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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 완 Oct 24. 2020

#19 기대 없는, 희망 없는

 그 시절 나의 밝은 미래를 기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의 부모도, 나의 가족도, 선생님도, 친구들도, 심지어 나조차도 나의 미래를 기대하지 않았다. 결국 우리가 기대한 대로 나의 삶은 흘러갔다.     


 엉망이 된 성적표를 들고 집에 가면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았다. 자살을 시도하는 큰누나를 수습하다 보면 나의 성적이 떨어지는 일쯤은 아무런 일도 아니었다. 내게 학원에 다니는 일은 죄였다. 돈이 들기 때문이다. 돈이 드는 일은 죄였다. 그것은 나의 부모를 슬프게 했다. 때로는 화나게 했다. 돈을 쓴다는 것은 자칫 쏟아질 수 있는 부모의 비난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었다.      


 나의 폭은 쪼그라질 대로 쪼그라졌다. 학창 시절 나는 밖에 나가 친구들과 어울리는 일에도 죄책감을 느꼈다. 그것은 어떻게든 돈이 들었다. 세상의 모든 일에는 돈이 들었다. 세상의 도전과 시도와 경험은 어쨌든 돈이 들었다. 나를 구성하는 세계는 무료로 할 수 있는 것들뿐이었다. 돈이 드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죄를 어느 정도 함유했다. 그렇게 나는 협소해져만 갔다.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희박한 확률의 밝은 미래를 구상하기 위해 돈이 든다면, 그것은 그만두는 편이 더 도덕적이며 합리적인 결정이었다.          


 고3이 되어가던 겨울로 기억한다. 어느 날 부모는 나를 안방으로 불렀다. 짐짓 점잖게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는 부모 앞에 앉았다. 그들은 내게 요즘 공부가 어렵지 않으냐고 물었다.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사립대학에는 보낼 능력이 되지 않으니 어떻게든 저렴한 대학에 진학하라고 일렀다. 장학금을 받아서 생활하라고 했다. 그리고 졸업해서는 지방의 9급 공무원 시험을 보라고 했다. 아버지 본인의 삶을 뒤따르라고 일렀다. 그렇게 하면 굶어 죽지는 않는다고 덧붙였다. 굶어 죽지 않는 것. 그것이 시골에서 자라나 작고 낡은 아파트에서 어색하고 가난하게 살아가고 있는 부모가 내게 기대하는 것이었다. 마치 음악을 하겠다는 아들에 맞서 기업 승계를 원하는 드라마 속 부자 아버지의 모습처럼 점잖고 진지하게. 작고 낡은 아파트, 싸구려 장판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아버지는 내게 말했다. 본인의 삶을 따르라고. 평생 가난했으며 자식들을 비극에 몰아넣었으며 아내와 매일 싸워대야 하는 삶으로. 나는 거절을 몰랐다. 알겠다고 대답했다. 나는 운명과 환경에 저항할 수 없었다. 그것은 꽤 압도적이었다.     


 대학에 가는 일보다 내게 중요한 것은 이 집을 떠나는 일이었다. 이 가족을 떠나는 일이었다. 같은 집에 산다는 이유로 저열한 아버지나 미쳐버린 큰누나를 마주쳐야만 하는 일을 피하는 일이었다. 지독한 성장의 기억으로부터 벗어나는 일이었다. 그것은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의 대학을 진학하게 되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가난한 우리 집은 돈이 없었다. 집에서 벗어나는 일이 내가 생각한 가장 밝은 미래였다. 나는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평범한 학창 시절은 무엇일까. 밝은 미래를 기대하는 것일까. 꿈과 미래, 적성과 진로, 미래라든가 노력이라는 단어들로 이루어져 있을까.      


누군가의 삶의 계획은 탈출과 도피로 채워진다. 다행히도, 우리 모두는 아직 굶어 죽지 않았다. 다행인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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