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관 쌓아가기
검은 토끼 계묘년의 해가 밝았다.
새해는 한 살을 더 먹게 하지만, 시간의 연속선상에서 보면 그저 하루가 지났을 뿐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많은 선물을 준다. 연말을 마무리하며 1년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용기를 가져다주며, 못 이룬 일들을 새롭게 다짐하여 올 해의 버킷리스트를 세워보며 설레게끔 하는 희망을 주기도 한다.
나도 매년마다 올 해에는 꼭 이루고 싶은 작은 소망들을 적어보곤 하는데, 문제는 직업과 관련된 큰 목표가 아니고서는 작심삼일이 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작심삼일 100번이면 1년이 지나있을 것이라고도 말하는 경우가 있는데, 말이 쉽지 어떻게 매 3일마다 계획을 또 세우느냐 말이다!
나 또한 꽤나 충동적인 사람이었다.
공부도 벼락치기를 하고, 인터넷으로 충동구매도 자주 하였으며, 여행을 가더라도 그때그때 어려움을 극복하는 게 인생의 맛 아니겠느냐는 허튼소리를 해대며 세밀한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 10년 전 즈음 유행했던 YOLO라는 단어 그 자체였다.
초등학교 2학년 어느 날, 나는 평소와 다르게 어머니께 학교에 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뭔가 미래를 예견했던 것일까. 등교 후 1교시가 끝나기 전 아랫배에 극심한 통증을 느끼며 데굴데굴 구르다 의식을 잃었다. 119 구급차에 실려 어느 병원에 실려가던 내 모습이 문득문득 꿈을 꾸는 것처럼 느껴졌다. 근처 대학병원에서는 급성 충수돌기염(맹장염) 진단 하에 전신마취 후 충수돌기 절제수술을 하였지만, 이후에도 내 건강은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외과 교수는 원인을 알 수 없다고 하였다. 날이 갈수록 몸무게는 계속 빠졌고, 이를 보는 부모님의 속은 타들어갔다. 체중과는 반대로 배에는 복수가 풍선처럼 차오르며 결국 복막염 진단 하에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대학병원으로 전원 되어 두 번째 개복수술을 받았다. 중환자실에서 며칠이나 지났을까. 열과 염증수치가 떨어지며 다시 일반실로 돌아왔지만, 나는 소아암 환자들과 같은 병동에서 지냈다. 그 어린 나이에 콧줄(L-tube), 소변줄(foley)을 달고 제대로 먹지도 싸지도 못하며 몸무게는 18~19kg까지 빠졌고 피골이 상접하여 미라 같은 모습이 되어 있었다. 마치 시한부처럼 느껴졌던 나. 부모님께서도 밤낮없이 간병하시느라 몸과 마음 건강까지 악화되는 모습을 보며, 죽어가는 게 이렇게 슬픈 거구나 싶었다. 어머니의 간절한 기도 덕분일까. 입원한 지 두 달이 다 되어갈 때 즈음 몸이 점점 회복되며 기적과도 같은 퇴원을 맛보았다. 다들 기적이라고 했다. 그때부터 나는 어차피 한 번 살고 죽을 인생, 재밌게, 많은 걸 경험해 보며 살자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20대까지 정말 충동적으로, 즐기며 살았다. 여기까지가 내 욜로 라이프의 변명이다.
그러나 30대가 되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되며 비로소 깨닫게 된 사실이 있다. 수련의 시절 환자들과 면담을 하며 오히려 내 마음까지 치유됨을 느꼈고, 나를 통해 환자들이 나아져 다시금 행복의 미소를 찾을 수 있게 되는 경험들이 쌓여갔다. 나로 인해 세상이 조금 더 밝아질 수 있도록 더 많은 역할을 해야겠다는 일종의 사명감도 들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래서 공부하기 시작했다. 어렵게 정신과를 찾은 환자들에게 조금 더 좋은 치료를 하고 싶었고, 같은 시간 동안 그들 인생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다. 그렇게 점점 계획하는 사람으로 변태 중이다.
그러나 중요한 건, 내 게으른 기질과 무계획적인 습관을 바꾸기는 쉽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를 설명하자면 조금 어렵지만 중요한 내용을 말씀드려야겠다.
우리 뇌에는 행동을 반복하게 하는 동기 부여 시스템이라는 보상회로가 존재하는데 도파민과 글루타메이트라는 신경전달 물질이 이를 조절한다. 복측피개영역(VTA)이라는 곳에서 도파민을 생성하면 측좌핵(NAc)이라는 쾌락 중추를 자극하여 즉각 보상에 만족감을 느끼는 구조이다. 반대로 그 도파민이 전전두엽(이마 쪽)에 도달하게 되면 그 행동을 계속 유지할지 그만둘지에 대해 판단을 한 후 글루타메이트를 분비하기도 한다. 심리학적 용어로 '미래 할인'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호아킴 데 포사다, 엘런 싱어의 <마시멜로 이야기>를 읽은 분들이라면 알 수 있다. 시간 상 가까운 것일수록 더 높은 보상 가치를 주고 그 대가가 늦게 따라올수록 보상 가치가 디스카운트되어 한마디로 덜 당기게 만든다는 것이다. 눈앞의 넷플릭스와 컴퓨터 게임, 단순 재미용 유튜브 시청 등이 독서나 자기계발보다 더욱 달콤하단 뜻이다.
그럼 어떻게 더 높은 가치를 위해 인내력을 키워 새해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까?
먼저 해야 할 것은 책상에 앉아 내 마음속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일지, 내가 좋아하는 일이 무엇일지, 내가 하고 싶고 배우고 싶었던 일들이 무엇인지 깊이 고민해 보며 버킷리스트를 작성해 보면 좋다. 남들이 다 하는 멋있거나 재밌는 일이 아닌, 내가 흥미가 생기는 일을 떠올려 보다 보면 하나씩 채워나갈 수 있다. 가슴이 벅찬 일이면 백점 만점이다. 그 일을 이루었을 때를 미리 상상해 보면 마음이 콩닥거리고 마냥 행복한 것이면 좋겠다. 만약 그런 일들이 떠오르지 않거나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하는 자신감이 애초에 없다면 조용한 나만의 공간에 앉아 눈을 감고 본인의 정체성과 자아에 대해 깊게 고민해 보자. 정체성 중심의 습관을 세우면 그 습관이 관성처럼 따라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떠오르지 않는다면 어떡할까? 사실 그래도 상관없다. 난 습관이 정체성을 만들어갈 수 있다고 믿는다. 습관이 정체성을 만들고 정체성은 또 다른 긍정적인 습관을 낳는다. 나 또한 매주 '에세이나 소설을 쓰는 작가'라고 스스로 암시하고 어떻게든 한 줄이라도 글을 쓰려고 노력한다. 그러니까 진짜 허접한 글이라도 이렇게 써진다.
제임스 클리어의 <아주 작은 습관의 힘>에서 저자는 좋은 습관을 만들기 위해서는 목표를 분명하게 하고, 매력적이고 하기 쉬우며 그 결과가 만족스러운 목표를 만들라 한다. 분명한, 매력적인, 쉬운, 만족스러운 목표. 이 네 가지만 명심하고 그런 습관들을 형성하기 위해 각자의 마음속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자. 남들이 보기에는 정말 아무것도 아닌 습관들을 쪼개고 쪼개서 아주 구체적으로 만들고 실행해 보자. 나 같은 경우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이불을 개고 씻는다. 이후 스킨로션을 바르고 소파에 앉아 신문을 본다'라는 습관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행동을 자극하는 신호가 중요하기 때문에 내가 항상 하는 일과 루틴을 알아보고 그 후에 새로운 습관을 쌓아가는 방법도 좋은 예시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습관을 추적하며 달성했을 시에는 스스로에게 보상을 주면 금상첨화다. 평소에 원하던 걸 셀프선물 해줄 수도 있고, 대견하다는 칭찬이나 긍정적 확언을 할 수도 있다. 이렇듯 자신감과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이 우선이다. 헤브의 법칙이라는 게 있다. 행동이 반복될 때마다 세포와 세포 사이에 주고받는 신호들이 증진되고, 신경학적 연결들이 촘촘해지며 이들의 회로도 활성화된다는 뇌신경 가소성에 대한 내용이다. 이미 과학적으로도 입증되어 있는 것이다. 습관은 시간이 아니라 횟수에 기반해 형성된다는 연구결과도 있으니 잘하려고 하기보다는 일단 꾸준히 많이 해보는 것이 참 좋겠다. 그렇게 몇 가지라도 꾸준히 하다가 연말에 올해는 무엇이 잘 되었는지, 무엇을 배웠는지, 고칠 건 없을지 진지하게 돌아봤을 때 많은 것을 얻었던 것 같다.
올해도 여러분 모두 원하는 것을 성취하여 행복한 인생을 살아가시길 바란다.
한 발자국이라도 성장하고 있는 여러분이 존경스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