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트랙
어제 시카고에서 엘에이 행 암트랙 기차를 타고 출발한 나는 지금 트리니다드라는 지역을 지나 앨버커키로 향하고 있다. 가늘고 앙상한 가지를 가진 나무들이 평원을 가로지르며, 작은 협곡과 암석들이 서로 다른 풍경을 이끌어내고 있다. 데이터가 되지않아 강제 SNS 다이어트를 하며 지루할 것 같지만 끊임없이 변하는 창밖의 모습이 지루함을 느끼지 않게 한다.
이 열차 여행을 하는 모습을 고스란히 상상하고 하늘 높은 곳에서 지켜보면, 작은 존재로서 거대한 지구를 여행하는 우리, 각자 다른 목적을 향해 작은 몸으로 여러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우리가 보인다. 이 작은 몸으로 우리는 열차나 비행기를 이용해 목적지에 도착하며 무엇인가를 이루어가며 살고 있다. 가끔은 취업과 커리어 계획에 대한 고민에 휩싸여 머리가 지끈거리고, 부족한 것을 채우고 발전하려 애쓰지만, 이런 사실을 깨달으면 각자에게 중요한 일이 얼마나 다양하며, 또 다양한 삶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며 결국 다시 내 삶의 목표로 돌아오며 다시금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얻는 것 같다.
이 암트랙 열차에 대해 조금 얘기해보자면, 일단 젊은 사람이 나밖에 없다, 정확한 나이는 모르지만 적어도 대학생은 없는 것 같다. 대부분이 백인 노부부, 멕시칸, 흑인 노인 등이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뭐…아마 비행기보다 열차가 익숙한 분들이거나 과거부터 휴가를 기차로만 즐기시던 분들 아닐까 싶다. 잘은 모르겠지만! 그리고 열차 전체의 느낌이…오래된 백인의 유산물 중 하나인 느낌이다, 뭐라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오래된 영화에 깜짝출연한 아시안이 된 기분이다. 그렇다고 해서 일하시는 분들이나 다른 승객분들이 인종차별이나 차별대우를 한다는 말은 아니다. 어쩌면 내가 그러고 있는 것일 수도..?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각 역에 도착하기 10분, 30분 전에 방송으로 안내를 해주시는데, 가끔 승무원 아주머니가 ' Fresh Air stops!!' 하고 외치신다. 이 역들은 승객이 신선한 공기를 마실수 있게 좀 더 길게 정차하는 역을 말한다. 또한 흡연자를 위한 시간이기도 하며 잠깐 열차에서 내려 뻐근한 몸을 조금이라도 풀어주고 바람을 쐬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혹시라도 혼자 여행하는 것을 즐기거나 한번 경험해보고 싶은 분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은 여행이다. 방에서 혼자 음악을 들으면서 경치를 구경하는 시간도 너무 평안하고 잔잔하게 보낼 수 있고, 가끔 밖으로 보이는 소가 열차 소리를 듣고 ‘저건 뭐지’ 하며 고개를 들어 쳐다보는 것을 보면 그냥 웃음이 나고, 영화에나 나올법한 작은 시골마을의 넓은 도로와 작은 건물을 보며 신기해할 수 있다. 아! 또 방에 있으면 가끔 방송이 나오는데, 곧 무슨 역에 정차할 것이고 이 역을 지나면 아름다운 풍경이 보이고, 사슴과 엘크가 발견되기도 하니까 모두 라운지로 나와 구경하라고 설명을 해주시는데 방에 가만히 있다 문득 오래된 스피커를 통해 나오는 이 방송을 들으면 유니버셜 스튜디오에서 특정 영화의 어트랙션을 타고있는 것만 같아서 기분이 좋아진다.
벌써 열차에 있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지금은 오후 8:25, 난 내일 아침 8:00 에 도착한다. 보통 아침 식사 시간이 6:30-9:00 사이라 내일은 꼭 일찍 일어나 아침을 먹고 내려야한다. 생각보다 지루하고, 또 동시에 지루하지 않은 새로운 경험이었다. 기차 여행이라니, 과하게 비싸긴 하지만 가장 좋은 부분임과 동시에 이 기차 여행의 주 목적인 침대칸에서 보낸 시간은 너무 아늑하고, 따듯하고 편안했다. 아까 저녁엔 룸서비스로 방에서 저녁을 먹었는데 눈이 내려 하얀 창밖 풍경과, 폭신한 침대에서 먹는 저녁은 아주 소중한 추억이 될 것 같다. 또 Fresh Air stops에 내려 담배를 피며 길거리를 구경하고, 낯선이들과 대화하는 것들도 참 소소하지만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 사실 혼자서 다시한번 탈일은 없을 것 같지만, 누군가 소중한 사람이 생기거나 친구와 함께하게 되면 생각해볼 것 같은 여행이다. 한가지 아차 싶었던 것은 너무나 당연히 열차내에 와이파이가 있을 거라 생각한 나의 실수였다. 뭐 굳이 알아봤어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 같지만, 아마 드라마나 영화라도 다운받아 오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도 뭐, 시간은 생각보다 금방 가서 다행이다. 친구와 함께할 엘에이, 베가스 여행도 이처럼 즐겁고 지루하지만 특별하길 바라며 이만 총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