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이야기 할 책은 박경리 작가님의 <토지 19권> 입니다.
반년 넘게 이어져온 토지 완독 챌린지 달성을 정말 코 앞에 두고 있네요.
그동안 벌어졌던 이야기들을 하나 둘 마무리 짓고, 멀리 떠나갔던 사람들의 소식도 하나 둘 전하면서 하나의 시대가 저물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일본의 패망이 얼마 안남은 시점.
그렇기에 더 악랄해지는 일본의 강제징용과 조선인에 대한 압박..
하루 하루를 그저 살아갈 뿐인 소시민들의 모습
�(44) 인호가 나와서 상냥스럽게 말했다. 친정에 있을 때는 항상 사람을 피하듯 들판에 나가 일만 하던 인호, 찌들었고 웃음기라고는 없었던 얼굴이 제법 토실토실하고 보기가 좋았다. 옷매무새도 단정했다. 누군가를 섬기면서 산다는 것이, 이토록 사람을 변하게 하는 것일까. 사람은 밥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며 마음으로 산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한복이의 큰 딸 인호가 첫번째 결혼에서 견디지 못하고 도망친 이후 '우가네'의 괴롭힘 때문에 결국 '야무'에게 재취를 갑니다.
그것도 자신이 스스로 한 결정.
그때문일까요? "인호 생활에 활기를 준 것은 독자적으로 산다는 그 의식 때문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자리가 확실하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독자적인 의식을 가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어찌보면 식민 시대의 무서움은 사람들로 하여금 '독자성'을 가지지 못하게..
누군가에게 '종속된 존재'로만 인식하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요?
이번 편을 보면서 '기화'(봉순이)가 <토지>에서 가장 인기녀인 것을 알았습니다.
우선 길상이도 '봉순'이를 어느 정도 좋아했었구요. 이상현도 마찬가지. 서의돈도 봉순이에게 빠져 있었지요. 그 무슨 창하는 영감님도 봉순이를 좋아해 집 한칸 마련해주었고,
석이도 봉순이를 좋아했죠.. 그런데 '장연학'도 봉순이를 마음에 품었다는 것!!
그래서 연학이 '양현'에 대한 애틋한 부성애가 있다는 것..
봉순이의 끝이 안 좋긴 했지만.. 그래도 많은 사랑을 받았던 것은 분명하네요.
�(58) 석이가 기화를 사랑했던 것도 알고 있었다. 티끌만큼도 욕심내지 않았고 크게 번민하지도 않았으나 그리움은 있었고 그는 그 그리움을 자기 자신에게도 속이려 했다. 하여간 그런 감정을 가져본 것은 기화에 대한 것이 유일이다. 양현에 대하여 부성애 비슷한 것을 느끼는 것도 그 때문인지 모른다.
이번 편에서 가장 울림이 있고 머리를 강타한 내용은 '의식의 마비'에 대한 내용입니다.
계속 되는 폭력과 폭압에 사람들은 무뎌지고 말죠.
가정폭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살아가는 이유가 체념하기 때문이라고도 하죠.
식민 시대 조선 민족은 일정 부분 체념 상태에 빠져 있었습니다.
�(68) 조선 민족의 운명은 진작부터 그런 방향으로 예상되어왔다. 식자들의 공통된 견해였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지극히 소수만이 그 포악한 칼날을 피부에 느끼고 있었을 뿐 대부분의 조선인들은 의식이 마비된 상태였다. 체념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의식이 남아 있었을 때의 이야기다. 날이면 날마다 도처에서 벌어지는 단장의 이별이나 굶주림, 오로지 하나, 일본 왕에 대하여 충성하며 초개같이 제 목숨을 버려야 한다는 총칼의 위협이 강산에 충만해 있건 사람들에게 그것은 풍경에 지나지 않았다. 그 원인이나 결과 같은 것은 생각지도 않았으며 다만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것만 느끼고 있었다.
영광과 양현의 사랑은 이루어질 수 있을까요?
영광은 자신의 단점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함부로 영현을 범하지 못합니다.
어찌보면 영광에게 있어 가장 고결한 사랑의 모습이 아닌가 싶네요.
오가타는 조찬하와 쇼지(오가타와 유인실의 아들)과 함께 만주 여행을 떠납니다.
부산에 들러 만주로 가게 되는데.. 오가타는 아들을 아들이라고 부르지도 못하면서 속으로 쇼지에게 '이곳이 너의 어머니의 나라'임을 외칩니다.
이들에게 이번 여행이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223) 용무가 없는 여행이란 항상 그러한 것이지만 그것은 일종의 탈출이다. 그러나 배를 탔을 때나 기차를 탔을 때는 그것이 탈출이기보다 유리 현상으로 나타난다. 탈출하는 대지를 잃었기 때문에 개체에 응결되는 자각과 동시에 운명과의 수직선을 그으며 불확실한 의식의 세계는 확대된다. 그것은 죽음의 행로가 이러할지 모른다는 쓸쓸함이며, 자유의 개념이란 결국 개체에 대한 인식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여행을 꿈꾸며 또 여행을 반복한다.
이제 곧 해방이 될테지만 이를 모르는 사람들은 막막한 현실 앞에서 자꾸만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도 하고, 더 오기가 날 수도 있습니다.
정말 길게 달려왔던 토지..
이제 1권만 남겨두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