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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 완 Sep 22. 2019

#3 분열

 지하생활자의 비밀스러운 욕망은 대부분 비현실적인 야망으로 가득 차 있다. 그들은 대통령이 된다거나 크게 사업을 일으켜 거부가 된다거나 하는 등의 꿈을 꾸며 시간을 보낸다. 왕따를 당하고 있는 아이의 상상을 생각해 보자. 그 아이의 공상 속에는 일진 아이를 때려눕히거나 유튜브 스타가 되어 몇만의 팔로워가 생기는 자신의 모습이 펼쳐진다. 남루한 현실을 상쇄할 만한 화려한 공상으로 마음의 균형을 찾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은 그렇게 속이기 쉽다.


 지하생활자가 겪는 고통은 비현실적이다. 폭력, 가난, 억압, 소외로 점철된 삶은 약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버텨내기 쉽지 않다. 지독한 현실에서 인간으로서 반응하는 것보다 비현실적인 공상의 세계가 안락하다. 나의 요구들, 이를테면 친구를 사귄다거나 먹고 싶은 것을 먹는다거나 하고 싶은 일을 한다거나 하는 것들은 현실에서 모두 거절당한다. 서서히 현실에서 철회한 사람의 마음은 이루어질 수 없는 비현실적인 공상에 머문다. 이것은 분열을 낳는다.


 내가 지옥 같은 시절을 보내던 그때 유독 힘든 하루를 보낼 때면 공상은 막을 수 없을 정도로 커져 갔다. 공상 속에서 보이는 화려한 미래가 기다리지 않는다면 내가 처한 지금의 현실은 버틸 가치가 없어 보였다. 그런 시간이 길어지면 내가 나를 3인칭으로 파악하게 된다. '이 아이는 가난하구나.' '이 아이의 가족은 자살을 시도했구나.' '이 아이는 또래들에게 놀림과 무시를 당하는구나.' '이 아이의 아버지가 가족을 때리고 있구나.' '이 아이의 삶은 보잘것없구나.' 아무렴 어때. 나에게는 화려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는데.


 곧이어 자기를 알아차리지 못하게 된다. 내가 무엇을 하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내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도 알 수 없게 된다. 나로부터 벗어난 나. 나로부터 괴리된 나. 욕망은 공허함으로 가득하다. 비현실적인 야망에 허우적대며 허기를 채우는 일, 배변하는 일 이외의 것에 결정을 할 수 없게 된다. 고통을 견디다 못해 모든 욕구와 감정과 감각으로부터 물러나 버리는 것이다.


 그 집을 벗어 나와 사람들과 관계를 맺기 시작했을 때 나는 새로운 적응이 필요했다. 나와 달리 다른 사람들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말할 수 있었다. 그들은 점심에 먹고 싶은 음식과 내일 할 일과 오늘 느낀 감정에 대해 말할 수 있었다. 내가 원하는 것, 내가 느끼는 감정, 현실에서 작동하는 내 생각으로부터 한없이 물러나 있던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말할 수 없었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나는 몰랐다. 내가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나는 몰랐다. 그저 '이 아이는 지금 무언가를 말해야 하는구나.' 정도가 내가 한 생각의 전부였다.


 자기 생각과 감정과 욕구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현실과 동떨어진 욕망을 이끌고 헛된 발길질을 계속한다. 욕구로부터의 도피. 지하생활자가 현실을 버티는 한 방법이다. 시간이 길어지면, 자기를 놓쳐버리고 만다. 고통을 겪고 있는 나와 화려한 미래가 펼쳐지는 공상에 빠져 있는 내가 삶에 최소한으로 필요한 만족의 균형을 맞춘다. 지하생활자의 마음속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두 개의 내가 아슬아슬한 동거를 계속한다. 이 둘은 더 힘든 쪽이 집을 나가버리는 모습으로 대부분 파국을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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