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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 완 Sep 22. 2019

#4 백일몽

 사람이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욕구의 기초적인 만족이 이루어져야 한다. 식욕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의미 있는 관계라든지 개인적 성취, 이성과의 사랑, 가치 있는 물건의 소유와 같은 동물이 아닌 인간만이 하는 놀이를 말한다. 그러나 단순한 만족마저 불가능한 상황에도 사람은 삶을 유지한다. 놀랍게도 세상에는 그런 상황에 있는 사람이 있다. 그는 초라하고 보잘것없으며 많은 것이 불가능한 현실을 만회하기 위해 비현실적인 공상을 품는다. 이것은 그를 현실의 타계라는 중대한 과제로부터 이탈하게 한다.

  

 지독한 성장기를 거치는 동안 내가 품은 꿈도 다분히 비현실적이었다. 세상이 놀랄 만한 천재성을 발휘하는 예술가가 되거나 정치인이 되어 민족을 이끄는 대통령이 되거나 인간의 의미를 밝혀내는 철학자가 되거나 몇천억을 소유하는 거부가 되는 상상을 하며 고욕을 버틴다. 그런 상상들은 보잘것없는 현실 속에서 아무런 만족도 얻지 못한 나의 마음이 자연스럽게 향하는 공간이었다. 이런 거창한 욕망들은 현실성이 부족하기 때문에 언제나 위기를 맞는다.


 삶에 놓인 과제들은 이런 욕망을 현실로 만드는 것과 관련이 없다. 시험을 보는 일, 쌓인 설거지를 하는 일, 공과금을 내는 일과 치과에 가는 일은 내가 세상을 놀라게 할 만한 일을 하는 데 어떤 작용도 하지 못할 것 같았다. 비현실적인 꿈을 품은 자에게 세상의 일들은 거추장스럽기만 하다. 생활에 필요한 기술을 익히고 사소한 자기계발을 하는 일도 거창한 꿈을 이루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지 않다. 가난과 우울과 열악한 상황 속에서 공상으로 버텨 온 지하 생활자는 만족을 얻을 수 없는 현실로부터 한 발짝 더 물러나게 된다.

 

 세상은 어렴풋한 소득을 안겨주는 안정적인 직장을 갖기 위해서도 대단한 노력을 요구했다. 이 세상의 경쟁은 치열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지하생활자에게 꽤 잔인하게 다가온다. 버텨온 시간들이 무색할 만큼 다시 초라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하는 일이다. 화려한 미래라는 공상 속에서 지옥을 버텨 온 내가 현실로 만나게 된 진짜 미래는 한 달 20만 원짜리 고시원에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내 조건에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욕망이었다. 여전히 방은 좁고 낡았다. 내가 버텨 온 것은 화려한 미래가 기다리는 일시적인 현실이 아니었다. 삶의 순간순간에서 계속 반복되는 운명과도 같은 것이었다. 


 현실적인 미래를 위한 현실적인 노력과 만나는 순간 자기에게 혐오를 느낀다. 고작 이 것을 위해 그 시절 고통을 견뎌내었다니. 미래를 그리던 나의 꿈은 무엇이었나. 이때까지 도대체 무엇을 했을까. 그러나 이러한 진술은 대부분 당위성이 없다. 지하생활자는 주로 침대나 게임 화면 앞에서, 술상 앞에서 비현실적인 욕망을 품으며 현실로부터 물러나 살았기 때문이다. 현실에 직면하는 순간 그는 아무런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여전히 현실은 가난과 우울에 쌓여 있다. 그 가운데 헐벗은 느낌으로 멍하니 서 있다. 시간은 흐른다. 그에게 언젠가 겪어본 적 있는 비슷한 느낌의 미래가 찾아온다. 백일몽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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