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 완 Sep 21. 2019

#2 열등감

"자신이 열등하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비로소 인간이 된다" - 아들러


 나는 객관적으로 펼쳐진 열등의 증거들과 함께 자라나야 했다. 운동을 잘하지 못했다. 몸을 뜻대로 놀리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덩치도 작았다. 목소리도 작았다. 가난했다. 소심했고 언제나 위축되어 있었다. 말을 잘하지 못했다. 사람과 어떻게 이야기를 나누어야 가까워지는지 알 수 없었다. 처음 만난 사람과 어떻게 이야기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나는 가장 낮은 서열을 자처하며 무리에 섞였다. 아무도 내게 말을 걸지 않았다.


 열악한 환경도 열등감을 불러일으켰다. 나의 성장기 시절, 우리 집은 가난하고 나의 누나는 미쳤으며 나의 부모는 매일 욕설을 하며 싸운다는 사실을 친구들이 아는 일은 죽음보다 막고 싶은 수치였다. 그렇지 않아도 무시당하는 상황에서 열악한 환경마저 또래들이 알게 되는 일은 벼랑에 떨어지는 것과 비슷하다고 여겼다. 그것이 불러 올 지독한 수치심에 언제나 전전긍긍했다. 어떻게든 행복하고 건강해 보이고 싶었다. 그러나 행복하고 건강하지 않았으므로 결국 성공하지 못할 운명이었다. 언제나 벼랑 끝에서 수치심을 숨긴 채 할 수 있는 만큼 행복한 척을 하며 살았다. 또래 아이들의 즐거운 경험에서 드러나는 건강한 환경을 눈치챌 때마다 열등감으로 일그러지는 표정을 감추기 위해 노력했다.


 세상과 마주치는 많은 장면에서 나는 열등했다. 공부를 잘하지 못했다. 나의 생각들은 수학 문제 대신 해결되지 않은 내 삶의 문제들로 향했다. 그것들은 결코 내가 수 없었다. 말을 하거나 제스처를 취하는 등 나를 표현하는 모든 것에 어려움을 겪었다. 잘하는 것도 없었다. 특기를 적어내야 할 때마다 변명처럼 컴퓨터라고 적어냈다. 내가 직장을 구하는 것도 문제였다. 가난과 우울은 어떤 이력도 만들어내지 못했다.


 나이를 먹어서도 끝내 비교하는 습관은 버릴 수 없었다.  나보다 잘난 사람들은 아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타인을 만날 때마다 몇 가지 이력을 묻는다. 그것들은 대부분 나보다 훌륭했다. 겉보기에도 그들은 나보다 훌륭했다. 나는 다시 열등감에 휩싸인다. 사람과 마주하기 어렵다. 모든 사회적 행위는 열등감을 불러일으켰다. 내게는 그만큼 열등함의 증거들이 넘쳐났다.


 열등감은 누구나 갖는다. 열등감 자체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열등함을 만회하려는 시도 자체가 인간의 존재 양식이 된다고 아들러는 말한다. 그렇게 열등감은 삶을 가꾸는 건강한 이유로 작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치명적인 열등함이나 열등감에 대한 과도한 인식은 문제가 된다. 삶의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잘못된 전략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내가 열등감을 다루는 방식은 벼랑 끝에서 수치심을 불러일으킬만한 것들을 꼭꼭 숨기던 그 시절에 머물러 있다. 내가 지닌 지독한 열등감은 그것을 숨기려는 서툰 전략을 남발하게 하면서 내 삶을 여러 군데 망가뜨렸다.


작가의 이전글 #1 학습된 무기력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