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멋대로 오독하는 채만식
바로셈을 아는가. 요즘도 많이들 시키는지는 모르겠지만, 15여 년 전에는 구몬, 씽크빅, 장원한자 등등 방문 학습지 교육이 대세였다. 여느 아이들처럼 나도 무난히 지루한 학습지 서너 개를 구독했지만, 그중 바로셈이란 놈은 악랄했다. 연산 속도와 암산 능력을 기르는 게 목적인 것 같은데, 페이지 가득 나열된 온갖 사칙연산을 무작정 풀기만 하는 게 전부다. 계산, 계산, 또 계산. 유일한 재산인 전산적 사고력을 팔며 끝없이 스프린트 개발론의 쳇바퀴를 도는 포스트모던 프롤레타리아 - 보통 이들을 프로그래머라고 부르더라 - 의 슬픔을 과체중의 초등학교 4학년생이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그 아이가 지금 이렇게나 훌륭한 공대생이 되어, 이름 앞에 인공지능이니 딥러닝 따위를 붙이고 보는 최신유행을 역시나 피하지 못한 ‘AI 바로셈’을 구글링하고 있자니, 정말 인생이 소설이다.
바로셈은 너무도, 너무도 지루했다. 책상 옆 선반에는 한국 근현대문학 전집이 있었다. 수학 학습지를 푸는 시간은 자연스레 독서 시간으로 변해갔다. 연필을 오른손 약지에 살짝 끼워놓은 채로 책상 밑에 반쯤 집어넣은 책을 읽다가, 엄마가 들어오시면 후다닥 책을 숨기고 삼백오십육 곱하기 백육십구를 외쳤다. 수학과는 다르게 삶에 있어 부등식은 양이 아닌 질의 문제일 때가 많은데, 당연히 소설이 사칙연산보다야 재밌었고, 그 생활을 몇 년만 더 했다면 내 저울이 아예 밥 굶는 전공으로 기울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내 이중생활을 엄마가 알아채시고는 바로 학습지를 그만두게 하셨으니 다행이지.
그때의 일탈 덕분에 나는 한국문학을 꽤나 사랑하는 학생이 되었고, 당시 유독 좋아했던 단편소설들은 내가 뿌리내린 흙이 되었다. <오발탄>, <유예>, <날개>… 그중 최애가 채만식의 <레디메이드 인생>이었다. 거창한 이유 없이, 제목도 멋있고, 시니컬한 분위기도 과체중 초4 마음에 들었나 보다. 어떤 무기력한 인텔리의 처지에 대해 심각하게 공감한 기억은 없다. 이제 와서 뉴턴을 세 번 부정하더라도 그때는 물로켓 대회와 우주소년단 활동에 진심이었던 과학소년이었고, 어른이 되어서 훌륭한 과학자가 되면 돈도 벌고 살도 빼고 멋진 연애도 할 거라 생각했으니까. 참고로 그중 현재까지 이루어낸 건 살 빠진 것밖에 없다.
돌아보면 어릴 적 <레디메이드 인생>을 좋아했던 이유는 나는 그렇게 되지 않을 거라는 순수한 자신감이 만들어낸, 마치 동물원을 구경할 때의 신기함과 비슷한 게 아니었을까 싶다. 그 시절을 떠올리는 스물다섯의 정상체중 대학원생은 이제 레디메이드의 사전적 정의가 되어 잡코리아와 로켓펀치를 뒤적거리고 있다. 복선을 이렇게나 세련되게 활용하는 소설도 드물다. 소설 같은 삶을 원하긴 했지만 그게 굳이 근대소설일 필요는 없었다.
지금 내가 채만식을 다시 읽는 일은 그래서 용기가 필요한 작업이다. 세 자릿수 곱셈에 힘겨워하던 어릴 적 내가, 일차 선형 미분방정식 풀이 정도는 자다가도 암산하는 (당연히 못 한다) 지금의 나에게 손가락질을 하는 일이다. 현재의 나를 다이소 조명만큼이나 무정한 거울에 비춰보는 일이며, 과거의 내가 내미는 미래에 대한 채권을 모조리 불태워버리는 일이다.
그의 소설들에서 우리는 1930년대 잉여 지식인의 여러 초상을 마주친다. 식민지배 초기의 애국적 교육열의 결과로 신식 교육을 받은 지식인 인력은 늘어만 가는데, 일제의 전쟁 확대와 문화 말살 정책에 문단과 지면은 비좁아지고, 얼마 없는 일자리는 내지인과 일제에 협력하는 인사에게 돌아간다. 뜻은 높은데 펼칠 곳은 없고, 그렇다고 이제 와 육체 노동자도 될 수 없는 지식인들은 지배층과 무산계급 둘 다에게 손가락질을 받는 무기력한 소외계층으로 전락한다. 감사하게도 몇몇 용기 있는 이들은 시대의 억압에 적극적으로 저항하는 길을 택했지만, 대다수는 현실에 순응하는 친일 노선을 타거나 비관론의 무기력함 속으로 침잠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지금 조선 농촌에서는 문맹 퇴치니 생활 개선이니 합네 하고 손끝이 하-얀 대학이나 전문학교 졸업생들이 몰켜오는 것을 그다지 반겨하기는 커녕 머릿살을 앓을 것입니다...... (중략) 그리고 조선의 지식청년들이 모두 그런 인도주의자가 되어집니까?"
"되면 되지 안 될 건 무어야?"
"그건 인도주의란 그것이 한개 공상이니까 그렇겠지요."
"허허...... 그러면 P군은 XX주의잔가?"
"되다가 찌부러진 찌스레깁니다. 철저한 XX주의자라면 이렇게 선생님한테 와서 취직 운동도 아니합니다."
- 채만식, <레디메이드 인생>
한 지식인은 교육과 지식의 효용성에 대하여 근본적인 의문을 품게 된다. 그들이 배운 것이 사회주의 사상이든 수학이든 무엇이든 간에, "배우면 상놈도 양반이 된다"(레디메이드 인생)던 그놈의 지식은 도리어 자기 한 몸도 제대로 건사할 수 없는, 상놈보다 나약한 존재로 만들었다. 남들과 다르게 뛰어난 것 하나 없이 도매급으로 생산되고 한꺼번에 길거리 좌판으로 던져지는, 때깔만 좋은 기성품이다. 자식만은 자신과 같은 처지로 만들지 않겠다 다짐하는 P는 어린 아들을 공장으로 보낸다. 자신을 레디메이드 인생으로 길들인 시대에 대한 원망과 그 길을 착실히 걸어온 자신에 대한 자괴감을 자손이나마 비-레디메이드화하며 해소하는, 소극적이고 회피적인 반항으로 볼 수 있겠다. 그럼에도 결과적으로는 자신은 매일 술 먹는 데에나 돈을 쓰며 자식을 값싼 노동력으로 팔아먹는다는 점에서 그의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하긴 힘들다는 생각도 든다.
다른 지식인은 자신의 신념을 관철하기 위해 도리어 세상의 논리를 완전히 등진다. 사회주의 활동을 하다 투옥된 후 아무 생산적인 활동도 하지 않고 누워있거나, 선전의 나팔수로 전락해 가는 신문사를 때려치우고 마찬가지로 어떤 일도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농성을 하기는 하는데, "더위가 나를 볶으니까, 누가 못 견디나 보자구 맞겨누는 싸움"(소망)을 건다며 바람도 통하지 않는 한여름의 건넌방에 버티고 앉아있거나, 내지인과 동화되는 삶을 꿈꾸는 일꾼에게 "아무짝에도 못쓰게 길이 들었다"(치숙)고 훈계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소극적 저항의 방식은 일반 대중에게는 "손톱만치도 쓸모는 없고 남한데 사폐만 끼치고, 세상에 해독만 끼칠 사람"(치숙)으로 비칠 뿐이다. 일제에 경도된 서술자를 옹호하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그렇다고 저 초라한 지식인의 등이 그다지 품위 있게 느껴지지도 않는다.
또 어떤 지식인은 자신의 마지막 재산을 담보로 품위를 지킨다. 신념과 대비되는 사상을 택할 것을 종용하는 자본-권력과 만삭의 아내를 지켜야 하는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던 종택은 과감하게 "하릴없이 성난 짐승처럼 제 몸뚱이를 기관차에 갖다가 똑바로 들이박아 산산 박살을"(패배자의 무덤) 만들어버린다. 앞서 본 일탈보다야 웅장한 저항이겠지만서도, 남겨진 처자식을 생각하면 이것 또한 비겁하기 짝이 없다. 자신의 유서에서 그대의 청춘을 재건하라 타일렀던 그의 아내가 반대로 자식의 성장을, "맹목적인 모성애"를 삶의 보람으로 삼는 모습이 자뭇 숭고하게 비치어지는 것은 가장의 결사를 참으로 소극적인 저항으로 보이게 만든다.
종택은 일찍이 바람 거칠지 않을 절기에 조그마한 돛을 만들어 달고 바다로 나왔다. 했다가 그는 힘에 부치는 강풍을 만났다.
돛은 여지없이 찢어졌다. 그리고 배는 낯선 섬에 표착이 되었다. 종택은 지금에, 참혹한 파선의 형태를 바라보면서 해안을 두루 배회하고 있었다.
다시금 든든한 돛을 만들어 달고 강풍이 불어치는 바다로 달릴 의욕은 불타오르나 그에게는 그러한 돛을 만들 힘-체력이 없었다. 천지에 바다와 맞붙어 단판씨름을 않고는 살 수가 없는 판박이 뱃사람이 아니라 거기 어디 되는 대로 주저앉아도 넉넉한 팔자, 이것이 그의 타고난 불리한 약점이었던 것이다.
- 채만식, <패배자의 무덤>
저항의 스펙트럼을 본다. 이쪽 끝엔 정신승리와 무기력함에 사로잡혀 하릴없이 시간과 인생만 축내는 레디메이드가 있고, 중간엔 뚜렷한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바보 같은 발버둥을 치는 치숙이 있으며, 저 끝엔 이도 저도 못하다 아예 죽어버리는 패배자가 있다. 꿈을 꾸기엔 나약하고, 현실을 살기엔 허약한 이들이 하나같이 불쌍하고 한심하다. 소설에 일정 부분 자아를 투영했을 채만식 본인조차도 이들을 딱히 미화할 눈치는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나는 이들의 나약함이 밉지 않다. 오히려 이들의 나약함에 마음 쓰일 때가 많다.
모두가 위인이 될 수는 없다. 이들은 변화를 만들기에는 분명 나약했지만, 그럼에도 레디메이드의 운명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시대의 풍파 앞에서 인텔리가 느끼는 무기력함은 오히려 이들이 눈 크게 뜨고 시대의 부조리를 온몸으로 맞아낸다는 의미다. 압류 딱지 붙은 가난한 몸 아래 웅크린 채 절대 내줄 수 없는 마지막 본질을 절박하게 부여잡는 모습에, 블랙베리 요거트를 씹으며 이 글을 쓰는 나는 불편해진다. 삶에 있어 부등식은 양이 아닌 질의 문제라지만, 벌거벗은 사람과 조악한 누더기나마 덮은 사람을 저울질하는 문제는 명확하다. 본령이 없는 자아는 상실감조차 느끼지 못한다.
16년간의 교육을 거쳐 이제 유례없는 취업난 속으로 내던져질 예정인 레디메이드 공대생에 대해, 그의 나약한 투쟁의 역사에 대해 떠올려본다. 음악하고 싶다고 갑자기 울어재껴서 수학학원 원장님을 당황하게 한 적도 있었고, 충동적으로 입학과 동시에 휴학계를 내버린 적도 있었으며, 당장 남들은 자소서 쓰느라 바쁜 지금 이딴 걸 쓰고 있는 것도 그렇다. 그러면서도 철마다 구직활동을 하는 건 철저한 XX주의자가 못 되어서 그렇고, 혹시 휴학 취소 안 되냐고 입학처에 연락해본 건 그 여름 힘에 부치는 강풍을 만나서 그렇고, 차마 본격적으로 학점 탱킹을 못 하는 건 바로셈 암산왕이 아직 양의 부등식을 풀고 있어 그런 것이겠다. 꿈보다 해몽이라고, 이제 와서 평범한 삶의 행적을 신화화하려는 건 아니지만, 잃어버린 본질은 언제나 지나왔던 갈림길들에서 후회로 피어있는 법이니.
"그리구우 우리 집에 오래두우룩, 오래두룩 계세요, 네?"
"......"
나는 속으로 이건 정말 큰일이 나질 않았더냐고, 뜨윽 걱정스러워 술을 마시는 척 하면서 짐짓 대답을 하지 않았다. 약간의 취기를 띈 얼굴로, 깨웃하고 바로 들여다보면서 오래두룩 오래두룩 있으란 말을 하던 그녀의 눈, 그 눈. (중략)
그러나 정 다급하거든 임시로 당분간 여관이라도 잡아두면 그만이었다. 또 그렇게라도 해서 한시바삐 이 집을 뜨기는 뜨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이 집을 뜨는 그 마당이 차마 박절하겠으니 그게 난관이었다.
십 년 전 그날 밤, xx온천에서 트렁크 하나를 집어 들고 도망을 빼던 그때와도 달랐다.
떳떳이 이유가 있어야 할 것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떳떳한 이유를 백이나 갖다가 대더라도 이유는 되질 않을 것이었다.
- 채만식, <해후>
이유에 가격을 매기고 떳떳함을 대출하는 대 흥정의 시대, 나의 도망을 조금이나마 사랑하려면 저들의 나약함을 부정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다지 떳떳하지 못한 이유들을 들고 세상으로부터 달아나는 그들의 자기파괴적 야행이 나는 너무나도 탐난다. 당장의 월세보다 기생의 몸값 흥정에 연민하는 모지리의 기개도, 옥살이에도 꺾이지 않는 폐병환자 막덕의 믿음도, "불초하여 악행할지언정 불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육체를 처분"하는 프로메테우스의 후손의 장단도 갖고 싶다.
다시 저항의 스펙트럼을 본다. 빨강-초록-보라, 저들 사이에서 지금 나는 무슨 색일까. 빛의 스펙트럼에는 검정이 없다. 빛이 없는 곳에 검정이 있다. 검정 정장 차려입은 증명사진이 이력서 맨 상단에서 어색하게 웃는 것처럼.
덧붙임 - 채만식의 1930년대 후반 단편소설 속 지식인의 묘사 양상을 검토하며, 1940년 이후 작가의 친일 행적에 대한 고려는 의도적으로 배제했다. 첫째는 1940년 이전 그의 사상과 문학은 변절 이후의 그것과 무관할 것이라는 순진한 믿음에서고, 둘째는 그의 변절을 비판할 자격이 지금의 내게 있지 않다는 판단에서다.
인용 출처: 레디메이드 인생: 채만식 대표작품집 2 중 <레디메이드 인생>, <치숙>, <소망>, <패배자의 무덤>, <해후> (채만식 저, 애플북스)
사진 출처: 웅진씽크빅, 독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