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 완 Sep 22. 2019

#5 감정

 사람의 마음에 공감하는 능력은 인간으로서 기능하는 데 중요한 과제다. 사람들이 나와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는 것으로도 위안을 얻는다. 그러나 지하생활자에게 공감은 언제나 어려운 과제이다. 겪은 문제들과 놓인 과제들에 지쳐버린 지하생활자는 자신의 감정도 읽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읽을 수 있는 감정들은 분노가 대부분이다. 때로는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을 왜곡하여 받아들이기도 한다.


 그 집을 벗어 나와 대학에 입학했을 때, 또래들은 자기 앞에 놓인 문제들로 다양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그 문제들은 그 나이 때에 적합한 것이었다. 사랑이라든지 공부, 사람 관계에 대한 것들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런 문제들로 촉발된 감정에 공감할 수 없었다. 조롱했다. 비웃었다. 가치 없다고 여겼다. 마음이 마음을 존중할 수 없었다. 나는 누나의 조현병을 지켜보았다. 나는 지독한 가난을 겪었다. 나는 무리에서 이탈되어 절대적인 고독을 겪었다. 아버지에게 맞은 나의 한쪽 귀는 잘 들리지 않는다. 가난과 자살과 정신병이 무시무시하게 펼쳐진 집에서 고통스럽게 이곳에 왔다. 그런데 너는 고작 짝사랑으로? 라는 생각이 들어찬 마음으로 굳은 표정을 지은 채 오히려 한가해 보이는 녀석에게 분노를 느끼고 있었다.


 내 감정을 이해하고 표현하는 것은 생각할 수 없었다. 먼저 그렇게 해본 적이 없었다. 나의 고통스러운 상황을 부모에게 하소연하는 것은 성숙하지 않은 행동으로 치부되었다. 나의 부모들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게 주어진 감당하기 어려운 일 인분의 고통을 감내하기 위해서는 나로부터 조금 물러나 있어야 했다. 감정을 무시해도 어떻게든 시간은 흘렀다. 감정을 보살피는 일은 생존과는 관련이 없었다. 무표정으로 컸다. 누군가는 이런 나를 나이에 비해 성숙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내 책임이 아닌, 내가 벗어날 수 없는 열악한 상황에서 느끼는 대부분의 감정은 짙은 억울함, 분노, 피해의식, 좌절감과 같은 것들이었다. 그마저도 표현해서는 안되었다. 남에게 내 상황을 이야기하는 것은 커다란 수치였다. 우리 집에서 자유롭게 감정을 표현하는 일은 나의 아버지만이 가능했다. 대부분 물건을 집어던지거나 욕설을 내뱉거나 폭력을 행사하는 방식으로 표현되었다. 그것이 내가 배운,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래 본 적 없다. 가장 낮은 서열의 존재는 그런 방법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사람과 관계를 맺고 생활을 하고 연애를 할 때도 감정을 나누는 일은 언제나 곤욕스러웠다. 세어 나오는 타인의 감정을 목격할 때 비웃고 조롱하는 일이 잦았다. 그것은 내가 감정을 표현할 때 되돌려 받은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사람들의 감정을 조롱하지 않는다. 시간이 내게 훈련시킨 것이다. 그러나 이상한 일은 있다. 불합리한 일을 당해도 아무렇지 않다가 하루 뒤에 화를 느낀다. 서툰 연애를 집어던지듯 마무리하고 한 달 뒤에 눈물이 난다. 따스한 햇살이 내리쬐는 바다를 보며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우울하다. 잠의 시작과 끝에 무척 슬프다. 나로부터 떠나 간 내 감정은 제 멋대로 요동친다. 나는 대부분 그것을 이해할 수 없다.


 

작가의 이전글 #4 백일몽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