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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타 Oct 07. 2017

전태일 평전

조영래 지음 / 돌베개

처음 이 책을 접한 것은 광화문 교보문고점에서 열린 "밤새 책 읽는 행사"에서 였다. 그 때 그 분의 말씀이 마음 속에 콕 박혀 있다가 중고 서점을 거닐던 내 눈에 걸렸고 고민하지 않고 집어들었다. 그 때까지만 해도 이것이 얼마나 무거운 책인지 모르고 가볍게 집으로 들고 왔더랬다.


역사 역사 하는데 내가 역사를 배워 온 방식은 그저 암기 뿐이라서 나에게 역사는 재미없는 과목이다. 오히려 성인이 되어서 읽은 곰브리치 세계사 같은 책이 훨씬 재미있었다. 그 책은 현재의 각각의 유럽이 지닌 관성에 대해서 약간이나마 짐작할 수 있게 재미있게 쓰여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역사를 '무조건 알아야 한다'와 같은 생각을 경계하는 편이다. 그렇지만 전태일 평전은 그렇지 않다. 제발 모두가 읽어주었으면 좋겠다.


흔히 옛날엔 못 먹고 못 입었다라고 이야기한다. 그것이 얼마나 큰 고통인지 90년대에 태어난 나는 이해하지 못한다. 내게 '가난'이란 항상 어느 정도 최소한이 있었다. 어딜 가서 알바를 하더라도 굶어 죽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 그런 무언의 안도감이 나를 지탱한다. 하지만 전태일이 살았던 80년대는 내가 상상하는 그 이하였다. 지금의 어른들이 느끼는 '가난 혐오'가 어디서 왔는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그저 지나가는 기사로만 몇 번 접했다. 그 당시의 노동 환경이 어떠했는지, 지금이 편한 것이라니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렇지만 당시의 이야기는 나에게는 그저 지나간 이야기 남의 이야기일 뿐이었다. 이 책을 읽고서는 남의 일이 아니게 되었다. 우리 모두의 이야기였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지금의 노동현실을 본다. 지금도 사람들이 죽는다. 지하철을 수리하다가 치여서 죽고, 폭언을 견디지 못한 전화 상담사가 자살한다. 하루가 멀다 하고 건설 노동자들의 사고가 이어지고 안전지대일 것 같은 프로그래머 같은 직종의 노동자도 수없는 야근에 과로사로 죽어나간다. 나도 전태일과 같은 상상을 했다. 법을 준수하며 노동자에게 이윤을 공정하게 배분할 수 있는 기업을 세울 수 있지 않을까? 그는 지금으로부터 20년도 더 전에 그런 상상을 했다. 직접 기술자가 되어서 기술을 익혔고 관리자가 되었다. 시장조사를 해서 사업계획서를 작성하고 누군가에게 투자를 받아서 모범업체를 만들고자 했다. 그에게 그것은 먼 세상이었고 결국에 그는 그 한 몸을 불태우는 방법을 택했다. 슬프게도 정말로 그의 죽음을 다른 이들의 마음에 불꽃을 일으켰고 나는 그 때보다는 나은 삶을 살고 있다. 누군지 모르겠지만 혹시 당신이 그의 진심을 정치적 이해관계로 이해하고 싶다면 죄송하지만 나는 더 이상 대화를 할 수 없다.


내가 보기엔 자본가들의, 고용인들의 논리는 이전보다 훨씬 정교해졌고 법은 이것을 여전히 든든히 뒷받침하고 있다. 여전히 많은 이들이 죽고 그들은 보이지 않는다. 언론은 제 역할을 하지 않고 정경유착은 여전해 법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연대는 쉽지 않다. 자본가들의 논리는 너무나도 개개인의 마음 속에 깊숙하게 자리잡고 있다. 아니 사실, 그들 각자가 이미 한 때 자본가이거나 자본가가 되고 싶거나 성실한 노예일지도 모른다. 돈이 있는 사람들은 잘 뭉친다. 그렇지만 노동자들이 뭉치면 그것은 '운동'이 된다. 2017년에도 아직 그런 프레임이 통한다는 사실이 너무 충격적이고 학교에서 노동에 대한 교육을 하나도 하지 않는다는 사실 또한 너무 충격적인 사실이다. 공교육에서는 흔히들 '막노동' 한다고 학생들을 공부하라고 협박하면서 정작 누군가는 하게 될 '막노동'이 얼마나 신성한 것인지, 그들의 인권은 어떠한지에 대한 고민은 하지 않는다. 내가 보기에 이런 교육 시스템 또한 자본가 계급을 위한 시스템이라고 생각한다.


이 모든 것을 짊어지고 죽음을 택할 수 있었던 전태일. 감사합니다.

또 이것을 정리한 저자에게도 무한한 감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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