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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 완 Oct 17. 2021

서른 셋, 죽기로 결심하다.

한강에서 만난 노인

이것은 내가 서른셋부터 서른다섯의 나이까지 겪은 일이다.   

       




“여기까지만 살겠습니다.”     


 달리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단출한 유서를 썼다. 집을 둘러보았다. 정리한다고 했지만 지저분해 보였다. 이 공간은 아무리 정리해도 지저분해 보인다. 오래된 집, 초라한 원룸. 벗겨진 벽과 오래된 장판은 당장 버려도 이상할 게 없는 가구와 온통 까무잡잡한 옷가지로 어색하게 덮여 있었다. 차마 집에서 실행할 순 없었다. 그것은 세입자의 예의가 아니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까지 이 공간에 너무 잘 어울리는 주검이 되고 싶지 않았다. 방 문을 열고 들어올 사람의 기분, 방을 치우게 될 나의 늙은 부모님을 생각해보았다.     


‘마지막까지 나는 참 생각이 많구나..’     


 나는 원래 생각이 많았다. 지나간 과거, 미래에 대한 불안, 사람에게 받은 상처, 자기혐오, 자기 의심, 백일몽, 공상, 쓸데없는 생각들로 가득한 나는 한 번도 제대로 집중이란 것을 해 본 적이 없었다. 삶의 마지막까지,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생각들을 붙들고 있다는 게 우스웠다.     


‘이제 다 끝이야..’     


 한강을 갔다. 마포대교. 한 번도 가본 적 없지만 왠지 한강에 가야 할 것 같았다. 마지막은 물이어야 한다. 그리고 뛰어야 한다. 이런 생각을 했었다. 양수에서 뛰쳐나온 생의 시작처럼, 마지막은 커다란 물줄기로 뛰어들어야 한다.     


 10월이었다. 바람이 불었다. 버스와 지하철과 버스를 몇 번 타고나니 저녁의 마포대교에 도착했다. 다리 중간에까지 걸어갔다. 그리고 강을 바라보았다. 흐르는 물줄기가 보였다. 작은 파도 같았다. 바람이 불었다. 차가웠다. 내 사정과 기분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부는 찬바람. 서울살이 같았다. 내 삶 같았다. 발아래에는 강이 흐르고 있었다.     


 나는 마치 최면에라도 걸린 것처럼 강물을 쳐다보았다. 흐르는 물줄기 하나를 골라 시선을 이동시켰다. 새까만 강물은 빛에 반짝였다. 내가 살아온 시간을 떠올려보았다.     


 엄격한 아버지 때문에 일찍 철든 척했던 어린아이 시절, 지옥 같았던 학창 시절, 친구를 사귈 줄 몰라 매번 어버버 했던, 친구들에게 말도 제대로 걸 줄 몰랐던 사춘기 시절. 무엇 하나 잘하는 것 없고 잘난 것도 없어 인기 없던 성장기. 나중에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나 막막하기만 했던 고등학생 시절. 방구석에 처박혀 게임이나 했던, 그러면서 시간을 보냈던 십 대 후반 시절. 아무렇게나 간 대학에서 겪은 이상한 일들, 혈기와 욕심만 가득한 채 시작한 줄도 모르고 끝나버렸던 서툴고 징그러운 연애..


 매일 밤 울분을 부여잡던 군생활, 복학하고 찾아온 우울증, 미래에 대한 지독한 불안, 걱정한 대로 흘러간 끔찍한 성인기, 지독한 돈벌이, 슬픔, 우울, 고립까지..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떠오르는 기억들이 두고 나온 내 초라한 원룸 같았다. 슬퍼하기도 부끄러운. 너무나 초라한. 보잘것없는. 신이 있을까? 신이 있다면 이런 삶은 어떤 이유로 창조한 것일까? 이 부족한 삶은 어떤 이유로 흘러왔을까?      

 아직 강물을 보고 있었다. 마음속으로는 다섯 번도 넘게 뛰어내렸지만 몸은 그러지 못했다. 나는 반쯤 최면에 걸린 듯 멍하니 강물을 바라보았다. 지독하게 많은 생각을 끌어안은 채.     



그때였다.      


누가 내 등을 때렸다.     


처음 보는 노인이었다.          


 나는 악몽에서 깬 듯 갑자기 다리에 힘이 풀렸다. 다리의 난간을 부여잡았다.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 내 지나간 삶을 송두리째 끓여버린 듯, 눈에서 눈물이 쏟아졌다. 호흡이 어려울 정도로 꺽꺽대며 울었다. 소리 지르며 울었다. 울음만으로 머리가 무거워졌다. 땅에 고개를 처박고 울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그 노인은 그대로 있었다.


 점잖아 보이는 할아버지였다. 70세쯤 되었을까. 키는 170을 조금 넘어 보였다. 단정한 바지와 깔끔한 쟈켓을 입고 있었다. 산책을 하는 길이었을까. 나는 내가 하려던 일을 들킨 것 같기도 하고 그렇게 정신없이 우는 것도 부끄러워서 그 노인을 외면한 채 자리를 옮기려 했다.    

 

“이보게나”     


노인이 나를 불렀다. 낮고 점잖은 목소리로.     


“네?”     


나는 대답을 한 채 잠자코 있었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노인은 정적으로 느껴질 만큼 충분한 시간 동안 나를 살피더니 명함을 한 장 건넸다.     


“정신 차리면 연락하게나”     


나는 늘 초라한 직업을 전전했으므로 명함을 가져본 일이 없다. 명함을 받은 일도 드물다. 노인이 건넨 명함은 하얀색 바탕에 검은 글씨로 정말 필요한 것만 적혀있었다. 한자가 드물게 보였다. 직급도 없이 허전한 명함을 보니 대단한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나는 멍하니 명함을 받아 들었다. 처음 보는 노인이 건넨 명함을. 아무 말 없이.     


“....”     


 그리고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      


    

 너무 울어서 머리가 아파왔다. 눈은 붉게 충혈되었다. 반쯤 자포자기 상태가 되었다. 나는 모든 일에 실패하더니 결국 죽는 일도 실패해버렸다. 에라 모르겠다. 소주를 한 병 사서 내 초라한 집에 돌아왔다. 참치에 소주를 먹고 잠을 청했다. 눈물이 나려 했으나 아까 다 쏟아버린 것 같았다. 마른 울음을 울다가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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