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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틴K Aug 13. 2023

이직 후의 삶

이직을 하기까지 많은 고민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이직을 하기로 결정한 이유는 건강과 미래였다. 불규칙한 생활과 잦은 출장, 때를 가리지 않는 사장의 전화, 미래에 내가 이 조직에서 어떠한 모습으로 일하고 있을 것인지에 대한 불안감, 이 모든 상황에 대한 스트레스를 꾸역꾸역 씹어 삼키며 이곳을 다니기엔 나의 청춘이 아깝다는 생각을 하였다. 무엇보다도 이직이 그나마 수월한 청춘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은 불안감도 한몫했다.


어느덧 이직한 후 두 번째 달의 월급을 기다리고 있다. 어느 정도 잘 알고 있는 분야였기 때문에 업무 자체에 대한 적응은 그럭저럭 해 나가고 있는 중이다. 물론 버벅거림은 존재하지만 이 정도 버벅거림이야 적지 않은 사회생활로 얻어진 '짬'으로 따뜻한 사수와(다시금 생각하건대 나는 사수 복은 타고났다) 주변의 선배들에게 물어가며 사고 없이 무난하게 적응 중이다. 이전 직장에 비해 워라밸도 두말할 것 없이 좋다.


문제는 회사의 분위기와 나의 나이이다. 적지 않은 나이에 이직해 온 사람에게 경력직이라는 제도 자체가 없는 회사에 적응하는 것이 생각보다 어려운 일임을 느낀다. 연봉은 인정해 주지만, 직급은 신입부터 시작하는 이상한 구조 속에서 나는 나이 많은 막내로서 사무실에서 막내 업무를 해 나가는 중이다. 다행스럽게도 사무실에 꼰대 같은 사람은 존재하지 않지만(혹은 아직까지는 발견하지 못했지만) 나이 많은 신입에 대한 존중과 불편함 그 사이에서 애매한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조직 자체가 기수제 문화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찌 보면 군대 문화 같다가도 어떨 때는 합리성을 강조해서 헷갈린다. 나름대로 인사도 잘하고, 엉덩이 가볍게 움직이려 노력하지만, 사실 대학을 갓 졸업한 신입사원의 푸릇푸릇한 패기란 시들어버린 지 오래다. 푸르스름한 적극성이라도 보이려 하지만 지나친 적극성은 오히려 부담이 될까 싶어 이 조직에 알맞은 적당한 선을 찾기 위해 아직도 노력하고 있다.


이렇게 불편한 상황들이 존재하다 보니, 과거 회사에 대한 향수가 훅훅 치고 올라온다. 어느새 익숙해져 버린 그곳의 공기와 일하는 방식, 다이내믹했던 업무, 정년과 맞바꾼 높은 연봉이 그립기도 하다. 앞서 말한 이직을 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들 또한 시간의 흐름과 함께 한껏 미화되었다. 공공의 적을 둘러싸고 뭉친 직원들 간의 연대감도 그리웠다. 그 정도 돈 받으면, 또 그만큼 일해야 했던 것이지란 생각까지 들면서, 이따금씩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이전 직장의 동료들은 야근과 출장, 사장의 히스테리 에피소드를 들려주며 배부른 소리라는 말을 하곤 한다.


새로운 환경, 새로운 업무, 새로운 사람, 새로운 시스템에 대한 적응이 쉽지 않으리란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또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금방 적응하겠지라는 생각도 함께 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딱딱하게 굳어진 뇌세포만큼이나, 나의 몰캉몰캉했던 적응력도 어느 정도 굳어진 것을 깨닫게 되었다.


폭우와 무더위를 그라데이션 없이 오가는 날씨에도 지쳐버리고, 이래 저래 회사 일 이외에도 신경 쓸 것이 많은 탓일까, 컨디션이 좋지 못하다. 그래도 다음 주는 광복절이 있어서 다행이다.


직장은 역시 직장일 뿐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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