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에서 포스터를 저렇게 대문짝만 하게 걸다니. 우연히 강남역 근처를 걷는데 기묘한 이야기의 거대한 포스터를 발견했다. TV, SNS 광고도 엄청 발견했다. 뭔가 굉장히 인기 있는 시리즈구나? 보통 호기심이 생긴 경우는 역시 파일럿을 보면 그다음 화를 볼 지 말지 결정할 수 있다. 별별 생각을 했지만 결국 첫 화가 끝날 때 즈음에는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그리고 정신 차려보니 그날 밤 시즌1을 몽땅 정주행하고 말았다. 그렇게 주말이 사라졌다. 정말 눈 깜짝할 새라서, 며칠 뒤 시즌2를 켰고 시즌1보다는 천천히 그렇지만 3일 만에 또 몽땅 다 봐버리고 말았다. 시즌 1,2가 너무 투머치 미국이라서 잠깐 쉬었다. 시즌 3은 일주일 정도 걸린 것 같다. 꽤 재밌게 보았고 생각도 많이 들어서 특징적인 요소들을 정리했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미국, 미국, 미국
이야기는 80년대 미국, 인디애나주 호킨스에서 시작된다. 넷플릭스 초보라 아직 미국 문화에 아주 익숙하지 않은 데다 특히 80년대 미국 분위기는 더욱 생소했다. 노래, 음식, 스타일, 별로 아는 게 없어서 종종 아 저걸 이해하면 더 재밌을 텐데! 하는 것들이 계속 귀에 들렸다.
이동수단
드라마를 보면 금방 알 수 있듯이 마을은 한적하면서 넓다. 한국의 수도권과 도시의 삶과는 다르다. 아이들은 자전거를 주 교통수단으로 이용하고 고등학생이 차를 운전하는 일은 당연하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이동수단을 소유하고 있는지는 굉장한 권력이다. 한국에서 어딘가로 이동한다고 할 때,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되지 않아?라고 떠오른다면 미국은 그렇지 않다. (한국도 여전히 열악한 장애인 이동권은 개선되어야 한다)
지역 보안관
미국에서의 경찰권은 여전히 헷갈릴 정도로 복잡하다. 우리나라 차럼 경찰이라는 단일한 권력이 존재한다면 미국은 지역 경찰, 주 경찰, 연방 경찰 등등 다양하다. 호퍼의 막강한 권한을 보면 당시의 경찰권이 어떻게 작동했는지 추측할 수 있다.
마트, 인스턴트식품
지금이야 편의점 도시락, 인스턴트식품이 어마어마하게 많지만, 80년대에도 그랬나? (안 살아봐서 모른다) 끼니를 통조림, 인스턴트식품으로 때우는데 멀쩡하게 살아있는 게 걱정된다. 이게 미국이구나 싶었다.
여성과 남성
시즌1은 휘리릭 빨려 들어서 보았다지만, 시즌2부터는 계속해서 거슬리는 것이 극 중 남성 주인공들의 태도였다. 그것도 전형적인 어린 남성, Geek들의 감수성은 재미난 전개에 몰입을 계속해서 방해했다. 미국 드라마에 만연한 감성이기는 하지만 내 취향은 아니기 때문이다. 계속해서 여성을 대상화하고 맥스가 자신들의 그룹에 들어오는 것에 배타적인 감정을 표출하는 장면은 지금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남성 호모소셜의 전형이다.
시즌3이 되어도 그다지 발전이 없어서 맥스와 일레븐은 여자친구의 형태로 밖에 그 그룹에 존재할 수 없다. 같이 활동하는 모임이라기보단 남성 4인 그룹 + 2인의 여자친구에 가깝다. 그리고 소년들이 '성장하는 것'과 '여자친구가 생겨버린 것'을 같게 취급하며 D&D를 하고 싶어 하는 윌을 덜 성장한 아이 취급한다. 그에 상심한 윌과 다른 소년들의 마음을 변명하는 데 신을 상당히 사용한다. 굳이 그래야 하나 싶지만.
전 시즌에서는 여성을 계속해서 타자화하는 것으로 호모소셜의 취향을 드러냈다면 시즌3에서 본격적으로 사회적인 성역할을 재현한다. 낸시와 조너선 커플은 신문사에 인턴으로 취직하는데, 사진을 종일 현상하고 있는 조너선과 다르게 낸시에게 주어진 역할은 기자와 국장들에게 햄버거와 커피 배달하기. 그리고 그들이 어떤 옵션을 좋아하는지 외우기 등이다. 갈등이 극에 달해 낸시가 조너선에게 '너는 이해 못해!'라고 이별을 통보하자 갑자기 조너선은 '너도 내가 얼마나 가난한지 이해 못 해' 라며 갑자기 젠더 문제와 계급 문제를 이상하게 뒤섞어 버린다. 물론 신문사의 분위기는 해결되지 않으며 조너선의 계급 갈등 또한 해결되지 않은 채 공동의 적인 괴물을 끝장내기 위해서 화해해 버린다. 이럴 거면 젠더와 계급 문제를 왜 꺼낸 거지?
극 중에서 여자친구/아내가 아닌 여성을 찾기도 힘들다. 아니, 없다. 계속해서 러브라인으로 엮는데, 조이스 바이어스는 밥 뉴비의 죽음이 가시기도 전에 계속해서 들이대는 호퍼를 감내해야 한다. 어쩜 내가 봐도 귀찮아 보인다. 마침내 로빈이라는 새로운 여성 캐릭터가 등장하나 했더니 그마저도 스티브와 계속해서 러브라인을 엮는다. 그냥 여성 캐릭터로 놓아두어도 되지 않나? 싶었는데 극의 끝자락에 그의 레즈비언 정체성을 공개한다. 비로소 비중 있는 이성애자로 추정되는 여성 중에 여자친구/아내가 아닌 역할의 여성은 아무도 없다. 그리 현실적인 설정이 아니라 몰입을 계속해서 방해했다.
괴물과 시스템
데모고르곤, 괴물, 마인드 플레이어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는 괴물은 과연 무엇일까? 나는 글자 그대로의 괴물보다 '범죄자'로 읽혔다. 우리를 두렵게 하고 나쁜 짓을 저지른다. 감시와 통제의 대상이고 없어져야 할 것이다. 최근 범죄심리학자 이수정 교수님의 인터뷰를 읽고 이 느낌은 확실해졌다. 범죄도 아주 복잡하게 연결된 사회라는 생명체에서 탄생한다. 시스템이 범죄를 만드는데, 우리는 너무나 쉽게 범죄자 하나를 악마화하고 없애는 것으로 해결하려고 한다. 시즌1에서도 비밀병기를 개발하려는 미국 정부의 실험 과정에서 다른 세계로 향하는 문이 열린다. 그렇지만 정작 문제를 터뜨린 사람은 별로 하는 게 없고 일레븐만 코피 터지게 일한다.
괴물은 단순히 범죄자 말고도 '잘못된 인간의 욕망'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리고 '자본주의와 기술'은 실제로 그것을 실현할 수 있게 하는 도구다. 시즌3에서 마인드 플레이어는 전략을 바꿔서 인간을 하나씩 자신의 숙주로 삼는 전략을 취한다. 햇빛에 저항력이 약해지는 것 빼면 마인드 플레이어가 마음대로 조종하는 껍데기에 불과해진다. 태연하게 인간의 삶을 살아가지만 결구 괴물의 자양분이 되고 만다. 심지어 이들은 다른 인간을 납치해 엄청나게 많은 수의 마을 주민들이 마인드 플레이어의 먹이가 된다. 완전히 같지는 않겠지만 문득 급증하고 있는 인터넷 방송국이 생각났다. 수익을 가져다준다는 이유 만으로 온갖 일을 서슴지 않는 BJ들과 그 욕망을 지지하는 시청자들. 그리고 그 권력과 정당화된 욕망에 동참하는 다른 시청자들. 괴물의 형태와 별반 다르지 않다.
지적하고 싶은 점은 시즌 1,2,3 내내 실제로 괴물을 만들어낸 미국 정부, 러시아 정부는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다. 그리고 문제를 해결하는 주인공들만 죽어나간다. (흑흑 밥 뉴비랑 호퍼 아저씨 돌려내...) 괴물을 만들어 내는 것은 시스템, 권력을 가진 이들인데 왜 아무리 봐도 보통 사람(?)인 주인공들이 책임지는지 시즌3까지는 전혀 이해할 수 없다. 이것이 의도된 연출인 것인지, 아니면 전형적인 영웅 서사의 답습인지는 나머지 시즌을 지켜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위의 생각들이 계속해서 머리를 어지럽게 해서 시즌3을 시작할까 말까 엄청 고민을 했는데, 참지 못하고 모두 봐 버리고 말았다. 고백하건대, 내 안의 geek의 정체성이 날 부채질했다. 감독은 시즌3에서는 맥스와 일레븐의 연대에 아주 잠깐 시간을 할애하는 척을 하면서 변명거리를 만들어 놓았다. 너무 궁금해서 다 봐 버리고 말았지만 시즌4를 볼 지는 미지수다. 볼 지 말 지 고민하는 분이 계시다면 일단 시즌1을 보고 결정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스토리가 정말이지... 매력적이다. 캐릭터 각각이 가진 배경과 인물들의 스타일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특히 현실에서 뒤집힌 세계로 넘어갈 때의 연출은 정말 으스스하다. 음악은 긴장을 멈출 수 없게 하고 기이한 괴물의 외형은 익숙해지질 않는다. 반대로 강력한 엘의 초능력은 괴물이 아무리 세도 혼내줄 것이라는 믿음을 준다. 또 다른 초능력자가 나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게 한다. 아! 현실에서도 모두가 초능력이 있어서 시스템이 오작동을 일으켜도 해결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