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흘러가는 시간
힘든 것을 내색하고 싶지 않은 마음,
힘들어도 스스로 괜찮다고 밀어붙이는 마음,
힘들 때 누군가에서 과하지 않은 토닥임을 받고 싶은 마음,
그리고 너무 힘들 땐, 혼자 흘러가는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가을과 겨울 사이, 2번 대전 계족산성을 찾았다. 각각 다른 취재로.
황톳길만 알았던 계족산 꼭대기엔 삼국시대에 만들어진 산성이 동그랗게 이어져 있다고 했다. 1시간 정도 꼬박 올라가야 하는 난이도 중하의 산행 코스였다. 끝도 없이 이어진 나무 계단이 막막했다.
첫 번째 취재는 동행한 분과 슬렁슬렁 산책하는 기분으로 올랐다.
두 번째 취재는 마음이 급했다. 그날 가야 할 스폿도 많았고, 동행자는 2명이 더 있었다.
몸 컨디션도 좋지 않았다. 새벽녘에 눈이 조금 내렸는지 길은 미끄러웠다.
2명의 동행자는 성큼성큼 오르기 시작했다. 오기로라도 빨리 올라가고 싶은데, 자꾸 숨이 차올랐다. 갈수록 뒤처지고 있었다. 동행자 중 친한 후배가 자꾸 뒤를 돌아보며 걱정을 했다. 그 후배는 무거운 카메라를 짊어지고도 쉬지 않고 오르고 있었다. 간혹 숨을 몰아쉬며 오르는 나를 걱정하며 자꾸 괜찮냐고, 물었다.
걱정한다고 달라지는 건 없는데. 어차피 내 두 발로 올라야 할 일이었다.
"나.진.짜.괜.찮.아!" 크게 외쳤다.
오래전 일이 떠올랐다. 친한 동생이 혹독한 실연을 당했다. 나는 매일매일 동생이 걱정되었다.
"오늘 술 마실까?" "오늘은 괜찮아?" "혼자 보내기 힘들면 언제든 연락해!"
끊임없이 안부를 물었다. 며칠이 지나 동생이 단호하게 했던 말,
"언니! 나 힘들긴 한데, 진짜 괜찮아. 그냥 내버려 두는 게 좋을 것 같아. 어차피 내가 겪어야 할 힘듦이야!"
그 말이 서운해져서, 그리곤 입을 닫았다.
몇 년이 지나 계족산성을 오르면서 그 일이 떠오는 건.
아픔을 견디는 건 온전히 혼자의 몫이다. 그게 잔인할 수도 있지만, 그 시간을 흘러가게 스스로에게 허락해야 한다. 혼자여만 괜찮은 시간이 있다.
계족산성에 오르자, 그 후배가 힘차게 사진을 찍고 있었다. 우리에게 간격이 있었지만, 각자의 시간과 호흡대로 올라왔지만, 탁 트인 풍경 사이를 걸으며 일상의 이야기를 평온하게 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