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혐오, 호모포비아는 내 곁에
0. 성인이 되었다는 것은 내 몸에 대한 주도권을 획득했다는 일이다. 그 말은 '나'에게 마음대로 옷을 사서 입힐 수 있다는 뜻이다. 한창 옷이라는 시각적 즐거움에 푹 빠진 나는 대번에 의류 산업 안의 성차별적 요소를 파악했다. 수요가 없다는 변명으로 치부되기에는 너무나도 명백했다. 옷가게에 가서 남성복과 여성복(으로 나뉘어 있는 것도 물론이거니와)의 색깔, 재질, 크기, 가격만 보아도 정말로 '성'이 다르기 때문에 이렇게나 다른 옷을 파는 걸까? 생각이 들었다.
1. 그렇지만 그런 심대한 고민은 학습해온 '남성'의 정체성 앞에서 쉽게 무너졌고 어느새 '남성복' 안에서만 선택지를 좁히고 있는 나의 모습을 발견했다. 원색을 좋아하는 나는 옷을 고르는 데 어려움이 있었는데, 남성복은 주로 무채색 계열로 나오기 때문이었다. 이것에 대해서 수없이 투덜거리고 다녔는데, 그때마다 들려온 이야기는 이랬다. "원래 남자들은 옷에 관심이 없어", "남자들은 튀는 옷을 싫어해", "그 옷을 바라보는 여성들이 좋아하지 않아(??)" 그랬다. 나는 다양한 색, 다양한 형태, 다양한 패턴의 옷을 사고 싶었지만 그런 남성복 브랜드는 많지 않았고 커다란 내 신체에 맞는 옷을 찾기도 힘들었다. 기여코 그런 옷을 발견하면 그 앞에 붙은 가격표는 학생인 내 지갑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컸다. 그래서 적당한 타협을 찾은 지점은 H&M 브랜드. 외국 브랜드라 그런지 그래도 조금의 자유로움이 느껴졌다. (그래 봤자 여성복과 남성복의 갭은 너무나 크다)
2. 매일 불평하면서도 나는 왜 내가 치마를 사 입지 못하는지 설명하지 못했다. 화장을 하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 그렇지만 작년의 강남역 사건. 그 뒤로의 수많은 타인의 경험과 감정. 페미니즘과의 만남은 그 질문의 해답을 주었다. 나는 견고한 맨박스 안에 있었다. 물론 계속 '남성'이라는 권력에 기대어 여성혐오에 일조해 왔음은 물론이다. '기계적 중립'을 외치며 왜 여성이 외모에 대한 압박에서 자유롭지 못한 지 이해하지 못했다. 분명히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었다. 멍청했다.
3. 지난 6월은 변화의 기점이었다. 입으로는 누구나 평등을 외칠 수 있다. 그렇지만 그 생각을 행동으로 실천하기는 너무나도 어려웠다. 우연한 기회로 '화:남(화장하는 남자)'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고 화장을 배우고 화장을 하고 외출을 하기 시작한 나에게 더 이상 '치마'를 입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나에게 내가 입고 싶은 옷을 골라 입는 데 이제 '성별'은 없었다.라고 생각했지만 나를 괴롭힌 또 다른 시선은 바로 호모포비아였다. 갈등하던 나는 우선 '긴치마'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내가 입을 옷을 고르는 데, 이렇게 수많은 갈등이 포함되다니.
4. 나는 아름다운 것이 좋았다. 내가 아름다워지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외출을 하게 된 어느 날. 나는 드디어 꿈에 그리던 치마와 보다 아름답게 화장한 모습으로 집 밖을 나설 수 있었다. 참, 단발로 기른 머리도 함께. 한껏 들뜬 나를 마주친 이들의 시선이 즐거웠다. 전에도 튀는 색상의 옷, 한껏 염색한 머리카락을 사랑했던 터라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를 향한 시선의 이전의 특이함을 바라보는 시선과는 명백히 달랐다. 나를 바라본 이들의 표정은 급속도로 어두워진다. 기다란 몸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은 뒤 다시 나를 뚫어져라 쳐다본다.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충분했다. 내가 그들의 시선에서 느낀 것은 혐오, 놀라움 그리고 공포였다. 나는 합리화를 시작했다. 나는 그들의 관념에 던지는 질문 그 자체이고 내가 그들의 시선을 신경 쓸 것은 무엇인가.
5. 엄마와 전주에 여행을 다녀왔다. 패션 쪽으로 전공한 엄마는 옷에 대해 어릴 때부터 유난한 자신감을 가지고 계셨다. 직접 만들고 가르치기까지 하셨으니 당연하다. 그럼에도 나는 '남성복'에 갇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엄마와의 여행에 '치마'는 새로운 도전이라고 할 수 있었다. 역시 엄마는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렇지만 일관된 나의 기이한 머리색과 옷들을 겪어온 터라 금세 적응했다. 화장도 물론이다. 그리 길게 설명하지 않았다. 내가 입고 싶은 걸 입는 데 설명이 필요한가? 그렇지만 그 평화는 얼마 가지 못했다. 이미 몇 번의 경험으로 익숙해진 혐오의 시선을 엄마도 쉽게 알아챘다. 한 번은 신기해하는 행인들께 '엄마가 허락한 치마'를 입은 아들이 되기도 했다. 어쨌든 엄마는 나에게 바지를 입히고 싶어 했다. 그 반응도 궁금했던 터라 다음 날은 준비한 바지를 입었다. 바지는 조금 편하긴 했지만 그리 예쁘진 않았다.
6. 그렇지만 타인의 시선은 나를 옥죄었다. 한껏 부푼 나의 자의식도 혐오, 공포, 차별의 시선은 막지 못했다. 커다란 키와 튼튼한 몸은 즉각적인 폭력에는 효과적일지는 몰라도 시선에는 속수무책이었다. 나를 바라보는 시선을 보고 나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두 번 세 번 쳐다보는 사람은 물론이고 머리에서 발끝까지 쳐다보고 정말로 싫다는 표정을 짓고 지나가는 사람, 뚫어지게 시선을 떼지 못하는 사람 등등... 이런. 그들은 왜 그런 표정을 지을까? 치마라는 '여성성'을 '남성'이 착용했을 때의 인지부조화? 혹은 '동성애자일 것이다?' 혹은 치마 밑의 '다리털'이 더럽다고 생각하여서? 이런 두려움이 온몸으로 퍼져나가는 기분은 썩 좋지 않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아직도 성별의 기울어진 비탈을 인정하지 못한다면 다시 한번 생각해 보시길. 많은 이들이 여성성을 혐오하고 그것을 입은 남성의 존재를 부정한다. 그리고 이런 여성혐오는 슬프게도 성별을 가리지 않는다.
7. 걸으면서 흥미롭게도 내가 힘을 받는 때를 발견했다. 그것은 지나가던 외국인과 시선을 마주칠 때다. 그분들은 나와 시선을 마주치자 싱긋 웃어 주었다. 나도 같이 웃어준다. 기억에 있는 것만 두세 번이 넘으니 더 많을 거다. 물론 나와 함께 대화하고 성별, 성적 지향에 대해서 어떠한 차별이 없는 친구들에게도 마찬가지다. 감사합니다.
8. 이제 나의 옷장은 다양해졌다. 기분과 상황에 맞추어서 실루엣을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 아직 원피스는 없지만 적당한 사이즈가 있다면 사러 나갈 예정이다. 그 새 치마가 늘어서 세 개나 있다. 셋 다 길이와 종류가 달라서 골라 입는 즐거움이 있다. 행복하다.
9. 이제 드디어 치마 자체의 착용 후기를 이야기할 수 있다. 요약하자면 치마는 불편하다. 치마를 입으면 그전까지 나에게 당연했던 수많은 동작에서 치마가 벗겨지거나 날릴 위험에 처하고 이것은 속바지의 유무와 관계없이 일종의 두려움을 안겨준다. 발걸음은 종종걸음이 되고 계단은 두 계단 씩 오를 수 없다. 펄쩍펄쩍 뛸 수도 없고 함부로 다리를 벌리거나 뻗을 수도 없다. 치마를 입기만 해도 행동이 제한된다. 다리 털을 밀어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 중이다. 이런 경험은 생에 처음으로 겪는 경험이다. 당연하게도 나를 보는 타인의 시선에 더 민감해질 수밖에 없게 된다.
10. 제일 불편한 것은 화장실이다. 치마를 입고는 당연히 기존의 남성 소변기를 이용할 수 없고 앉아서 소변을 해결해야 한다. 긴치마는 계속 화장식 바닥을 쓸고 나는 스트레스를 받았다. 내리고 올릴 때의 불편함은 물론 시간이 배로 드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11. 여러 불편함이 있지만 의외로 치마는 편하다. 바지처럼 살을 꽉 조이지 않고, 바람이 통한다. 바지와는 몸의 실루엣이 다르다. 나에겐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 치마의 해방감은 말로 표현하기가 힘들다. 나는 더 많은 치마, 더 다양한 옷을 살 것이고 어떤 차별도 날 막을 순 없을 거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남성중심주의, 기울어진 운동장은 의외로 증명하기 쉽다. 와닿지 않는 남성이라면 부디 치마를 입고 일상생활을 해 보시길. 지금 당장 어떠한 요소로도 차별받지 않는 세상을 꿈꾸며. 남성들이여 치마를 입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