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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틴K Jul 09. 2023

이직을 결정한 마음

이직을 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최종 면접 이후, 합격이란 결과를 받아 들었습니다. 기뻤습니다. 합격 통지를 받기까지 많은 일이 있었고, 많은 고민과 노력이 있었습니다. 연차가 쌓일수록 늘어만 가는 현재 직장의 업무를 감당하며, 퇴근 후 가족들을 돌보며, 남는 시간을 쪼개어 밤늦은 시간까지 자소서를 써내려 갔습니다. 면접 일정에 맞추어 얼마 있지도 않은 휴가를 전략적으로 쓰기 위해 머리를 굴려야 했고, 면접 일정과 중요한 업무 일정이 겹칠까 봐 마음 졸였습니다. 이러한 걱정이 무색하게 똑 떨어지는 경우도 많았죠. 맥이 탁 풀리며 부질없다는 생각에 한때 이직 시도를 멈춘 적도 있었습니다. 쓸까 말까 고민을 반복하다가 여기까지만 해보고 안되면 연말까지는 여기서 버텨보자는 마음으로 자소서를 제출하였습니다.


사실 지원을 망설였던 가장 큰 이유는 직전에 지원했던 동일 업계에서의 면접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해당 업계에서 가장 원하는 몇 가지 역량과 경험을 가지고 있었기에, 면접 자체가 힘들었던 적은 많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곳은 달랐습니다. 질문에 대해서 답을 못하지는 않았습니다. 거의 다 예상 질문 안에서 질문이 나왔고, 나쁘지 않은 대답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너무나 이상하게도 면접에 있는 시간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나의 답변의 의도가 면접관들에게 전혀 전달이 안 되는 느낌이었는데, 면접관들도 그 의도를 파악하고자 하지 않았습니다. 이곳에 지원한 동기에 대한 질문에 답변을 하였는데, 그 사람은 나의 말을 전혀 이해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이유는 나는 당신이 원하는 이 직업의 보람을 전혀 느낀 적이 없고, 지금 회사의 연봉을 포기하면서 오려는 이유를 전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보람을 동종 업계인 전전직장에서 일할 때 실제로 느낀 적이 있으며, 연봉을 포기하더라도 내가 행복한 일을 하고 싶은 이유로 지원한 것이기에 이러한 마음을 다시 한번 전달하려 하였으나 헛수고였습니다. 그들은 이미 이해 못 할 인간이라는 프레임에 저를 가두고 면접을 보고 있었고, 저는 그 프레임 속에서 허우적 대다가 면접이 끝났습니다.


이 면접이 끝나고, 저는 큰 실망감에 빠졌습니다. 이전에 몸담았던 업계로 돌아가는 것이 단순한 향수일 뿐인가,  내가 말한 삶의 보람이란 것이 그저 세상물정, 돈 귀한 줄 모르고 좇고 있는 허황된 꿈인가, 나는 이 업계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인가, 나의 면접 역량이 부족한가, 그들에 맞추어 좀 더 답변을 신중히 했어야 했나, 내 나이가 너무 많나, 동종업계를 그만둔 경력은 돌이킬 수 없는 실수인가, 나는 그냥 여길 다녀야 하나. 꼬리의 꼬리를 무는 질문들을 감당하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그 와중에 현 직장에서의 과중한 업무와 상사의 말도 안 되는 지시는 더 심해졌지요. 짜증이나 화가 나는 것을 넘어서서 무기력해지는 하루하루였습니다.


많은 고민 끝에 쓴 올해 마지막 지원서는 다행히 심사위원들의 마음에 들어, 서류 평가에 합격하였습니다. 그런데 첫 번째 면접에서 저는 최종 면접까지는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습니다. 사실 직전 면접을 겪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이라 트라우마가 아직 남아있어 많이 긴장하며 면접장으로 들어갔습니다. 면접 대상자는 생각보다 훨씬 많았고, 전형도 복잡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이상하게도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면접을 준비해 주셨던 인사 팀원분들의 배려 넘치는 설명, 잘 짜인 절차는 제 마음을 편안하게 했습니다. 면접장에 들어가서는 더욱 그랬습니다. 저의 생각을 하나라도 저의 입장에서 들어주려고 하는 면접관들의 태도가 느껴졌습니다. 직전 면접보다 시간은 더 촉박하였지만, 말을 끊으며 그만 말하라는 대신, 내가 말하는 것에서 저에 대해서 하나라도 더 알고 싶어 하는 면접관들의 모습이 느껴졌습니다. 모든 것이 다 톱니바퀴처럼 잘 맞아 들어갔고, 여기처럼 꼭 붙고 싶다고 생각한 직장이 있었는가를 생각하게 될 정도로 기대와 희망을 가득 품었습니다. 예상대로 저는 최종면접에 가게 되었고, 최종면접을 거쳐 합격 통보를 받게 되었습니다.


이번 면접을 거치면서, 저와 맞는 곳은 따로 있구나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조직이라는 것이 부정할 수 없는 그 만의 성격을 가지게 되고, 그 성격에 맞는 사람을 찾게 되어있습니다. 저는 낙방한 조직과는 지지리도 안 맞는 사람이었고, 합격한 직장과 잘 맞는 사람이었던 것이죠. 물론 직전 면접의 실패 때문에 제가 면접을 조금 더 열심히 준비한 것도 합격에 아예 기여하지 않았다고는 볼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시간적으로도, 그리고 내용적으로도 의미 있는 차이는 거의 없었다고 보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지난 면접의 트라우마 때문에 더욱 긴장하여 부정적인 영향을 주었을 수도 있지요. 내가 맞지 않다고 생각하는 직장이 있는 것처럼, 직장도 나와 맞지 않을 수 있는 것입니다.


생각이 여기에 다다르니, 직전 면접에서 떨어지고 힘들었던 시간들이 더욱 아쉽게 다가왔습니다. 나와 맞는 곳과 함께할 기회가 아직 찾아오지 않은 것일 뿐. 제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무능하고, 가망이 없는 것이 아니었음에도, 현실을 감당해 내기가 너무 고통스러웠습니다. 굳이 그렇게 자기 자신을 갉아먹지 않았어도 되었는데, 저는 그 일로 몸도 마음도 다쳐버렸습니다.


나에게 꼭 맞는 인연을 찾기가 어려운 것처럼, 나에게 꼭 맞는 직장을 찾는 것도 아주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곳에 문을 두드려 보아야 하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다시 한번 곰곰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직에 실패한 경우 나에게 부족했던 점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지금에 나와는 맞지 않는 회사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훌훌 털어버리는 것도 중요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와 맞는 회사가 어딘가에 있음을, 두드리면 언젠가 문이 열릴 것임을 믿는 긍정 회로의 중요성도 함께 말이죠.


말은 이렇게 쉽게 하지만, 쉽지 않은 일입니다. 지금의 직장이 만족스러운 직장이 될 것이라는 확신도 사실은 없고요. 하지만 이번 이직 준비를 통해, 나를 사랑하고 나에 대한 자부심을 갖는 것이 삶에 있어서 얼마나 가치 있고 중요한 일인지 배웠습니다. 때로는 "네가 나를 차? 그래! 나도 너랑 안 맞는 거지. 너보다 좋은 사람 만날 거야!"라는 강한 자존심과 배포가 필요한 법입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부끄러운 내가 되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겠죠.


쉽지 않은 인생이지만, 하나씩 찍어 먹어 가면서 배우는 게 있으니 또 뿌듯한 하루하루입니다.


내일 첫 출근. 잘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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