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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타 Nov 23. 2016

뭐라도 해보는 페스티벌

이 시국에 정말 답답한 사람들이 만들어나간 신나지만 또 씁쓸했던 축제

해보지, 뭐 라는 프로젝트가 페이스북에 올라왔다. 정확히 누군가의 타임라인에서 보았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지만, 최근 시국이 시국인지라 내가 그런 기사들에 좋아요를 많이 눌러 놓아서 페이스북이 내가 좋아할 것이라고 추천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개인의 만남이 있는 집회’ 라니! 내가 들어본 집회들과는 상상도 하지 못할 형식의 집회가 아닌가? 지금은 한창 '평화시위 프레임'이 뜨거운 감자이지만 당시, 그러니까 11월 5일 집회가 막 열리고 있을 때의 나는 다른 사람들이 시위나 집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했다. 사실 처음 박근혜 게이트가 터졌을 때부터 솟아난 분노를 표현할 방법을 찾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페스티벌을 준비하면서도 한창 왜 내가 분노했는지 고민했더랬다.


11월 4일에 사람이 70명 가까이 모였다고 하길래, '나도 생각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무턱대고 11월 8일 행사에 참여했다. 그날은 생각보다 참여한 사람들이 많지는 않았고 11월 4일을 통해 구체화된 "주말 낮 유동인구 많은 대학가에서 소규모 그룹 토론을 축제처럼 해본다."라는 큰 틀을 기반으로 행사를 어떻게 진행하면 좋을지, 토론 이외에 재미있게 진행할 수 있는 행사는 무엇이 있는지 주제를 정하기 시작했다. 많은 아이디어가 나왔는데, 나는 좀 게임 같은 형식으로 시국에 대해서 사람들이 생각하고 또 표현해보는 방법이 어떨까 했다. 이것은 평화적이고 아니고 따지기보다는 그저 기존에 많이 자유롭지 못했던 형식을 한번 깨 보자는 내 생각이었고, '몸으로 말해요' 아니면 'O/X 퀴즈'와 같은 형식이 바로 떠올랐다. 이 의견을 이야기했고, 그날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들어봐야지~라고 가벼운 마음에 카우앤독으로 향한 나는 정신 차려보니 프로그램을 하나 떠맡아 버렸다. 해보지, 뭐 페이스북 페이지가 만들어졌고 이제 그곳을 통해 우리가 논의한 결과들이 하나씩 정리되어 업로드되었다. 혬님이 너무나도 수고해 주셨다.



그다음 11월 11일에 모였을 때는 장소와 시간을 좀 더 구체적으로 의논하는 자리였고 축제를 기획하시는 대장님도 함께 해 주셔서 우리가 토론과 함께 축제를 만들어 보려는 취지와 비슷해 같이 하게 되었다. 또 소규모 그룹토론을 할 오방색 주머니 카드도 완성되었는데, 너무나 가슴을 깊숙이 찌르는 질문들이라 처음 보는 사람들이라도 빠져들겠구나 싶었다. 19일의 행사에 대한 내용은 우선 12일 시위를 보고 장소를 결정하기로 정하였고 11일까지는 연트럴 파크도 우리의 후보였다. 당장 12일에 광장에서 테스트해보고 시민들이 이 오방색 주머니로 토론하는 아이디어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실험해보기로 하였다.


아쉽게도 12일 낮에는 영재기업인 멘토링이 있어서 12일 행사의 진행자로는 참여하지 못하였다. 그렇지만 5시부터 시위에는 참석하였는데, 사실상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대규모 시위는 처음 경험해보는 일이었다. 사실 작년 세월호 시위 때에도 군인 신분이라 참여하지 못해 너무나 마음이 답답했었다. 광화문에는 정말로 가 보지 않으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사람들이 많았지만, 너무나도 질서 정연했다. 처음에는 시위에 '개인'으로 참여하는 것도 충분히 의미가 있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지만, 시청역에 내리는 순간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이렇게 많은 개인들이 '연대'하지 못하면 정말로 목소리들이 흩어질 수 있겠구나. 또, 아는 사람들 혹은 최소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 하지 못하면 시위는 정말 재미없어지겠구나. 그래서 어떻게 학교 깃발과 함께하게 되어서 학교 깃발 밑에서 행진을 하고 또 앉아있었다. 그 경험은 너무나도 특별했는데, 특정 정당의 깃발도 아니고 대학생, 지금 우리가 낼 수 있는 목소리에서 다 같이 즐겁게 우리의 목소리를 내는 경험이었다. 하야 송이 나올 때면 박자에 맞추어 다 같이 덩실덩실 춤을 춰 보기도 하고, 앞 깃발과 여유가 나면 고함을 지르며 뛰어다니기도 했다. 어른들이 우리의 깃발을 보고 표출하는 감정들도 정말 특별했는데, 숭실대에 조카가 다닌다며 과자를 쥐어주시던 아주머니, 또 여러 시민들이 대학생들이 정말 잘하고 있다며 과자를 나누어주셨다. 그리고 우리 학교 깃발은 정해진 12일의 행사가 끝난 뒤 가고 싶은 사람은 해산했는데, 나는 더 참여하고 싶어서 깃발을 들고 시청역 앞에서 종각으로 돌아서 내자동 앞까지 행진하는 대학생 깃발들과 함께했다. 여러 깃발 아래서 발을 맞추어 질서 정연하게 우리가 생각하는 의견을 표출하는 것은 군대에서 행진하는 것과는 다른 짜릿한 경험이었고, 비록 구호는 "박근혜는 퇴진하라"와 비슷한 몇 개 밖에 없었지만 그것을 외치는 목소리들의 절박함이 너무나도 묻어났기에 그중의 하나의 개인으로 존재한다는 경험은 짜릿했다.


그다음 주부터는 상황이 매우 빠르게 돌아갔는데, 대장님이 '손석희와 함께하는 사람들' 페이지에서 모금을 하였는데, 상상하지 못할 만큼 빠르게 모금이 진행되었고, 필요한 물품들을 구매하고 시나리오를 작성하는 단계까지 이르렀다. 어떤 단체도 아닌 '개인'들의 힘으로, '개인'들의 분노, '개인'들의 노력으로 프로젝트는 계속해서 진행되어 갔고, 어느 누가 쓴소리 하는 사람 없이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분노의 크기만큼 행동하는 자율적인 형태로 준비되었다. 코스프레팀도 사실 많이 기여하고 싶었는데, 내가 표현하고픈 부분을 진행하기도 시간이 벅찼기에 함께하지 못해서 조금 아쉬웠다. 그리고 19일 행사 전날, 후원받은 돈으로 인쇄된 오방색 주머니 토론 카드를 우리가 한 장 한 장 고무줄로 묶는 일까지 해서 준비가 완성되었다. 페스티벌 홍보 포스터도 완성이 되었고, 당일날 홍보할 팜플랫 디자인도 모두 어떠한 대가 없이 준비되었다. 이 과정은 너무나도 숭고하고 아름다워서 그저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기분 좋은 감정이 가득 찼다. 또 그 면이 한없이 아름다울수록 뒷면은 한없이 분노와 자기부정으로 가득 찼다. 우리가 준비를 하는 과정에도 역시 예상했던 대로 박근혜는 한 움큼도 뒤로 물러서지 않았고 여, 야 역시 자신들의 기득권 유지에 바빠 100만 시민의 목소리에 허둥지둥하기에 바빴다.


그리고 11월 19일 행사가 시작되었다. 우리는 신촌역 3번 출구 앞쪽의 공간을 배정받았다. 배치는 아래와 같다.

나는 그중에서도 '몸으로 말해요, 시국을' 프로그램을 진행했고 자원봉사자 3분과 함께 프로그램을 진행하였다. 처음에 내가 준비한 스케치북들과 프로그램 내용에 대해서 설명해 드렸고, 얼마든지 마음에 드는 대로 진행해도 된다고 말씀드렸다. 처음에 사람을 모으려고 우리끼리 키워드에 대해서 맞춰보기 시작했는데, 확실히 효과가 있었는지 하나둘씩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내가 만든 몸으로 말해요 퀴즈는 콘셉트별로 준비되어 있었는데, 박근혜와 관련된 키워드들, 최순실과 관련된 키워드들, 그 외 시국과 관련된 다른 단어들, 동물 이 있었다. 그 중에서 제일 인기가 좋았던 것은 '최순실' 인데, 단어 하나하나가 너무나 기가 막히게 우스웠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곰탕' 이라던지 '늘품체조', '승마' 와 같은 단어들은 거의 여지없이 다들 표현하고 잘 맞추었다. 이 얼마나 기가 막힌 현실인가?


나는 이것을 시민들이 내재된 분노를 현 상황을 풍자하는 방식으로 글자 하나하나를 몸으로 표현했으면 하였고 사람들은 이것을 꽤 재미있어했다. 나는 이런 정치적으로 민감한 주제들을 바로 거리에서 웃으면서 누군가와 대화할 수 있는 사회를 원한다. 어떤 주제이든 그것에 대해 반대하는 의견을 가진 사람이 있으면 비난하거나 배척하는 것이 아닌 차분히 그의 의견을 들어주고 또 내 의견을 표현해 보는 식의 '관용'의 원칙이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오늘의 행사는 그런 것을 표현하는 일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아쉬운 점도 많았다. 사람들의 눈에서 느껴지던 그 기본적인 두려움. 정치적인 일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일에 대한 두려움. 사람들의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웃으면서 축제 잠깐 즐기다 가세요. 라고 말하면 그런 거 안 해요 하면서 거절하는 사람들. 아니면 잠깐 관심을 가졌다가, 몸으로 말하는 퀴즈를 직접 맞추시는 거예요. 하니까 또 에잇 난 그런 거 못해. 하면서 부끄러워하시는 분들도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중에서도 재미있어 보인다고 참여해주시는 분이 많았다는 사실에 나는 너무나도 행복했다. 더 흥미로웠던 점은 게임에 대한 참여는 연령층을 가리지 않았다는 사실인데 그냥 동물을 몸으로 말하고 싶었던 어린아이부터 손잡고 가던 커플, 데이트를 즐기시는 부부까지 다양했다.



사실은, 몇 시부터인지 기억은 잘 나질 않지만 사람들이 외면하는데 주목을 좀 끌어 보고자 다른 팀에서 준비한 가면을 좀 가져와서 쓰고 돌아다녔는데, 나는 박정희 가면이 왠지 손에 잡혀서 덜컥 썼다. 그러고 디제잉 부스에서 박자에 맞추어서 등장하니까 웬일, 사람들이 무슨 퍼포먼스인 줄 알고 가던 길을 멈추고 스마트폰을 꺼내는 것이 아닌가? 혼자 신나 있었던 나는 신나서 춤추는 와중에도 고민했다. "이것이 내가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보다 의미가 있을까?"라고 생각하면서 더욱 격렬히 몸짓을 하니까 정말로 사람들이 엄청 모였고 주변에 다른 가면을 쓴 사람들과 신나게 춤추면서 역할극을 했더니 정말로 사람들이 재미있어했다. 어쩌면 그들이 쉽게 가면을 쓰고 이 춤판에 들어오지 못하더라도, 그들이 하고 싶은 말을 우리가 대신해 주고 그들이 그것을 보고 웃을 수 있다면 그것 또한 가치가 있는 일이 아닐까? 대낮의 대학로 한복판에서 이렇게 지금의 시국을 리듬에 맡기고 몸을 흔들 수 있는 자유. 그것으로도 축제처럼 '즐긴다'는 목표에 맞는 일이 아닐까?



그러다 보니 어느새 박을 터뜨리는 시간이 왔고 준비했던 O/X 퀴즈는 해보지도 못하고 끝이 나 버렸다. 또 중간에 진행자로 도와주기로 한 '오방색 주머니 이야기'도 도와주지 못하게 되어버렸다. (사람이 부족하지 않았다니까 다행이다) 내 프로그램 자체를 아주 완성도 있게 진행하지 못했던 점은 아쉬웠다. 앞으로 이런 행사를 진행할 때는 상황에 대한 시나리오를 조금 더 철저하게 세워 놓아야 되는구나 싶다. 그리고 나와 함께 프로그램을 같이 진행해주셨던 봉사활동 지원자 분들께 너무나도 감사하다. 이렇게 같이 행동해주시는 분이 있구나. 우리가 기획한 새로운 형태의 시위에 같이할 수 있는 존재가 있다는 것이 너무나도 감사했다.


축제 같은 시위를 준비하면서, 진행하면서 나를 계속해서 괴롭힌 질문들이 있었는데 아마 나 말고도 진행하셨던 분들은 다들 자신에게 던져보았을 질문이다.

- 어떻게 하면 기존의 깃발과 행진, 구호로 대비되는 시위의 장을 축제의 형식으로 바꿀 수 있나?

- 어떻게 하면 정치에 크게 관심 없는 사람들을 가볍게 이 시국에 분노해야 하는지 일깨울 수 있나?

- 그들을 어떻게 하면 광화문으로 가게 할 수 있을까?


사실 이런 부분에 대한 답은 12일, 19일 시위에 참여하였다면 다들 알고 있을 것이다. 이미 우리는 잘 알고 즐기고 있다는 사실을. 아래는 내가 12일 민중총궐기 이후에 발견한 축제의 현장이다.

그리고 우리도 전형적인 '시위의 장소'가 아닌 대학가에서 그저 무언가 해보자는 생각으로 축제를 하나 만들어 보았다는 것. 뭐 그것이 대단한 신문 기사가 나지 않아도, 당장 대통령이, 기득권 세력이 바뀌지 않아도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엠빙신같은데서나 보도한다) 시민들이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일. 시위라는 것이, 나의 정치적 의견이라는 것이 어떤 장소에서든 이야기할 수 있다는 자유를 일깨워주는 행사였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지금의 싸움이 길고 지루해질 것을 이성적으로 예측한다. 국민적 분노와는 도무지 상관없이 내가 대통령이어도 지금의 상황에서는 대통령의 '수'들은 상당히 합리적이다. 시민들이 계속해서 뜻을 모으지 않는 이상 박근혜를 비롯해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우리나라의 수많은 부분을 장악하고 있는 기득권들을 몰아낼 수는 없을 것이다. 광장에 모이면 모일수록 우리는 알아가고 있다. '나'의 범위는 어디까지이고, '국가'의 범위 또한 어디까지이냐는 것을. 그리고 '민주주의'라는 것이 무엇인가? 그리고 지금의 우리나라에서의 대의민주주의가 얼마나 철저히 국민들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가고 있다.


축제를 처음 기획하고 준비한 정현님, 혬님을 비롯해 처음부터 무슨 엔진 달린 로켓처럼 행사를 진행해주신 다른 분들께 너무나도 많은 것을 배웠다. 한번 해보니까 해보길 잘했다 생각이 들었다. 아마 나의 '해보지, 뭐'정신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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