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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 완 Sep 21. 2019

#1 학습된 무기력

"모든 것은 의견에 좌우된다" - 세네카

 

 개들을 세 그룹으로 나눈다. 1그룹은 전기충격을 스스로 멈출 수 있는 케이지에 둔다. 2그룹은 전기충격을 피할 수 없도록 한다. 3그룹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이제 이들을 낮은 담을 넘으면 충분히 빠져나올 수 있는 공간에 두고 전기충격을 가한다. 불쾌한 전기충격이 가해진다. 1그룹과 3그룹의 개들은 낮은 담을 넘어 그 공간을 벗어 나온다. 2그룹은 한편에 웅크리고 앉아 불쾌한 전기충격을 감수한다. 그 상황을 극복할 수 없을 것으로 믿기 때문이다.

 

 쥐는 물을 싫어한다. 물에 빠지면 필사적으로 헤엄쳐 나오려 하는 습성을 갖고 있다. 쥐를 빠져나올 수 없는 수조에 밀어 넣는다. 한동안 쥐는 필사적으로 헤엄을 치거나 벽을 타오르면서 탈출을 시도한다. 몇 번의 시도에도 탈출할 수 없게 되면 쥐는 물 위에 둥둥 떠서 움직이지 않는다. 쥐들을 꺼내어 다시 먹이고 쉬게 한 뒤 충분히 빠져나올 수 있는 수조에 넣는다. 어떻게 될까? 물 위에 둥둥 떠서 움직이지 않는다. 그 상황을 극복할 수 없을 것으로 믿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나는 아버지에게 이유도 모른 채 가끔 두들겨 맞았다. 때리는 것도 모자라 그는 내가 소중히 여기는 내 물건들을 집어던지며 망가뜨렸다. 내가 항변하면 거친 욕설과 함께 주먹이 날아왔다. 어머니에게 따져도 그냥 어서 잘못했다고 빌어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아직도 그렇게 맞아야 했던 이유를 모른다. 저항이나 반항은 상황을 악화시키는 일이었다. 따져서도 안되었다. 그저 빌어야 했다. 우리 집의 가난에도, 부모의 싸움에도, 큰누나의 조현병에도, 나의 질병에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저 웅크리며 시간을 버틸 뿐이었다. 또래 아이들이 나를 따돌리고 무시하고 놀려도, 억울하고 불리한 상황이 벌어져도, 내가 상황을 바꾸어 보려 무언가 말을 꺼내려는 순간 더욱 거칠게 날아오던 주먹이 떠올라 목소리는 흔들렸다. 그리고 위축되기를 선택했다. 내가 갖고 싶거나 하고 싶은 것이 있어 부모에게 요구하면, 그것에 돈이 든다는 사실을 알고 나의 부모는 어떻게든 허락하지 않으려 했다. 그때 그들이 보이던 그늘이라든지 분노와 조롱과 같은 대응은 상황을 바꾸어보려는 나의 시도 자체가 죄악처럼 느껴지게 했다. 내가 하는 대부분의 요구는 거절될 것을 알고 하는 것이었다. 


 무기력하게 웅크리는 자에게 세상은 더 많은 시련을 선물한다. 다가오는 시련에 웅크림으로 내버려 두는 방법은 문제를 더 큰 비극으로 번져나가게 한다. 발버둥 치는 방법조차 잊은 채 원래 삶이란 비극이라는 자세로 버텨내기만 하다가 시간은 간다. 그러나 삶은 끝없는 도전을 요구한다. 그럴 때마다 도전에 직면하는 것 대신 다른 방법을 선택한다. 근육통이 있는 사람은 뛰쳐오를 수 없다. 기만하거나 회피하거나 무시한다. 관계의 실패, 사랑의 실패, 경제적 궁핍과 같은 열악한 상황을 내버려 둔다. 사람은 신기하게도 어떤 상황에서도 살아갈 수 있다. 그저 살아갈 수 있다. 시간은 전기충격을 받거나 물에 빠진 동물들 뿐 아니라 가난하고 우울한 자에게도 흐르기 때문이다. 


 셸리그만의 실험 이야기를 처음 접한 것은 대학교 1학년 때의 일이다. 나는 2그룹의 개처럼 살아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내 앞에 놓인 담들을 뛰어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여전히 가만히 웅크린 채 아주 오랜 시간을 버티며 산다. 세상이 요구하는 도전들을 받아들이기에 나는 많이 가난하고 열악했으며 서툰 시도는 언제나 실패를 불러왔다. 항변은 두려운 일이다. 상황을 극복할 수 없다고 믿는다. 이미 내 삶은 이런 포지션이라는 의견이다. 그것은 수많은 증거들과 함께 확신이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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