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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타 Jul 17. 2017

2017 퀴어 퍼레이드

존재의 아름다움

나는 어떠한 대상이 그저
존재한다는 사실에서 느껴지는 아름다움에 압도당했다.
시청 앞 광장은 그 아름다움으로 가득 찼고
사랑은 물결쳐서 시청 앞을 한바탕 수놓았다.



올해 나는 처음으로 퀴어 퍼레이드에 참가했다. 사실 작년부터 가고 싶었지만, 정말로 시험기간과 겹쳤다. 변명이다. 가고 싶었으면 이유 없이 갔을 것이다. 그랬다. 두려움이 있었을지 모른다. 성소수자들을 향한 우리 사회의 엄청난 혐오감. 그렇지만 나는 알 수 없다. 누가 이 혐오의 씨앗을 심었는지, 왜 다른 이의 존재를 해치는지.


그들은 우리의 존재를 반대한다.

2016년엔 박근혜라는 태풍이 나와 내 주변, 우리가 살아가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한바탕 휩쓸었다. 그다음 해에 드디어 새로운 정부라는 새싹이 텄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는 과정에서 그간 지워졌던 존재들이 다시금 목소리를 얻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거나 정책적인 우선순위가 높지도 않지만 수많은 약자들,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경제적 약자, 등등 열거할 수 없이 많은 약자들의 존재가 주류 언론을 타고 흐르고 개인의 지각을 흔들었다. 그동안 나는 미뤄왔다. 약자들의 존재를 보고도 귀를 닫았고 자신이 가진 권리가 특권임을 깨닫지 못했다. 지금 당장 내 일이 더 중요했다. 그렇지만 군생활과 박근혜 게이트를 거치면서 깨달았다. 나는 왜 존재하는가에 대한 물음에 대한 답은 "지금 당장"에 있었다. 나는 내가 느끼는 문제점을 "지금 당장" 해결하기 원한다. 그것은 누가 해결해 주지도 않고 기다린다고 해서 바뀌지도 않는다. 내 존재는 내가 지킨다.


지금 당장 우리가 바꾼다.


당장 정권을 교체해야 하는데, 소수자들의 문제는 차근차근 해결하자. 그러니까 뭐든 일단 나중에 하자. 그러니까 너희들의 문제는 좀 있다 이야기해 보자. 지난 대선 동안 수없이 개인들을 괴롭힌 물음일 것이다. 그리고 이 두려움은 가장 될 것 같은, 후보에 투표하는 방향으로 흐르고 지금 내가 사는 사회를 만들었다. 약자와 소수자들은 이런 후려치기에 수없이 고통받았고 지금 그 상처들이 모여 슬로건이 되었다.


이런 상황들과 별개로 축제에 참여하는 내 마음은 두근두근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축제에 참여하기 위해서 지갑을 장전해 놓은 상황이고 이미 굳즈들에 후원도 해놓았기 때문이다! 시청 앞 광장에 지하철에서 빼꼼 고개를 내밀 때 그 설렘은 그간 느껴본 설렘 중에 최고였다.

퀴어 퍼레이드 공식 뱅글 !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나를 환영해 주었던 것은 공식 기념품 판매부스였다. 5천 원 이상 후원하고 하나씩 가져갈 수 있는 프라이드 뱅글. 매년 디자인을 바꾸어서 소장욕을 불러일으킨다구! 축제에 왔으니 입장료를 내어야지. 하나씩 집어들구 인증샷 >< 나는 1시쯤 도착하였는데, 이미 사람이 엄청 많았다. 부스에는 물론이고 광장도 절반 이상 가득 차 있었다. 우선 나는 어떤 굳즈가 있는지 구경하러 하나씩 부스를 돌았다.


정말로 많은 수의 부스가 있었는데, 낮은 번호에는 주로 정당 혹은 연구단체들이 있었다. 녹색당에서는 귀여운 '뀨' 버튼과 '뭐/왜' 가 적혀있는 부채를 나눠주었는데 귀여워서 하나씩 집어 들었다. 이어서 청소년 단체, 잡지 등등 단체들을 지나 대학별 성소수자 동아리들이 모여있었다. 나는 내가 다니는 학교의 동아리 굳즈들을 후원했는데, 이것은 내가 학교를 다니면서 학내 소수자들의 문제에 대해서 전혀 들어본 적도 없고 학교 차원에서도 전혀 배려가 없는 듯해서 지금 당장 바꾸기 위함이다.


부스를 돌면서 너무 깜짝 놀랐던 것은 바디를 가리지 않고 너무나도 아름다운 분들이 많았던 탓이다. 광장 가득 무지개색으로 차려입은 모두는 TV의 그 어떤 연예인도 비교할 수 없었다. 이래서 대명절이라고 하나 싶었다.







숭실대학교 성소수자 모임 '이방인'에서 사전 구매한 뱃지와 안경닦이. 뱃지와 안경닦이 모두 디자인이 너무너무 이쁘게 나와서 살 수밖에 없었다.


이화여대 성소수자 동아리에서는 타투? 물에 불려서 붙여주는 스티커를 개당 1000원에 후원하는 행사를 하고 있었는데, 무지개색 스티커가 이뻐서 목에 하나를 붙였다. 이어서 또 많은 단체들을 지나 유럽 각국의 대사관 부스들도 있었는데, 무료로 페인팅을 해주기도 하고 프랑스 앞이었나? 아이템을 뿌리는 것 같던데 줄이 엄청 길었다.


이렇게 대강 한 바퀴 돌고 나니까 콘서트 리허설 하는 소리가 광장을 가득 채웠는데, 당최 외면할 수 없이 엄청난 노랫소리가 들려 가봤더니 바로 프라이빗 비치를 홍보하기 위해서 나온 'Bori'님의 무대였다. 와우 Amazing. 김건모의 잘못된 만남과 소찬휘의 Tears를 쉬지도 않고 부르셨는데 힘들어하는 기색도 없이 무대를 장악했다. 전율!!


그리고 비가 퍼부었다. 미리 우비를 사놓아서 다행이지 정말이지 안 사고 버텼으면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될 뻔했다. (굳이 그래도 상관없지만... 굳즈들이 젖으면 안돼안돼~)


그렇게 비가 주룩주룩 오면서 퀴어 퍼레이드 공연이 시작되었다. 첫 공연 밴드 소실점 이후 발언들이 이어졌는데 정의당 이정미 대표부터 해서 대학연합 큐브까지 많은 분들이 함께했다.


오른쪽은 일본/대만 퀴어 퍼레이드에서 응원 온 장면. 비가 엄청 와서 다들 우산 들고 서있다. 이래서 어쩌나 했는데 어쩜, 차세빈 씨의 공연이 시작되자마자 비가 뚝 그치는 거였다. 강렬한 비트의 두 곡을 선사하고 가셨는데 WoW 매력적이었다. 흡... 찾아보니 I AM 이곡이다.






이어 아까 리허설 한 Bori 님의 엄청난 무대가 이어졌다.

ㅋㅋㅋ구경하는 분들 다들 흥 폭발ㅋㅋㅋㅋ


드랙퀸 무대가 모두 끝나고 드디어 행진이 시작되었다. 광장을 너머 종로를 한 바퀴 두르는 3km의 아름다운 행진이 시작된 것이다.

나는 어떻게 맞춰서 가다 보니 페미당당 차량 끝쪽에 위치했는데, 신나는 선곡들과 함께 즐겁게 걸었다. (선곡이 약간 올드한 스타일인 건 비밀...) 그렇지만 차량에 계신 분들이 너므 흥이 넘치셨다. 덜덜. 그러더니 여럿 퀴어축제 관련 기사에도 많이 가져다 쓰더라. 앞뒤로 사실 더 아름다운 남자바디를 가지신 분들이 많으셨는데 말이다. 허허. 그리고 마지막에 광장에 다 와서는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로 마무리한 것에 전율이 일었다.

사랑은 혐오를 이긴다.

행진을 하면서 우리를 바라보는 수많은 시민들의 눈을 바라보았는데, 나는 그들에게 혐오보다는 사랑을 더 많이 발견했다고 믿는다. 재미있게 지켜보는 분들이 대다수였고 많은 분들이 손을 흔들어 주었다. 또 행진하는 분들이 흥이 나있어서 그런진 모르겠지만 지나가는 모든 버스에 인사를 했다(..?) 이렇게 놀다가 걷다가 하다 보니 어느새 광장. 끝나고 약속이 있던 터라 저녁 행사에는 참여하지 않고 그냥 나왔다. 프라이빗 비치까지 생각하지 않았는데, 내년에는 꼭 가야겠다 싶었다.


그랬다. 나에게는 두려움이 있었다. 사회의 낙인, 소수자 들을 존재를 지워내는 그들의 시선이 말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존재하고 어느 누구도 존재 자체를 반대할 수는 없다. 내가 퀴어 퍼레이드에 나오게 된 이유도 어느 정도는 그들에 반대하는 마음도 있었을 테다. 그렇지만 나는 깨달았다. 우리의 존재는 너무나도 아름답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수없는 혐오와 차별의 시선을 견뎌가며 묵묵히 존재하는 이들의 아름다움은 그 어떤 형형 색색의 자본보다도 아름다웠다. 축제에 참여한 이들은 어느 누구도 다른 이들을 혐오하지 않았다. 이것은 그저 눈만 잠시 마주쳐도 알 수 있다. 이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느냐하면 치마를 입고 머리를 기르며 화장을 한 남자가 지하철에 탄다면 그 지하철의 모든 사람의 눈이 나의 전신을 훑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을 터다. 그렇지만 퀴어 퍼레이드에서는 어느 누구도 그런 시선을 주지 않는다.


퀴어 퍼레이드 덕분에 내가 약자들에게 무지했다는 사실을 더욱 깨달았고 또 내 안의 없다고 생각했지만 있었던 유리벽이 완전히 깨지는 기분을 느꼈다. 정말로 그들은 아니 우리는 지금 여기에 존재한다. 그 누구도 성적 지향과 정체성을 반대하거나 혐오할 수 없다. 퀴어 퍼레이드는 너무나 즐겁고 또 아름다웠던 경험이었다. 서로가 서로의 존재를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또 사랑할 수 있기를.

사랑해요 퀴어 퍼레이드.


덧)

눈에 띄는 것은 성소수자 부모 협회였다. 그분들의 눈에서 무한한 사랑을 느낄 수 있어서 너무나도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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