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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욱 Mar 08. 2019

 아들과 함께 하는 수학 시간 - "비례식"

아빠만 즐거운 수학 시간

보통 집에 퇴근해서 들어가면 아들은 엄마와 한 바탕 전쟁을 치러서 씩씩거리고 있거나 조용히 문제집을 풀거나 아니면 TV를 보고 있거나. 대충 세 가지 경우를 만나게 된다.

어제는 뭐 조금 상황이 다르긴 했으나, 1시간 후 문제집을 풀고 있는 아들을 다시 눈 앞에 보게 되었다. 아들이 가끔 물어본다. 


아빠, 이건 어떻게 풀어요?

사실 아들의 바람은 이거 푸는 방법 알려주세요. 답을 빨리 적고 숙제 끝내고 싶어요 이런 눈빛을 간절히 보낸다. 숙제를 끝내야 본인이 그렇게 좋아하는 EPL 축구 하이라이트라도 볼 수 있는.. 아니, 보고 싶다고 말이라도 할 수 있는 그런 처지에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난 그렇게 쉽게 답을 내줄 수 없다. 물고기를 대신 잡아주기보다 물고기 잡는 법을 알려주라는 옛 성현의 가르침 그대로 원리를 설명해 나간다.


사실 아들의 답을 갈구하는 간절한 눈빛을 처음부터 느꼈던 것은 아니다. 단지 피곤하지만 숙제를 마쳐야겠다고 생각하는 책임감 있는 눈빛으로 생각했었다. 그러나, 엄마한테 얘기했다고 한다. 아내가 얘기해 주길, '아빠한테 얘기하면 기초부터 너무 길게 설명해줘. 시간이 없단 말이야.' 그때 알았다. 아... 숙제에 대한 책임감과 완성을 갈망하는 눈 빛이 아니라 빨리 끝내고 놀고 싶다는 갈망이었다는 것을.


아들이 축구를 좋아하고, 하기 싫은 학원들 뺑뺑이 돌리는 건 우리 가족 모두가 반대하는 바라. 그냥 학교 다녀오는 길에 수학학원을 보내 놨더니, 신나게 진도가 나가고 있다. 그런데 가끔 문제 푸는 것을 보고 있으면 이래도 되나 싶다. 

도형 기하학도 아닌데...

1. 문제 풀이 노트를 쓰지 않는다.

2. 식을 절차대로 세우지 않는다.

3. 풀이식과 답이 구분되지 않는다.

재밌는 건 마지막인데

4. 자기가 적은 숫자를 자기가 잘 못 읽어서 계산을 틀린다.


서론이 너무 길었다.

이번엔. 비례식이다.

세상에서 제일 간단하면서도 공식스러운 문제. 이걸 왜 물어볼까. 학원에서 배웠다면서.


"아빠, 5: 8  = 10:☐ 이거 어떻게 풀어요?" (정확하지는 않으나 대충 이런 분위기)

"아들아, 관련해서 넌 어떤 걸 배웠니?"

"... 외항, 내항...외항 내항을 뭘 곱하라고 했는데 잘 기억이 안 나요"

"?"


"아들아, 비례식을 계산할 때의 기본은 분수로 표현하는 거야. 외항과 내항의 곱이 같다라고 배웠을 것 같은데 이건 비례의 기본과 분수의 특성을 가지고 파생된 개념이야. 조금 더 빨리 그리고 쉽게 풀기 위해 만들어낸 보조 개념인거지. 기본적으로 분수가 비율의 개념이고 그 기본 개념을 알면 다른 빠른 방법들은 네가 얼마든지 추가로 더 고민해서 찾아낼 수 있어. 그게 수학의 재밌는 점이야"

"..."


"자 그럼 가장 쉬운 것 부부터 해볼까? 1:2 = 3:☐라고 할게. 여기 ☐에 뭐가 들어갈 것 같아?"

"6이요"

"좋아 아주 잘했어. 어떻게 6이라고 생각하게 됐어?"

"음... 1:2는 1에서 두 배니까, 3의 두 배는 6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 그거야! 자 그럼 분수로 표현해 볼까?"

"..."

"1:2라고 하는 건 1 대비 두 배인 거고. 분수로 표현하면 1/2로 표현이 돼. 사과 3개가 있는데 동생이 하나 먹고 네가 2개 먹었다고 하면 동생과 네가 먹은 사과의 비율은 1:2가 되는 거지. 그리고 네가 먹은 사과의 1/2를 동생이 먹은 거고, 너는 동생의 2배를 먹은 거야. 니 입장에서는 다음번에도 이렇게 두 배로 먹고 싶겠지? 그래서 다음번에 네가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 동생이 '나 2개 먹었어'라고 하면 너는 4개를 먹고 싶겠지. 그래서 1:2 = 2:4 가 되는 거야"

"그런데 분수로 표현한다는 게 이해가 잘 안돼요"

"비율은 항상 상대적인 정보를 표현하기 위한 거야. 네가 좋아하는 EPL의 토트넘이 도르트문트에 2:1로 역전승한 적 있잖아? 그때 토트넘은 도르트문트보다 2배 더 많은 골을 넣은 거고, 반대로 도르트문트는 토트넘의 반 밖에 못 넣은 거지 그래서 토트넘을 기준으로 하면 도르트문트는 반만 넣은 거고, 도르트문트를 기준으로 하면 토트넘은 두 배를 넣은 거야. 그래서 도르트문트 기준으로 '토트넘:도르트문트 = 2: 1 = 2/1', 혹은 토트넘 기준으로 '도르트문트:토트넘 = 1:2 = 1/2'가 되는 거야"


"아빠... 나 수학 그냥 아빠가 가르쳐주면 안돼요? 학원 안 가고?"

"아빠 일해야지. 기왕 시작한 학원이니... 전적으로 믿어야 한다..."


얼렁뚱땅 빠지긴 했지만, 왠지 아쉽다. 

왜 일까? 수학은 하나의 원리 혹은 정의를 알면 무한대로 많은 응용의 날개를 펼칠 수 있는 매우 효율적인 학문이다. 많은 응용을 배우지 않고 정말 기본 정의와 원리만 배워도 얼마든지 재밌게 응용할 수 있고 실생활에서 사례도 많이 찾을 수 있다. 왜 굳이 원리나 정의보다, 기억하기 어렵고 헷갈리는 '공식'들을 먼저 혹은 강조해서 가르치려 할까? 속도와 앞서기를 좋아하는 우리나라 국민 정서 때문일까? 아니면 가르칠게 많아야 돈을 버는 학원의 생리일까? 아니면... 이런 나의 모든 고민과 상관없이 그냥 내 아들이 기억을 못하는 것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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