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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 완 Oct 24. 2020

#18 머릿 속 먹구름

 중학생 시절 내가 가장 집중한 주제는 첫사랑도, 공부도, 친구도, 게임도 아니었다. 바로 집에 가면 마주하게 될 비극이었다. 우리는 가난하고 가끔씩 오는 부모는 내 앞에서 울며 싸우고 큰누나는 미쳤고 미래는 암담하다. 이 사실은 내게 절대적이고 압도적이었다. 말해선 안 되는 수치였으므로 굳게 비밀을 지켰다. 내 생각의 어느 영역은 내게 벌어진 비극을 반추하는 데 할애되었다. 스스로의 의지로 막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그것이 먹구름 같다고 생각했다. 맑다가도 갑자기 들어찬 먹구름은 세상의 빛을 거두고 비를 내린다. 나의 머릿속에는 하루에 오십 번쯤 먹구름이 몰려왔다. 그래서 공부를 하다가도, 게임을 하다가도, TV를 보거나 대화를 하거나 잠을 자다가도 하던 일을 멈추고 머릿속에 내리는 비를 피하기 위해 가만 머물러야 했다.          


 나의 무력한 부모와 가난, 큰누나, 홀로 챙겨 먹어야 하는 맛없는 저녁식사까지 한 바퀴 돌고 나면 그것만으로도 지쳐버렸다. 비염 때문에 훌쩍이며 아토피로 인한 가려움을 참다가 쉬는 시간이 되면 잔뜩 주눅 든 표정으로 행여나 싸움을 잘하는 아이들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을까 걱정했다. 이 와중에 수학 문제를 푸는 일은 내 문제를 푸는 일에 어떤 도움도 되지 않았다. 어른들은 공부를 하는 일이 인생을 개선하는 일이라고 이야기했다. 도무지 보이지 않는 나의 인생을 개선하기 위해 책상 앞에 앉으면 먹구름이 몰려왔다. 먹구름을 물리치기 위해 싸웠다. 그것은 싸운다고 물러가는 것이 아니었다. 흠뻑 비에 젖을 뿐이었다. 생각의 절반을 비극을 반추하는 데 빼앗기고 남은 절반의 생각으로 푸는 문제들은 자꾸만 틀렸다.     


 이미 밑바닥처럼 느껴지던 나의 인생이라는 것을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인 공부도 못하게 된다는 사실을 마주했다. 절망했다. 곧 받아들였다. 별 것 없는 인생을 수용했다. 짙은 가난과 부수어진 가족과 낡고 좁은 집에서 아토피로 가려운 온몸을 긁으며 쉴 새 없이 재채기를 하며 하루에 오십 번쯤 머릿속 먹구름을 맞으며 삶을 수치로 느끼는 것을 막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로부터 20년쯤 지난 어느 날, 혼자서는 우울증에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한 나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고 상담센터를 찾아갔다. 병원에는 가지 않았다. 정신과 병원에 간다는 것은 지독한 수치라고 뼈에 새겨두었기 때문이다. 인지심리검사를 받았다. 상담사는 조심스럽게 학창 시절 산만하고 행동이 과격하지 않았냐고 물었다. 나는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다. 언제나 주눅 들어있던 나는 죽은 벌레처럼 가만히 컸다. 상담사는 내게 성인 ADHD의 가능성이 보인다고 했다.          


 ADHD의 원인은 유전과 뇌 발달 결함 등 생리적인 이유에서 찾는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 그것은 먹구름이다. 하루에도 50번쯤 들이닥쳐 나를 허름한 처마 아래 묶어두던 먹구름. 아주 오랜 시간 나와 함께했던 합리적인 절망들. 이것은 생리적일까 운명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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