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식적으로 돌아보는 한 해 (+2023년의 최애 영화들)
“(왕가위의 말을 빌려서) 우리 다시 시작하자.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을 때가 있다. 그리고 지금이 그때이다.” 11월 초 <해피 투게더>를 처음 봤을 때 <화양연화>나 <중경삼림>보다 이 작품을 더욱 고평가하는 일부의 시각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장국영의 그 한 마디는 알 수 없는 이유로 뇌리에 박혀 두 시간 남짓한 영화 전체의 감흥을 대리할 뿐이었다. 정성일 평론가의 평론집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를 여는 이 문구를 읽었던 것도 그즈음이었다. 12월의 마지막에 와서 다시 읽는 정성일은 한 문장이 채 끝나기를 기다리지도 못할 만큼 강렬하게 내 마음을 뒤흔든다. 그리고 나는 다시 시작하자는 파렴치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꺼내는 장국영에게 기꺼이 패배를 약속하는 양조위가 된다. 정성일과 장국영. 두 거친 사내들은 내 안에서 이른 겨울잠에 든 채, 내가 다시 그들을 깨우고야 마는 오늘까지 꼬박 두 달을 기다린 모양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나는 지난 9월 다음과 같은 문장을 남몰래 새긴 바 있다.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난 알지도 못한 채로 수도 없이 이 말을 적었지만 이제가 되어서야 어째서 그때 알지도 못한 채로 수도 없이 이 말을 적었어야만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참고로 이 사랑은 반년을 기다려야 했다. 정성일 선생님, 당신을 조금이라도 알기까지 두 달이 걸린 건 꽤 의미 있는 성취 아니겠습니까.
온실을 나가자 마음먹은 그대로 지난 1년을 살아왔다. 할 수 있었던 일이 아닌 한 일에 대한 이야기이다. 게을러 놓친 시간을 제외한다면, 나머지 타임라인은 온전히 내가 바라던 이야기들로만 채웠다. 겨울과 봄 내내 끌어안았던 애틋한 장면들과 문장들로 현기증 나는 여름을 무사히 넘겼다. 기자라는 만족스러운 목표를 세우고 후반전을 맞이했다. 가을의 대학로는 말하자면 사적인 고민들의 공적인 실험실이었다. 난연한 선율로 가득한 그곳이 나를 당당하게 또 부끄럽게 했다. 끝에는 과분한 성과도 거뒀다. 꿈에 그리던 지면에 부족하나마 글을 보태게 되었다. 정말 난 살면서 그렇게까지 순수하게 기뻐해본 적이 없었다. 들숨 날숨에 자괴감을 느끼며 적은 부끄러운 원고를 송고하는 일이 피를 토하듯 고통스러웠고 그만큼 행복했다. 이렇게 적으면 제법 기깔나는데도, 솔직히 참 보잘것없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기대했던 것 이상의 결실에도 나는 변함없이 부끄럽고 역시 더 많은 것을 바란다. 그러니까 나는 이제 다시 준비가 된 모양이다. 온실을 열고 나온 세상이 다시 하나의 온실 속에 불과함을, 그 문을 여는 수고로움을 다시 기쁘게 감당할 수 있음을.
아래에 올해 개봉작 중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영화들을 꼽아 보았다. 이 영화들에게 - 그리고 순위 밑바닥에 있는 미안한 영화들에게도 - 나는 어떤 동료의식을 느낀다. 올해 브런치에 남긴 스물아홉 편의 글들도 마찬가지다. 영화와 사랑에 빠진 후 처음 진지한 연애를 이어갔던 한 해의 장면들이 생생히 남아 있다. 지난 한 달간 처음으로 돈을 받고 글을 쓰며 느꼈던 끝 모를 부끄러움도, 그제 정성일 평론가의 통찰을 읽으며 빨개진 얼굴도 전부. 내 무모함과 오만함과 그 외의 모든 사악한 혐의가 떠올라 밤에는 잠도 쉽게 잘 수 없다. 어떤 의미에서는 지금 만나 너무 미안한 영화들이다. 그래도 이 빛나는 영화들과 아끼는 글들이 나의 서투른 물장구를 독려해 준 데에 깊이 감사한 마음뿐이다. 무엇보다 지난 1년간 묵묵히 나를 지켜봐 준 사람들 모두에게. 남의 일에 쉽게 첨언하지 않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안다. 특히 나같이 철없고 답 없는 인간을 대할 때는 더더욱. 사랑한다는 말을 더 더 가볍게 써야만 한다고 폼잡았으면서 정작 제대로 전하지 못한 것 같다. 전부 많이 고맙고 사랑해.
어째서 보영과 아휘가 다시 시작하기 위해 지구 반 바퀴를 돌아야만 했는지 이제야 조금 알겠다. 우리의 사랑이 고향의 토양에만 뿌리내려서는 아니 될 일이다. 그 뿌리는 온전히 우리 안에 자리 잡아야만 한다. 생경한 장소로 분갈이한 후 다시금 확인해 보는 거다. 당신은 홍콩에서도, 아르헨티나에서도 여전히 당신임을. 그렇게 몇 번이고 장소를 옮겨가면서. 어떤 배경을 두고서도 온전히 당신의 얼굴을 기억해 낼 수 있을 때까지. 그런 의미에서 지금 꼽는 영화들은 내게 박효신과 잔나비와도 같은 존재들일지 모른다. 삶을 꾸렸던 동네마다 남겨진, 아릿하고 풋풋한 냄새를 풍기는 골목과도 같은 존재들. 음악을 대하던 매 순간의 고민들이 지금 나를 기다리는 영화들에게 그대로 펼쳐진다. 그리고 이 새로운 동네에서도 나는 거듭 마음을 다잡아야만 한다. 1년간 마음 담아 적었던 모든 영화의 고민들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걸 느낀다. 영화라는 예술에 대해 알지 못하는 수많은 것들에 보태어, 나는 아직 영화를 향한 내 마음조차 온전히 알지 못한다. 아, 정말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이 절망감만큼 설레는 것이 또 없다. 그러니까 우리 다시 시작하자. 당신들을 향한 내 얕고 천박한 몸짓이, 이 깊고 고결한 사랑을 온전히 담을 수 있을 때까지.
1. 조현철, <너와 나>
- 뿌옇게 번지는 상실 앞에 선 우리의 미숙한 사랑. (★★★★☆)
2. 엄태화, <콘크리트 유토피아>
- 운칠기삼으로 공구리친 순살황궁 (★★★★)
3. 이정홍, <괴인>
- 시종일관 삐딱하고 불안정한 시선 속 어느새 마주보는 외로움 (★★★☆)
4. 이지은, <비밀의 언덕>
- 열린 성장판의 세상과 눈높이를 맞추는 애틋한 기쁨 (★★★☆)
5. 김성수, <서울의 봄>
- 섣불리 첨언하지 않고도 악의 표정을 잡아내는 정교한 극화의 흡인력 (★★★☆)
6. 정주리, <다음 소희>
- 슬퍼할 시간도 빼앗긴 채 다시금 내몰린 젊음들 (★★★★)
7. 유재선, <잠>
- 급커브를 도는 장르에도 안정적인 핸들링 (★★★☆)
8. 김한민, <노량: 죽음의 바다>
- 감독의 뚝심이 빚어낸 이상적인 유종의 미 (★★★☆)
9. 김지운, <거미집>
- 영화를 사랑한다는 고백에는 언제나 마음이 약해진다. (★★★)
10. 남대중, <30일>
- 집중과 변주로 버무린 스페샬 비빔밥, 그런데 정소민과 강하늘이라는 돌솥에 담긴 (★★★)
1. 데이미언 셔젤, <바빌론>
- 예술, 혹은 분장한 광기에 대해. (★★★★☆)
2. 스티븐 스필버그, <파벨만스>
- 영화가 결코 삶을 담을 수 없지만, 삶은 결국 영화로 남기에. (★★★★☆)
3. 고레에다 히로카즈, <괴물>
- 시점을 옮겨가며 애타게 괴물을 찾던 우리가, 그 결말에 이르러서야 느끼는 부끄러움이란. (★★★★)
4. 크리스토퍼 놀란, <오펜하이머>
- 용의선상에 내몰린 자들에 대한 최선의 변호, 끝없이 침전하는 프로메테우스 (★★★★☆)
5. 크리스티안 페촐트, <어파이어>
- 스스로를 태우는 거울 너머 불구경 (★★★★)
6. 웨스 앤더슨, <애스터로이드 시티>
- 어른들에게 동화가 필요한 이유에 대해. 자, 다시 잠에 들 시간. (★★★★)
7. 사임 사디크, <조이랜드>
- 좁고 갑갑한 세상 속에서 몸부림치다 결국 서로를 할퀴고 마는 자유들 (★★★★)
8. 샬롯 웰스, <애프터썬>
- 그때의 당신이 나에게 준 것들, 이제서야 받을 수 있는 마음들 (★★★★)
9. 피터 손, <엘리멘탈>
- 네가 꽃을 피운 거야, 저 깊은 물 속에서도 (★★★★)
10. 아키 카우리스마키, <사랑은 낙엽을 타고>
- 세계와 현실의 시차 사이에서 방치된 자들의 마주침 (★★★☆)
표지 이미지: 최유리 싱글 <유영> 커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