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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틴아빠 Jan 08. 2023

정신과 의사의 스트레스 관리법

진료실에 앉아 나를 찾아오는 환자들은 대부분 스트레스를 주는 환경이나 사람들에 대해 호소한다. 스트레스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적응하기 어려운 환경에 처할 때 느끼는 심리적, 신체적 긴장 상태를 말하는데, 또 다른 의미로는 외부 힘의 작용에 저항하여 원형을 지키려는 힘이라는 뜻도 있다. 그들은 여러 요인들로 인해 마음의 진통을 겪고 있지만 상처받은 내 소중한 마음을 온전히 보존하고 싶어 한다. 누구나 그럴 것이다.

이러한 마음을 어떻게 지켜나가며 스트레스에서 어떻게 좀 더 손쉽게 벗어날 수 있을까?


스트레스는 자존감과 연관이 있다. 외부 요인은 내가 어떻게 하지 못하는 부분이겠지만, 같은 상황에서 같은 것을 보더라도 이를 대하는 태도와 생각, 느낌은 모두가 다르다. 장애물 달리기 선수라고 생각해 보자. 만약 당신이 실패했던 과거들이 축적되어 자신감이 떨어진 상태라면 또다시 허들을 보았을 때 걸려 넘어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과 함께 이를 지켜보는 주변 시선들에 대한 공포 등 각종 부정적인 생각들이 떠오르기 마련이다. 반면, 최근 전적이 좋아 자신감이 붙은 상태라면 다른 사람들보다 허들 높이가 더욱 낮아 보일 수도 있고, 생각보다 해볼 만하겠구나 하는 마음이 절로 든다. 

환자분들의 고민과 스트레스를 들어주고 같이 고민하며 가끔은 역경을 헤쳐나갈 수 있도록 방향성을 제시해주기도 하는 정신과 의사라고 해서 다른 사람들에 비해 스트레스가 적은 건 결코 아니다. 이를 극복하는 방법도 잘 모르는 것 같기도 하다. 실제로 미국의 존스 홉킨스대학에서 의대 졸업생 1천 명 이상을 30년간 추적조사한 결과 의사들 가운데 정신과 의사의 이혼율이 55%로 가장 높다. 내가 공부했던 교과서에서도 정신과 의사의 자살률이 의사들 중 1등으로 나올 정도였으니, 일반 인구에 비해서도 월등히 높을 것이라는 걸 짐작할 수 있다. 중이 제 머리 깎기 힘들다지만, 이건 도를 넘어섰다. 




어느 날, 평소에 정신건강의학이나 심리에 대한 호기심이 많은 20대 초반의 젊은 남성이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정신과 의사로서의 삶에 대해 질문하기 시작했다. 여기는 힘든 당신을 위한 공간이지 호기심 충족을 위한 인터뷰를 하는 곳은 아니라고 조심스레 말해주었지만 정신분석적 접근이 필요하지 않은 단순한 집중력 문제로 내원했던 환자이기도 하고 '언제 정신과 선생님을 뵙고 이런저런 건 여쭤보겠어요 제가' 하는 식의 다소 민망한 말씀을 해주셔서 차마 거절하지 못하곤 했다. 간단한 질문이기도 했고. 그날은 '선생님은 어떻게 스트레스를 푸는가?'에 대한 질문이 메인이었다. 나는 잠시 허공을 쳐다보며 10초 정도 고민하면서 멋있는 말을 해줘야 하나 아니면 정말 내가 어떻게 푸는지에 대해 솔직한 대답을 해줄까 하고 망설였다. 환자의 눈빛을 보니, 진심으로 내가 어떻게 푸는지 궁금하여 초롱초롱하니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눈빛 안에는 교과서적인 그저 그런 추상적인 대답 말고 진짜를 원하는 느낌이었다. 


"음.. 저는 그냥 맛있는 거 먹고, 쉬어요."


그랬다. 나는 아주 과하지는 않은 일상적 스트레스를 받는 날이면 아내와 함께 매운 음식을 찾아 먹고 맥주 한 잔 들이키며 속 시원히 털어놓고 그동안 보고 싶었던 넷플릭스 영화나 예능을 한 편 보고 씻고 일찍 잔다. 

먹고, 쉬고, 자고. 이 세 가지가 정신의학에서 정말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몸이 건강해야 정신도 맑아지는 법이다.


앞에 있던 환자가 갸우뚱하며 '그게 다인가요?'라고 했을 때, 그렇다고 답해줬다. 언제나 가장 기본적인 게 가장 어렵고, 중요하다. 다소 맥 빠지는 모습을 캐치한 나는 부연설명을 덧붙이고 조금 더 설명하기로 했다.


"물론 어느 스트레스냐에 따라 다르기도 하지요. 일에서 오는 업무과중 스트레스, 시험에 대한 스트레스, 미래와 진로에 대한 걱정, 대인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 그중에서도 누구와의 갈등이냐에 따라서도 어떻게 대처하는지는 조금씩 다른 것 같아요. 그러나 근본적인 것은 잘 먹고, 잘 쉬고, 잘 자는 거예요. 잘 쉬기 위해서 바다나 산으로 잠시 떠나보기도 하고 시간 여건이 안 된다면 근처 카페에 앉아 책을 읽기도 해요. 그마저도 안될 때에는 방 안에서 제가 좋아하는 잔잔한 음악을 틀어놓고 명상을 합니다. 명상이라고 대단한 것은 아니고, 그저 내 안의 내 목소리를 들어보는 거예요. 그리고 한 가지 팁을 말씀드리자면, 지금 고민하고 걱정하는 일에 대해 공책이나 메모장에 일기처럼 적어봅니다. 보통 그런 고민은 서너 줄에 지나지 않거든요. 그리고 이게 해결 가능한 것인지 생각해보는 거예요. 해결책이 10분 안에 나오지 않으면 나로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공책을 덮습니다. 그러고 나서 맥주 한 잔 마시는 거죠!"


흔히들 우울은 과거에서 비롯되고, 걱정은 미래에서 오는 거라고 한다. 대부분의 스트레스는 '어떡하지? 그 사람과 갈등이 있는데 어떻게 풀지? 잘 못되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감으로부터 기인한다. 미국의 심리학자 어니 젤린스키는 우리의 걱정 중 96%는 쓸데없는 걱정이고 나머지 4%만이 우리가 해결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이를 진리로 믿고, 웬만한 스트레스에 대해서는 신경도 쓰지 않고 내가 평소에 하고 싶었던 것들을 하면서 충분한 휴식을 취하는 것을 추천한다. 


앞에서 말했듯이, 낮은 자존감으로 인해 같은 사건이나 상황을 바라보는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기 때문에 근본적으로는 이러한 자동사고를 없애려고 노력함과 동시에 자존감을 증진시킬 필요도 있다. 자존감은 보통 나와 타인으로부터 오는 인정 욕구가 채워질 때에 상승할 수 있다. 타인에게 인정받기란 큰일이 아니고선 어렵고, 매번 기회가 오진 않기 때문에 나 스스로 인정해 주는 연습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아주 작은 목표부터 세우고 이를 조금씩이라도 실천해 나가는 방법이 가장 쉽고 빠르다. 제임스 클리어의 <아주 작은 습관의 힘>에 나오듯, 정말 작지만 긍정적인 습관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환자들에게 추천하는 것은, 아침에 기상하자마자 이불을 정리하고, 양치한 후 물 한 컵을 마시는 습관을 들이라는 것이다. 이것만 해도 벌써 세 가지를 성취했다.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이로서 남들보다 하루에 세 가지나 더 긍정적인 습관이 생겼다. 나처럼 에세이를 쓰겠다고 다짐한다면, 하루에 한 줄만 쓰는 것도 방법이다. 그것만 해도 어제보다는 한 스텝 더 밟은 것 아닌가. 이렇게 스스로 정한 목표대로 조금씩 꾸준히 실천하며 좋은 습관을 만들어가면 없던 자신감도 생긴다. 그리고 내가 대견해진다. 자기 효능감이 올라가며 긍정적인 마인드가 장착되게 되어 웬만한 스트레스에서는 견디고 버텨나갈 수 있는 회복탄력성도 증진되는 선순환이 일어나는 것이다. 




약간의 스트레스는 오히려 자기 발전이라는 관점으로 본다면 긍정적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이럴 때에는 흔히들 스트레스 푸는 방법으로 감사 일기 혹은 감정 일기를 적으며 내 마음을 정리해보기도 하고, 가까운 지인들과 소통하는 시간을 갖기도 하며 가벼운 운동을 하곤 한다. 이들 모두 아주 좋은 방법들이라 나 또한 추천하는 바이다.


그러나, 정말 죽을 만큼 힘든 일들을 겪고 외줄 타기 하듯 겨우겨우 버텨가며 사는 사람들을 나는 안다. 사방이 막혀 어디에도 빛이 보이지 않는 터널의 가장 어두운 곳에 있는 그들에게는 이러한 말들이 바로는 와닿지 않을 수 있겠지만, 그저 조금만 더 버텨줬으면 좋겠다. 동트기 전이 가장 어두운 법이다. 이 역경만 지나가면 뭐든 이겨낼 수 있으리라. 일단은 충분히 쉬면서 다시 앞으로 나아갈 힘을 비축한 후 시간이 지나며 희미하지만 밝은 빛이 보이기 시작한다면, 내 마음과 어깨를 토닥여주며 잘했다고 위로해주길 바란다. 죽기 살기로 버텨낸 당신만큼 대단한 사람도 별로 없다. 힘든 삶을 서로 위로하며 잘 이겨내길 바라본다. 


당신의 삶을 존중하고 존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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