔들렸다. 병원에서는 그것을 이석증이라고 했다.     


 며칠간의 치료가 끝난 후, 어지러움증은 사라졌고 소리도 잘 들렸지만 귀에서 삐-하는 소리가 났다. 잠깐 이러다 말겠지 하며 언제나 그렇듯 아무 말 않고 시간을 보냈다.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병원에서는 그것을 이명이라고 했다. 그리고 완치가 어렵다고 했다. 병원을 옮겨 다니며 정보를 구하고 다양한 치료를 시작했을까? 나의 부모는 치료를 멈추었다. 역시 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내 왼쪽 귀에서는 아직도 삐- 하는 소리가 들린다. 처음에는 무척 신경 쓰이고 괴로웠으나 이제는 운명처럼 받아들인다. 그것은 퀴즈쇼에서 오답을 알리는 소리처럼 이미 틀려버린 내 생에 울리는 메시지 같기도 하다. 이명은 마치 우울과 닮아 언제나 내 몸에 살며 삶의 집중력을 빼앗아 버린다. 나를 한 시도 떠난 적 없는 나의 이명은 재산 한 푼 없는 나의 아버지가 내게 증여한 유일한 것이다. 그토록 벗어나려 했던 아버지의 헛소리는 나의 평생에 걸쳐 왼쪽 귀에서 울릴 예정이다. 그가 퇴직을 하고 내가 졸업을 하고 그가 세상을 떠나고 내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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