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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타 Sep 19. 2017

박근핵닷컴 해커톤 후기

17.08.26-27

지난 겨울 촛불은 쉼없이 광장을 밝혔다. 내가 느낀 광장은, 그 어느 때보다 수많은 목소리들과 개인들이 쏟아져나온 살아있는 경험들의 타오름이었다. 이 불꽃을 촉발한 대통령 탄핵이라는 세계적으로도 유래없는 사건의 근원에는 쉼없이 발전한 IT기술이 요소요소에 기여했다. 애초에 JTBC에서 발견한 것 자체가 '태블릿 PC' 였고 이 기계는 사람들이 알게 된 지 10년이 겨우 되었을 기계다. 수없는 뉴스, 기존의 미디어의 프레임으로 막을 수 없는 '팩트'들이 쏟아져나왔다. 그리고 자신의 주권을 국가에 잠시 위임했던 시민들은 그것이 개인의 소유가 되어서 시민들을 겨누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자 모두 분노했다.

2016년 11월 12일

충격적인 사실은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의 마음들을 표현할 수 있는, 또 실제 그 의견을 정치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수단이 너무나도 없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라고 뽑아놓은 국회의원은 마치 벼슬이라도 얻은 양 군림하려 들고, 국민의 의견을 내세우며 사익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득시글했다. 그 사이에 '박근핵닷컴' 이라는 서비스가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에 올랐고, 아주 흥미롭게도 이 서비스에서는 국회의원에게 직접 의견을 보낼 수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 지역구에, 내가 지지한 정당의 국회의원에 내가 할 말 쉽게 얼마든지 보낼 수 있는게 당연한데, 지금 우리가 세금 내고 살고 있는 국가시스템은 그렇게 되어먹지 않았고 분노한 개인들은 자신의 역량으로 서비스를 만들었다. 그것이 '박근핵닷컴'이었고 촛불의 크기는 물론 기존과 다른 이런 직접적인 반응에 놀란 국회의원들은 탄핵 표결에 찬성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박근핵닷컴을 만드신 분이 해커톤을 연다고 한다는 소식을 페이스북에서 발견하고, 고민도 없이 신청했다. 1년이 다 되어 가는데, 대통령 하나 바뀌었을 뿐이지 내가 느끼기엔 내가 정치에 어떤 영향력을 끼칠 수 있을지 당최 의문이었기 때문이다. 그보다도, 최근에 이어지는 일련의 재판 결과들을 보면서 또다시 충격을 받았다. 김기춘, 조윤선, 이재용 등등 국정농단과 헌법을 파괴한 박근혜 정부의 공범들이 줄줄이 적당히 낮은 형을 받는 것을 보면서 더 분노했다. 마침 해커톤 전날에는 삼성전자 부회장 이재용이 1심에서 5년형을 선고받았다. 부들부들. 이거 도무지 참을 수가 없잖아. 그리고 당일이 되어 스타트업들이 모여있으면서 은행들의 사회적 책임이 담긴 이상한 장소인 디캠프로 향했다.

해커톤 전에 여러 아이디어들이 올라왔었는데, 주로 법과 개인 사이의 정보의 비대칭을 국회API 등을 통해서 해결하려는 아이디어들이었다. 나는 재미가 없었고 지난 겨울부터 촛불을 계속 들고 선거판도 쭉 지켜본 마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다.


그래서 당일날 가서 앉아 있었는데, 내 앞의 팀들의 아이디어 중에서는 도저히 내가 1박 2일동안 만들고 싶은 아이디어가 없었고 마이크를 달라구 해서 머릿속을 지나는 아이디어들을 막 던졌다. 1번은 시위를 많이 나가면서 느꼈던 시위 현장에서의 정보의 불균형을 실시간으로 해소하는 서비스, 2번은 여성혐오 대상처럼 혐오발언 아카이빙하는 서비스. 3번은 이재용의 재판에 분노해서 국민들이 모두 재판할 수 있게 하는 서비스. 재판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내가 직접 형을 선고해서 친구들에게 공유할 수 있는 서비스다. 나는 5년형이 말이 안된다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무척이나 궁금해졌다. 주변에서도 이런 말을 자주 들었고 이걸 잘 모아볼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렇게 막 투덜투덜 이야기했더니, 팀원이 생겼고 여럿이서 모여서 이야기하다가 팀이 얍! 결성되었다. 다른 팀은 어땠는지도 모르겠지만 우리 팀은 아이디어를 어떻게 그려볼까 저녁 먹을 때까지 수다를 떨었다. 저녁은 어쩜 해커톤답게 피자와 맥주였다. 맥주는 맛있었다. 저녁을 먹고 본격적으로 코딩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최근에 배운 스킬인 VueJS를 활용하기로 했다. 흥미롭게도 마침 팀에 딱 서버 개발자 분이 계셨다.

새벽 3시쯤 되었을까, 모든 팀이 눈에 불을 켜고 무언가 개발하고 있을 때, 예고받지 않은 치킨이 잔뜩 배달되었다. 세상에나. 새벽이라 몇 조각 먹지도 않았는데 배가 불렀다. 이사람들, 해커톤이 아니고 참가자들 사육할 생각인가. 끝도 없이 먹을 걸 준다.

이것은 디캠프의 아침. 세상에 아침 7시가 되었는데도 자는 팀이 한 팀도 없는 걸 보고 충격을 받았다. 전날 설렘에 거의 자지 못한 나는 잠시 구석에 누워서 50분정도 잠들었다. 그 사이 산책을 다녀오신 팀원분들이 날 깨워주셨다. 그래 !! 마무리해야지 !!

대망의 발표. 사실 완성도가 의도한 만큼 나오지 않아서 (프론트는 라이브로 서버에 올리지도 못함) 걱정했고 다른 팀들의 발표를 보았는데 완성도와 아이디어들이 어마어마해서 이거 그냥 인기상이라도 노려야겠다 생각했는데... 웬일. 2등상을 수상했다ㅋㅋㅋ 나의 분노에 심사위원분들이 다들 공감한 탓일까. 사실 신청할 때 상금은 아예 보지도 않았고 평일엔 회사 일에 바빠서 아이디어를 기획해 갈까 하던 것도 미뤄왔던 해커톤인데 이런 일이. 싱기!!


끝나고도 추진력을 잃지 않은 우리 팀은, 한 발짝 한 발짝 서비스를 수정해서 도메인을 사고 서버에 올려서 작동하게 만들어냈다. 우리 팀의 서비스는 http://inmin.me에서 확인할 수 있다. 박근핵닷컴 https://parkgeunhack.com/ 에서 다른 서비스들도 확인할 수 있다. 나와 같이 분노하고 또 행동하려는 다른 사람들을 만나서 너무 위안이 되었고 또 이것을 실제로 서비스로 구현해낼 수 있는 팀원이 있다는 사실에 너무나도 감사하다. 작년의 박근혜 게이트를 마주한 내가 우왕좌왕했다면, 이제 나는 내 감정을 어느 정도는 이해하고 또 이것을 어떻게 풀어내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는 게 발전이라면 발전. 지금도 기능과 컨텐츠가 미흡한데, 망하지 않고 계속해서 사람들의 의견을 수렴할 수 있는 서비스가 되면 좋겠다. 아 그 전까지 내 지갑도 떨어지지 않고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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