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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호 Mar 22. 2020

세렝게티 가는 길

2020. 2. 10.

세렝게티 가는 길


다르에스살람의 키페페오 비치 캠프는 다시 오고 싶지 않은 곳이다. 이틀 밤을 잤는데 두 밤 모두 모기와 습기 그리고 가려움으로 잠을 설쳤다. 어젯밤 팔뚝이 가려워 눈을 떴는데 몇 군데를 모기에게 물렸다. 일어나서 랜턴을 켜고 봤더니 모기가 있다. 텐트 벽에 붙은 놈을 손바닥으로 쳤더니 텐트 벽에 피가 번진다. 이놈이 밤새 내피를 빨았다. 다시 누웠는데 귓전에서 잉하고 모기소리가 난다. 일어나서 랜턴을 켜고 수색했더니 텐트 벽에 모기가 있다. 이놈도 피를 빨아먹어 배가 잔뜩 부르다. 역시 텐트 벽이 내피로 물들었다. 이젠 없겠지 하고 누웠는데 또 잉잉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다시 일어나 보니 한 마리가 날아다녀 손바닥으로 쳐서 잡았다. 이놈은 아직 피를 빨지 않았다. 랜턴을 다시 켜고 살펴보니 텐트 천장에 또 한 마리가 있다. 이놈도 내 손바닥과 텐트에 피를 묻히고 생을 마감했다. 어제 텐트 말린다고 낮에 출입구를 활짝 열어 놓았더니 여러 놈이 들어와서  잠복해 있다가 내피를 마구 빨아먹었다. 모기기피제를 안 바른 곳을 골라서 물었다. 다시 모기기피제를 바르고 시계를 보니 4시 반이 넘었다. 잠을 청하려고 누워 뒹굴 거리는데 이슬람 사원에서 새벽기도 소리가 들린다. 설핏 잠이 들었다가 깼더니 6시 반이다. 이번 여행 중에 가장 많이 모기에게 괴로움을 당한 밤이었다. 


아침 8시 식사를 마치자마자 출발이다. 오늘은 에루샤로 가는 중간 기착지인 팡가니까지 이동하는 날이다. 다르에스살람을 벗어나는데 2시간이 걸렸다. 올 때와 마찬가지로 교통체증이 심하다. 도심을 벗어난 타타는 멀리 바다가 보아는 해안도로를 타고 북쪽으로 올라간다. 길옆은 얕은 구릉의 평지다. 어린 학생들이 하굣길에 우리를 보고 손을 흔든다. 아프리카 아이들은 순박하다. 어렸을 때가 생각난다. 내가 살던 시골에서는 버스는 거의 볼 수 없고 포장되지 않은 신작로에 어쩌다가 자동차가 지나가면 뽀얀 먼지가 일었다. 손을 흔들기보다는 먼지를 피하기에 바빴다. 그렇지만 하루에 몇 번 정해진 시간에 지나가는 기차는 먼지가 안나 열린 창문으로 사람들이 손을 흔들었다. 그래서 기차가 지나가면 우리도 손을 흔들곤 했다. 


12시 반이 되어 길가 휴게소에서 점심을 먹었다. 차들이 많이 다니는 간선도로가의 휴게소는 규모가 크다. 식당이 두 군데 있고 간이매점이 있다. 이곳 사람들은 손으로 음식을 먹기 때문에 식당에는 한 구석에 손 씻는 곳이 있다. 손 씻는 곳이  없다면 종업원이 세제와 물을 가져와 손을 씻을 수 있도록 해준다. 식사를 마치고도 마찬가지 방법으로 손을 씻는다. 수저를 사용하지 않고 손으로 식사를 하기 때문이다. 수저를 사용하는 것보다 어쩌면 더 위생적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점심을 준비하는 곳 바로 옆 식당은 노천 식당인데 식당 뒤쪽에서 감자와 생선을 음식 준비를 위해 다듬고 있다. 내가 가니까 손질하던 생선을 들어 보여준다. 제법 큰 생선이다. 


점심을 먹고 출발해 내리막길을 내려가는데 대형 컨테이너가 뒤집혀 있다. 브레이크 파열이 원인인 듯하다. 낡은 차들을 운행하다 보니 길가에 고장 난 차들이 많다. 차들이 우리와는 반대로 왼쪽에 운전대가 있으니 승합차는 일본에서 중고차를 많이 수입해서 쓰고 있다. 차 외부에는 일본어 선전이나 안내문이 그대로 붙어 있다. 간혹 중국어가 쓰인 버스가 있는데 이는 홍콩에서 들여온 것으로 추측된다. 잠비아, 짐바브웨, 말라위, 탄자니아는 중국의 진출이 많은 곳이다. 중국 상표가 많이 보이고 중국 회사도 눈에 띈다. 현지인도 동양인은 무조건 중국사람 취급을 한다. 


타타는 킬리만자로 쪽으로 계속 달린다. 멀리 높은 산들이 보인다. 구름이 없으면 가는 길에 킬리만자로를 볼 수 있다고 한다. 재작년 나폴리 여행 때는 구름 때문에 베수 비 오산을 못 봤는데 여기서는 킬리만자로 산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오후 5시 반 팡가니의 화이트 캐롯 캠프에 도착했다. 하룻밤 잠만 자고 가는 곳이라서 그런지 캠프장 시설이 형편없다. 샤워장은 물만 간신히 나오고 수도꼭지도 고장 난 채로 있다. 캠핑장도 매우 좁아 텐트 몇 개 간신히 칠 수 있는 정도다. 맥주를 한 잔 하려고 레스토랑에 갔더니 달러나 카드는 안 받는다. 지갑에는 현지 돈이 3000실링밖에 없다. 맥주값은 4000실링이다. 달러를 바꿀 데가 없고 ATM 기계도 없다. 맥주를 포기하고 2000실링짜리 콜라를 대신 샀다. 저녁식사는 버섯 크림수프에 마늘빵 그리고 볼로네즈 스파게티이다. 독일에서 온 친구들은 설사라고 안 먹고 에바는 소고기가 싫다고 안 먹고 피터가 열심히 만든 보람도 없이 많이 남는다. 저녁식사를 하는데 벌써 모기가 덤빈다. 샤워하고 모기기피제를 발랐지만 종아리에 한방 물렸다. 기피제를 더 바르고 텐트 안에도 모기약을 뿌렸다. 


오늘까지 9500km를 왔다. 내일 아루샤까지 300km 남았고 아루샤에서 나이로비까지는 290km 정도 남았다. 대략 케이프타운에서 나이로비까지 10100km에서 590km가 남은 셈이다. 막바지에 어깨 통증만 빼면 잘 온 셈인데 남은 5일 밤을 잘 버텨야겠다. 


 아루샤로 가는 길가에는 오렌지 과수원이 많다. 수확한 오렌지를 정리하고 있다.



손질하던 생선을 들어 보여준다. 친절한 셰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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