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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틴K Jul 23. 2023

어떻게 살아야 할까

수해를 입었습니다. 남의 일인 줄만 알았던 일이 실제로 닥치니 그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습니다. 새벽 4시경에 날카롭게 밤하늘을 찢어버린 굉음이 단순히 천둥소리인 줄만 알았습니다. 1시간 후 사람들의 웅성거림에 겨우 몸을 일으켜 창문을 열어보니 집 담벼락이 무너져 토사가 길을 뒤덮고 있었습니다. 정신없이 내려가 보니 구청 직원들과 소방관, 경찰관들이 모두 모여 사태를 파악하고 있었고, 마치 재난 영화나 드라마, 혹은 애니메이션에서나 볼 법한 광경 앞에서 잠시 어찌해야 할 바를 몰라 허망하게 무너진 벽을 바라보았습니다. 곤히 주무시고 계시던 부모님을 깨워 이곳저곳 피해 상황을 둘러보았습니다. 생각보다 피해는 심각했고, 저는 비를 맞으며 이곳저곳을 뛰어다녔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새벽에 일어난 일이기에 인명 피해는 없었습니다. 구청의 여러 부서에서 협업하여 안전 조치를 해 주었고, 구청장님도 다녀 갔습니다. 사태를 신속하게 수습하기 위해 관청에서 많은 도움을 주신 덕분에 해가 지기 전에 필요한 안전 조치를 취할 수 있었습니다. 비 오는 중에도 새벽부터 늦은 오후까지 많은 도움 주신 여러 분들께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이제 남은 것은 복구공사입니다. 도로에 흘러나온 토사와 담벼락 잔해는 구청의 도움을 받았지만, 사유지이기 때문에 이제 남은 복구 작업은 오롯이 저희 가족의 부담이 되었습니다. 복구 견적을 받아보고 저희 가족은 할 말을 잃었습니다. 상상을 훨씬 뛰어넘는 억 단위의 금액에 침묵이 흘렀습니다. 그냥 이 상태로 둘 수도 없고, 피해를 입은 주변 분들에 대한 보상 절차도 진행해야 해서 빠른 시일 내에 공사를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라 사실 우리에게 놓인 선택지는 하나뿐입니다. 그렇기에 절망감이 더 크게 다가옵니다.


뭐 어쩌겠어 싶다가도, 마음이 쉽사리 가라앉지 않네요. 참 쉽지 않은 인생입니다. 이직을 하고 좀 더 마음을 편안하게 가지고 아프신 부모님을 돌봐야겠다고 생각한 게 불과 1주일 전인데, 전혀 예상하지 못한 시련이 우리 가족을 덮쳐 버렸습니다. 얼른 마음을 다잡고, 해야 할 것을 하나씩 차근차근해 나가야 하는데 쉽지가 않습니다.


이 놈의 비는 왜 이렇게 계속 내리는 걸까요. 빗소리를 들으며 책 읽는 것을 좋아했는데, 오늘은 이중 창문을 걸어 잠그고 커튼까지 치고 집안에 콕 박혀 있었습니다.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선택지가 하나밖에 없는 현실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선 그냥 앞만 보고 걸어가는 것밖에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한 순간 무너진 담벼락처럼 우르르 쏟아져내리는 인생의 시련 앞에서 그냥 주저앉아서 멍하니 어떻게 하나를 고민하게 됩니다. 건강이 좋지 않으신 부모님을 안심시키며 씩씩하게 이러한 시련을 헤쳐 나가야 하는 저에게 그런 고민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걸 알지만, 저도 마음을 다잡을 시간이 필요한 연약한 인간일 뿐입니다.


이번 일도 몇 년이 지나면 웃으며 그때 그랬었지라고 회상할 별 것 아닌 일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당장 짊어지고 일어서야 할 인생의 무게는 무겁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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